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은 〈친구〉가 "참말 고맙데이"
  • 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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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시 '원대한 꿈' 실현 기폭제…

촬영 유치·편의 제공에 적극적


영화 〈친구〉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부산 사투리 "마이 묵었다 아이가, 인자 고마 해라"가 전국에서 유행하고 있다. 상대방을 부를 때는 "어이, 친구야", 사소한 일에도 "친구야 고맙데이"가 자연스러운 표현이 되었지만, 요즘 부산은 다른 의미에서 "친구야 고맙데이"를 실감하고 있다. 〈친구〉의 흥행 성공이, 부산이 꿈꾸어 온 '영화 도시'로 성장하는 데 기폭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영화제작 지원 기구인 부산영상위원회(운영위원장 명계남)에는 부산 지역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싶다는 문의 전화가 하루 3∼4통씩 걸려 온다. 협의가 진행 중인 영화만 45편에 이른다. 지난해 국내 영화 전체 편수와 맞먹는 숫자다.


부산시는 올해 6회째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김동호)를 계속 지원하고 영화박물관·시네마테크·영상 벤처센터를 조성해 부산을 국제적인 영화·영상 도시로 키운다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2004년까지 영화 촬영하기 좋은 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행사로 정착시킨다는 것이 1단계 목표다. 2단계로 2007년까지 촬영과 디지털 후반 작업, 필름 마켓 분야에서 모두 아시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부산시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맨땅에 헤딩하는 무모한 시도로 비쳤던 것이 사실이다. 국제적인 것은 고사하고, 국내 영화 제작업체 1백91개 중 부산에 주소를 둔 회사는 단 2개였고(경기 1, 광주 1) 나머지는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다. 문화·광고 영화사 역시 전체 2백11개사 중 부산에는 단 1개(서울 1백88, 인천 2, 경기 4, 대전 5, 대구 3, 충북 1, 전북 1, 광주 5, 전남 1) 뿐이었다. 사정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처럼 영화의 '영'자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내놓은 '원대한 꿈'은, 민선 시장의 전시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 영화의 흐름을 읽는 아시아 최대 잔치이자 세계 시장을 향한 아시아 영화의 전진 기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5회 때는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대거 출품되었다.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까지 부산은 반쪽짜리 영화 도시에 그쳤다. 판은 벌여 놓았지만, 출품된 영화 중에 정작 '메이드 인 부산'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부산 지역에서 제작 또는 촬영하는 영화를 지원하기 위해 창립한 기구가 부산영상위원회이다. 부산시 산하 사단법인 형태인 부산영상위원회는 지역 영화사가 부산에서 제작하는 영화에는 최고 3천만원, 외지 영화사가 부산에서 촬영하는 경우에는 천만원까지 비용을 지원한다.


더 돋보이는 부분은 촬영 편의 제공이다. 장소 헌팅에서부터 엑스트라 섭외, 촬영 뒷정리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해준다. 교통 통제와 행정 협의 등 까다로운 일거리도 대행한다. 부산영상위원회 창립 이후 지금까지 부산에서 촬영된 영화는 모두 13편이다. 첫 작품 〈리베라 메〉(감독 양윤호)를 비롯해 〈범일동 블루스〉(김희진) 〈천사몽〉(박희준) 〈친구〉(곽경택) 등 6편이 부산 올 로케이션으로 제작되었고, 일부 장면을 촬영한 영화는 〈선물〉(오기환) 등 7편이다.


〈리베라 메〉의 경우 촬영 기간 3개월에, 장소만도 부산시 소방본부에서부터 낡은 서민아파트까지 30군데에 달했다. 소방관 1천4백80명과 의용소방관 100명이 엑스트라를 맡았고, 이들이 사용한 소방 장비와 소방차 3백대, 소방 헬기 2대도 지원했다.


교통 통제·촬영 뒷정리 등 궂은일 대행




〈친구〉 역시 경찰차와 소방차 등 장비를 지원받았다. 동수(장동건)가 야구 방망이로 복도 유리창을 몽땅 박살 내는 '비교육적인 장면'이 세트가 아닌 실제 학교에서 촬영되었다. 곽경택 감독의 후배인 부산고교 학생 100명이 기꺼이 1970∼1980년대식 '빡빡머리'를 하고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남성여고생 1백50명도 '귀밑 3cm' 단발머리를 재현했다. 제작사가 직접 섭외했다면 성사되기 쉽지 않았을 일들이다. 〈리베라 메〉나 〈친구〉의 성공은 부산영상위원회의 이런 뒷받침에 힘 입은 바 크다.


다른 영화들의 경우도 군부대와 국립수산진흥원(〈광시곡〉), 지하철 공사장(〈나비〉), 부산교도소와 부산지방검찰청(〈인디안 섬머〉) 등 섭외가 까다로운 장소를 빌려 촬영을 마무리했다. 부산시청과 각 구청, 경찰서·소방서·쓰레기처리장 등은 단골 촬영장으로 쓰인다. 교통을 통제하는 일도 일상사가 되었다. 〈리베라 메〉 〈천사몽〉 〈나비〉 〈광시곡〉 〈친구〉 등 규모가 큰 영화 대부분이 몇 시간에서 며칠에 걸쳐 대로를 막았다. 〈친구〉는 주무대로 삼은 범일동 국제호텔 앞 도로를 지나는 시내 버스 노선을 7개나 변경해 가며 4일에 걸쳐 찍었다.


부산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 부산영상위원회의 포부이다. 김정현 부산영상위원회 홍보팀장은 "국제영화제가 좋은 반응을 얻어 시민이 영화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촬영 여건 조성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장소나 출연 협조를 요청하면 웬만한 곳은 흔쾌히 응해 영화를 통한 민·관·산·학 협동이 이루어지곤 한다"라고 말했다.


부산이 영화 촬영지로 지닌 또 다른 강점은 '다양한 얼굴'이다. 산과 강과 바다를 모두 갖춘 데다, 서면과 광복동으로 대표되는 번화가가 있는가 하면 자갈치와 영도다리 등의 명물이 있고, 초량동·범일동 등에는 〈친구〉에도 등장한 20∼30년 전 달동네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부산 역시 밑지는 일은 아니다. 부산영상위원회가 지난해 지원한 제작비는 10편에 1억원이었다. 그러나 제작진이 부산에 머무르면서 장비 구입비와 사용료 등으로 지출한 돈은 줄잡아 23억원으로 추산된다. 개인적으로 쓴 돈은 제외한 금액이다. 지난 1월 말 촬영에 들어가 8월 말까지 촬영을 계속할 예정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감독 장선우)의 경우, 1백30명에 달하는 스태프가 아예 서면의 한 아파트 20채를 전세로 얻어 머무르고 있다. 주·조연급 배우들은 특급 호텔에 숙박한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알짜배기 장사인 셈이다. 부산시가 영화산업을 '밀레니엄 10대 역점 사업' 중 하나로 선정한 이유가 거기 있다. 아직까지 별다른 해외 홍보가 없었는데도 〈쉘 위 댄스〉 제작사인 일본의 알타미라 픽처 사가 가족영화 〈터치볼 고고〉의 장소 헌팅에 나섰고, 〈러브 레터〉의 로봇커뮤니케이션도 액션 영화 〈버디〉 제작을 앞두고 로케이션 자료를 요청하는 등 입소문을 통해 부산 지역 촬영을 협의 중인 해외 영화도 5편에 이른다.


부산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영화 산업의 기술 인프라가 전혀 구축되지 않아 촬영팀을 유치해 '몸으로 때우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과 인근 경남·울산 등을 망라한 광범위한 로케이션 자료를 데이터 베이스화하고 각국의 필름 커미셔너들과도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했다. 영상벤처센터 설립, 촬영 세트 건설도 추진 중이다. 지금 부산은 〈리베라 메〉로 피운 부산 영화의 불꽃을 〈친구〉를 통해 활활 사르고 있다. 친구야 고맙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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