'도올 현상' 돌팔매 맞다
  • 이문재·박성준 기자 (moon@e-sisa.co.kr)
  • 승인 2001.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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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김진석 교수, 김용옥씨 방송 강의 맹비판

최근의 쟁점은 크게 두 갈래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논어>를 강의하기에 적절한 인물인가. 또 하나는 도올이 주창하는 철학 대중화는 과연 타당한가. 전자는 서지문 교수(고려대·영문학)가 최근 두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 주제이고, 후자는 김진석 교수(인하대·철학)가 계간 <사회비평> 봄호에 기고한 논문의 초점이다. 두 교수의 비판적인 글은 매주 금요일 밤 KBS 전파를 타는 <도올의 논어 이야기>에 대한 인문학계의 본격적인 문제 제기여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999년 말, EBS의 <알기 쉬운 동양 고전-노자와 21세기>와 그 강의 교재였던 단행본 <노자와 21세기>가 나온 이래 도올에 대한 관심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노자에서 공자로 넘어오면서, 교육방송에서 한국방송공사로 자리를 바꾸면서 김용옥 현상은 더욱 뜨거워졌다. <도올의 논어 이야기> 평균 시청률은 15% 대에 육박한다. <일요 스페셜> 같은 KBS의 대표적인 교양 프로그램 평균 시청률이 10%를 넘지 못한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도올 현상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상업적 철학 대중화?


도올을 패러디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도올이 펴낸 노자와 공자 관련 서적은 대형 서점 인문학 분야 베스트 셀러 순위 상위를 고수하고 있다. 인터넷에도 도올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이트들이 개설되어 있다. 방송 강의를 맡은 이래 도올은 에듀테이너(교육과 연예인의 합성어)로 불리거니와, 도올이 호출한 노자와 공자는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지식인 사회에서도 줄곧 화제에 오르고 있다.

김용옥 현상은, 모든 현상이 그렇듯이 빛과 그늘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점집을 연상시켰던' 동양 철학을 당당하게 부활시키며 철학의 대중화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빛이고, 그 그늘은 (동양) 철학 대중화가 대중을 철학화하는 데 도달하지 못하고 상업 논리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다. 일반 대중이 도올 현상에 긍정적인 반면, 인문학계에서는 백안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김용옥 현상을 두어 갈래로 정돈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도올의 철학(하기)이 기왕의 학계가 보는 철학(하기)과 현격한 차이가 있고, 도올이 펼치는 (동양) 철학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도올은 일찍이 '나의 전공은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나의 삶'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과정의 철학'을 중시하는 도올 철학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 또한 많지 않다.

우선 서지문 교수가 제기한 문제부터 살펴보자. 서교수는 지난 2월9일자 <중앙일보>에 '소인이 군자를 강(講)하는 시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논어>를 강의하는 김용옥 교수가 유교적 군자상과 거리가 먼 '소인'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서교수는 '공자님의 가르침이 진흙탕에 내던져졌다는 위기감이 든다'라며, 숭고한 학문과 사상 앞에서 겸허해 하지 않는 학자는 훌륭한 인문학자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교수는 1980년대 김용옥 교수가 비속어를 썼을 때는 권위를 거부하는 선언성을 지닐 수 있었지만, 최근에 도올이 사용하는 비속어는 '천박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부적절해서 역효과를 낸다'고 밝혔다.

서교수의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교수는 지난 2월12일자 <문화일보>에서 도올을 다시 문제 삼았다. 2월9일에 방영된 KBS 논어 강의에서 김용옥 교수가 '9단이 9급하고 바둑을 둘 수 있느냐'는 비유를 들며 서교수의 비판을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서교수는, 김교수가 정말 동양학 9단이라면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도올의 '군자답지 못함'을 재론했다. 서교수는, 그간 논어 강의에서 도올이 해석한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사무사(思無邪)'는 명백한 오류라고 지적한 뒤, 방송 강의에서 김일성 유훈 통치와 공자를 연결하는 대목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논어'는 빼고 '이야기'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도올에 대한 서지문 교수의 비판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자기 과시욕과 비속어 남용, 광범위한 관심 영역, 불 같은 성격 등 도올의 캐릭터에 대한 지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한 도올은 자신의 저서나 인터뷰 등을 통해 위와 같은 비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혀 왔다. 도올은 '내가 비판에 답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비판이 없고 비방만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내가 비판의 진정한 대상이 될 만한 것을 아직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멀리 보면 198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김용옥 현상이 학계의 논의 대상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간 김용옥 현상을 대하는 학계의 눈높이는 인상 비평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하반기에 나온 <오늘의 동양사상>이 기획한 특집 '2000, 공자 그리고 노자'에 이르러서야 비평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위 특집에서 도올의 노자 강의가 '역사성을 배제한 독단적인 해석'이라고 진단한 바 있는 성태용 교수(건국대·철학)는 도올의 논어 강의가 몇 가지 중대한 실책을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교수는, 김용옥씨가 "자기 마음에 들면 부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손질해 전체적으로 공자상을 자의적으로 해체해 버렸다"라고 말했다. 성교수에 따르면, 도올이 공자 생애를 재구성하면서 <공자가어>를 중시하는데, 이 책은 이미 학계에서 위작으로 판명된 책이라는 것이다. 동양 사상은 매우 실천적이기 때문에 학문의 방법과 목적이 둘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성교수는, 그런데 도올은 방법과 목적이 분리되어 있다면서, 도올의 강의는 학문 내용보다는 도올이 보여주는 방법에만 익숙하게 할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재미 강조한다 해서 평가 절하 말라" 옹호론도


노자를 전공한 최진석 교수(서강대·철학)는 성교수와 대척점에서 도올의 강의를 바라본다. 김용옥씨가 지금까지 동양 철학계에 끼친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최교수는, 도올의 방송 강의가 상업화로 흐르거나 공자를 호도할 수 있다는 우려에 반대한다. 최교수가 보기에, 그동안 한국 동양철학계는 중간 부분이 없이, 위와 아래가 단절되어 있었다. 도올이 그 단절을 이어 주며 철학 대중화를 이루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요즘 대학 강의실에서도 '쉽고, 재미있게'를 외치고 있는 마당에 '재미'를 강조한다고 해서 도올의 방송 강의가 평가 절하될 까닭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방송 강의라는 형식 자체가 철학하기의 전부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으며, 철학 대중화 못지 않게 전문적 논의에도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양(철)학계 외부의 평가도 그 내부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폭적으로 옹호하거나 일방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도올 강의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읽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학 평론가 도정일 교수(경희대·영문학)의 견해가 가장 대표적으로 보인다.

도교수에 따르면, 시대에 맞서고 시대를 질타하는 거침 없는 발언들이 김용옥 강의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다. 그의 용기 있는 비판적 언어들은 철학자 천명이 달려들어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낼 때가 있다는 것이다. 도교수는 "도올의 강의가 인간· 인성·윤리에 대한 담론을 상실하거나 포기하고 있는 현대 서양 철학의 기이한 마비 국면을 동양의 인문 전통으로 메울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흥미롭고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도교수는, 대중 강의가 학문적 엄밀성을 고루 구비하기 어렵다는 것은 참작할 수 있지만, 그러나 "비판의 용감성이 반드시 학문적 정확성을 희생한 위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도교수는 "내가 들은 그의 강의들 중에 보편역사론·조선근대론·불교 이해와 그리스·히브리 문화에 대한 발언들은 해석의 차이보다는 정확성의 희생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도올의 방송 강의는 사회적 효용을 갖고 있으며, 김용옥은 그의 방식으로 이 시대 인문학도가 할 일을 해내고 있다고 밝혔다.

김진석 교수의 비판은 지금까지 나온 도올 비판들에 견주어 몇 가지 다른 성격을 지닌다. 우선 동양 철학이 아닌 서양 철학 전공자의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거의 모두가 동의하는 '철학 대중화' 문제를 정면에서 뒤엎고, 셋째, 도올의 해석학에 광신적 요소가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김교수의 글은 지금까지 제출된 도올 비판 중 가장 강도가 높아 보인다.
김진석 교수는 <철학의 광신적 대중화-김용옥의 경우>라는 제목을 단 논문에서 도올을 무대에 올라선 철학적 대중 스타라고 규정하면서, 도올이 철학 대중화에 성공했다는 학계의 평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철학을 대중화했느냐, 아니면 대중을 철학화했느냐에 대한 질문은 '이미 역사로부터 추월된 질문'이라고 김교수는 파악한다. 철학은 이미 역사 속에서 대중화했으며, 철학자만이 대중을 철학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처리된 지식은 바로 그 이유로 (철학이 아니라) 지식일 뿐'이라고 파악한다.


김진석 교수 "도올의 해석학은 광신적이다"


김교수는, 도올의 종교적 해석학이 권위주의적 해석학이며, 보수적인 해석학이고 나아가 거의 광신적 수준에 닿아 있다고 비판한다. 도올이 한국 종교계의 병폐를 비판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종교계의 가장 고질인 병폐를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스러운 말씀과 교리에 대한 광신적 태도라는 것이다. 노자와 공자에 대한 도올의 해석학도 근본적으로 광신적이고 권력적인 해석학에 가깝다는 것이다.

200자 원고지 1백50장에 달하는 김교수의 도올 비판은 전방위적이다. 도올의 매체 중독증과 지식 과시욕을 비롯해, 과잉 해석과 그로 인한 선정적 도덕주의, 자기 우상화, 논의의 일관성 결여, 노자와 공자의 이름으로 행사하는 상징 권력 등을 파헤친 것이다.

서지문·김진석 교수의 문제 제기로 촉발된 도올 논쟁은 두 가지 차원, 즉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협의의 논쟁과, 인문학계 전반의 도올 현상에 대한 담론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도올 현상은 인문학의 위기와 대중 문화 시대의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한국인의 심리적 기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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