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라 해도 내 길을 가겠다"/도올 김용옥
  • 박성준 기자 (snype00@e-sisa.co.kr)
  • 승인 2001.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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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에 일정 대응 않고 "내 학문의 본령인 번역에 전념" 선언

입씨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싸움을 건 사람들이나, 싸움의 빌미를 제공한 사람 모두 상대방에 대해 '어이없어 하며' 싸움을 그만두려는 눈치다. 다만 '강 건너 불구경'을 놓친 일부 언론만이 논란의 내용을 과장하며 싸움을 붙이지 못해 안달이다. 이른바 '도올 논쟁'(<시사저널> 제591호 기사 참조)이 벌어진 뒤 논쟁 당사자들이 보인 최근 모습이다.

먼저 싸움을 건 쪽.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당신이 도대체 공자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물으며 도올에게 직격탄을 날린 서지문 교수(고려대·영문학)는 그 뒤 '나는 나대로'의 길을 가고 있다. 지난 2월20일부터 매주 화요일 〈조선일보〉에 연재되는 <서지문의 논어 읽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도올을 겨냥하고 칼럼을 쓰는 것은 아니다. 〈논어〉를 읽으면서 느꼈던 소감과 감동을 위주로 글을 끌어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비판한 이후 도올이 보인 일련의 반응에 대해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더 이상 메아리 없는 비판에는 나설 용의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용옥 논쟁'이 남긴 성과와 한계


월간 〈사회 비평〉에 기고한 장문의 글을 통해 도올의 방송 강의를 '철학의 광신적 대중화'라고 매섭게 몰아붙였던 김진석 교수(인하대·철학)도 도올의 태도에 유감을 표시했다.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일방적으로 펼치는 도올의 태도에 전혀 변화의 기미가 없다"라는 것이다. 그만큼 도올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아직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김교수는 판단한다(100쪽 딸린 기사 참조).

이들로부터 공개 비판 세례를 받은 도올도 상대방의 문제 제기에 대해 '알맹이 없는 비판'이라며 낮추어 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2월23일 방영된 〈도올의 논어 이야기〉(39강)에서 '학문의 길'이라는 형식을 빌려 1시간에 걸쳐 최근 집중 제기된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밝혔다.

이야기는 길었지만 결론은 한마디로 정리된다. 자신에 대한 세간의 비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생각하는 학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 무지의 소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도올 논쟁'의 소득은 전혀 없었는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도올 비판'의 또 다른 당사자였던 탁석산 박사(한국외대 강사·철학)의 의견이다. 최근 한 주간지 기고를 통해 도올을 '약장수'라고 몰아붙였던 탁씨는 2월23일의 강의를 본 뒤 "잘 웃지도 않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자신의 속내를 설득력 있게 들려주는 성의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이번 기회에 그의 인생관은 물론 그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비교적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탁씨는 또 그동안 비판에 대해 일고할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반응했던 도올의 태도를 돌려세워 일단 자기 얘기를 꺼내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도올 비판의 한 성과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날 김용옥씨는 방송 강의에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학문관과 인생 역정을 비교적 솔직하게 밝혔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코끼리 기사를 예로 들어 왜 자신이 학문의 본령을 '번역'으로 삼는지 설명했다. 자신이 타이완 대학·도쿄 대학·하버드 대학에 두루 유학한 까닭은 결코 '간판'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뭔가 근사한 학위가 있어야만 동양 철학을 학문으로 알아주는 당시의 한심한 현실에서 나온 고육책이었다고도 밝혔다.

김용옥씨는 또 자신이 '뭐든지 잘한다고 떠드는 허풍쟁이'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라고 말했다. 자기는 결코 사상가도 철학자도 아니요, 단순한 고전 번역자라는 것이다. 단 그는 자신의 번역 실력이 30∼40년간 피눈물 나게 쌓은 노력의 결과임을 되풀이 강조했다. 즉 고전 번역에 관한 한 자신의 자랑을 액면 그대로 받아 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용옥씨는 자신의 논어 강의가 '언어의 유희에 치우쳐 동양 철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오도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다. 미국 학계에서 교수들의 강의 능력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예화를 든 뒤 김용옥씨는 말했다. "그러나 여러분, 제스처가 됐든 강의가 됐든, 그것은 모두 김용옥이의 말장난이요. 나는 강의를 앞으로도 재미있게 할 것이지만, 여러분들은 나의 강의에서 '삶의 의미'만 얻어가면 됩니다"라고. 그의 발언이 끝나자 방청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청자는 도올 옹호, 지식인은 도올 비판


도올 비판이 제기된 이후 일반 시청자와 지식인들 사이의 시각 차는 더욱 뚜렷해졌다. 방송 강의 때 방청석에서 보이던 반응처럼 일반 시청자들은 대체로 도올이 해온 역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일부 비전공 지식인들만 불만을 제기할 뿐, 다수 시청자들은 '오랜만에 공영 방송다운 역할을 한다'고 오히려 격려성 전화를 걸어온다"라고 〈도올의 논어 이야기〉 담당 PD 오광석씨는 말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현재 경기도 수원시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윤관식씨도 '도올을 사랑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도올 논쟁 관련 기사가 나간 뒤 〈시사저널〉에 김용옥씨를 옹호하는 독자 편지를 보내온 윤씨는 "대체로 도올의 강의를 긍정적으로 본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입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 경우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 누구든 동양 철학에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도올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지식인들은 도올의 방송 강의에 여전히 비판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대중에 대한 도올의 영향력·파괴력이 커지는 데 따른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도올의 강의가 내용의 유익함 여부를 떠나 결과적으로 보수주의와 복고주의를 강화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이같은 우려에 대해 도올측은 '기우이자, 악의가 섞인 예단'이라고 말한다. 도올측은 오히려 이같은 우려가 시청자 수준을 얕잡아 보는 데서 나온 억측이라며 시청자를 낮추어 보지 말라고 반박하고 있다.

어느 쪽이 옳든 도올과 그의 방송 강의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로서는 김용옥씨 개인의 선택이나 결단을 떠난 상태다. 그가 사적인 이유로 '부담 없이' 강의를 중단하는 등 개인 행동을 취할 상황이 전혀 못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2월23일의 방송 강의를 통해 자신의 학문관을 밝히며 '내 갈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의 방송 강의에 대해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사회 일반의 공정한 평가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감독/허진호

주연/유지태·이영애

제작사/사이더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젊은 시절 상처한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겨울 그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이영애)를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와 그는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진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내고, 그후 상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에 접어들면서 삐걱거린다. 상우가 청혼하자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내비친다. 그리고 점차 상우를 멀리한다. 더 이상 전화도 오지 않고 찾아가도 볼 수 없게 되자 상우는 힘들어 한다.


어렵게 찾아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라고 말한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한다. 은수를 잊지 못하는 상우는 미련과 집착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과 강릉을 오간다. 그럴수록 더 멀어지는 은수. 사랑을 잊지 못해 발버둥치던 상우는 비로소 식구들이 각자 지니고 살아온 삶의 상처를 돌아보게 되고, 할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새로운 계기로 다가온다.(9월28일 개봉)


김영진이 본〈봄날은 간다〉★ 5개 중 4개

허진호식 멜로 봄날이 왔다




허진호의 두 번째 영화 〈봄날은 간다〉는 너무 농밀하게 등장 인물의 마음을 담아내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밀도 있는 감정, 사랑하고 헤어지고 떠나 보내는 감정의 흐름이 유연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화면 호흡이 은은하면서도 보는 사람의 가슴을 정확하게 베는 나머지 영화가 끝나면 마음이 아파 온다.


소리를 채집하는 녹음 엔지니어 상우와 지방 방송국 PD이자 아나운서인 은수의 만남을 담으며 시작하는 〈봄날은 간다〉는 주로 상우의 처지에서 경험하는 연애의 떨림과 환희, 그리고 헤어짐의 아픔을 담는다. 이 영화는 거의 강박적일 만큼 조금씩 비어 있는 공간 구도에 몰두하면서 그 빈 공간의 환유적 의미를 통해 삶의 덧없는 느낌, 모든 것이 늘 채워져 있지 않고 채워져 있던 것은 사라지고 비워지며 다른 것으로 메워질 때까지 그냥 그대로 있을 뿐이라는 느낌으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이상하게도 영화의 활동사진적 본질은 사라져간 것에 대한 상실감을 더 강렬하게 환기한다. 사진이 세계의 어떤 순간의 고정된 이미지를 안온하게 제시한다면 〈봄날은 간다〉는 실제 세계처럼 스크린 위의 화면도 여전히 우리 삶과 같이 흘러가고 있다는 덧없는 유동성의 감각을 부추기는 것이다.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는 사라져 가는 소리를 채집하고, 라디오 PD이자 아나운서인 은수는 그 소리를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방영한다. 시간과 공간을 방부 처리해 보존하는 사진처럼 그들의 직업은 현실의 어떤 순간에 흘러가 사라진 소리를 녹음해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충일감을 느끼게 했던 순간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남편을 잊지 못하는 상우의 할머니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틈만 나면 역에 나가 죽은 남편을 기다리는 할머니는 본질적으로 상우의 직업이 갖고 있는 속성, 시간의 흐름에 거역하려는 욕망을 행동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은수에게 상우는 말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원과 찰나의 대비 속에서 〈봄날은 간다〉는 지속적으로 흘러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감각을 환기한다. 한번 지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고 남은 것은 기억하는 일뿐이다. 첫 번째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허진호는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을 카메라의 압침으로 고정해 놓으려 한다. 채워짐과 비워짐의 공간 역학이 주는 정서를 환기해, 지나간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슬픔을 표나지 않게, 그러나 깊은 슬픔으로 끌어올린다.


유지태와 이영애 두 배우도 눈짓과 손짓과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몸짓만으로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화면에 새긴다. 풍경과 주변 일상에서 등장 인물의 마음을 담는 〈봄날은 간다〉는 올해 한국 영화 중 군계일학이다.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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