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돌아온 스릴러의 계절 "떨 준비는 되었겠지?"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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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영화, 지난해 부진 딛고 '설욕전' 별러
〈소름〉〈세이 예스〉'엄선된 2편' 개봉


스릴러의 계절이다. 지난해 한국 공포 영화 붐이 악몽으로 끝난 탓인지 여름 성수기를 겨냥하는 한국 공포물은 단 두 편. 하지만 정선된 작품인 만큼 기대를 가져볼 만하다.




정선된 두 편 : 8월에 선보일 한국 스릴러 <소름>(왼쪽)과 <세이 예스>(오른쪽). 지난해 공포 영화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8월 첫주에 선보이는 영화 〈소름〉은 지난 7월20일 막을 내린 부천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면서 주가가 치솟았다. 유학 시절 만든 단편 영화로 높은 평가를 받은 윤종찬 감독의 데뷔작으로 '장르 영화의 관습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지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받으며 관심을 끌고 있다(90쪽 상자 기사 참조).


8월18일 개봉하는 〈세이 예스〉는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온 김성홍 감독의 네 번째 공포 영화다. 〈손톱〉 〈올가미〉 〈신장개업〉 등을 통해 사이코 스릴러와 코믹 잔혹극을 두루 시도해온 김감독이 그동안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전문 감독으로서 승부수를 띄웠다. 박중훈·추상미 등 중량감 있는 스타 배우를 기용한 데서도 그의 결의를 엿볼 수 있다. 영화는 신혼 여행길에 오른 신혼 부부가 영문도 모른 채 연쇄 살인마에게 죽도록 쫓긴다는 내용. 살인마 M(박중훈)은, 새신랑에게 "아내를 죽이고 나를 살려 달라고 말하라"고 요구하며 광란의 살인극을 벌인다.


방송도 영화 감독에게 공포물 의뢰


여름이면 으레 한철 장사에 나서곤 하던 방송사도 올해는 채비를 단단히 했다. '납량 특집=전설의 고향'이라는 틀을 깨고 한복을 벗어 던진 것이다. KBS는 아예 납량 특집을 외부 제작으로 돌렸다. 한국방송공사가 기획하고 외주 프로덕션 캐슬인더스카이가 제작하는 〈도시 괴담〉 시리즈는 영화 감독 4명이 참여한 '4인4색 프로젝트'로 7월29일부터 한달 동안 방영한다.


KBS가 외부에 제작을 맡긴 까닭은 새로운 감각을 원하는 시청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외주제작국 이성연 프로듀서는 "〈X-파일〉이 마니아 시청자를 거느리고 있는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과 과학적인 수사 기법이 얽혀 들어가는 재미 때문이다. 우리의 공포물도 더 현대적이고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납량 특집 단골 메뉴였던 〈전설의 고향〉은, 새로 제작하지 않고 '앙코르편'만 편성되어 밤 12시 이후에 방영되고 있다.




〈도시 괴담〉 시리즈가 겨냥하는 것은 퓨전 스릴러. 제작을 맡은 캐슬인더스카이의 김대억 이사는 "공포와 멜로, 공포와 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 흐름을 적극 수용하겠다"라고 말했다. 첫 편은 〈죽은 자의 노래〉. 〈유리〉와 〈리베라 메〉를 연출한 양윤호 감독이 처음 시도하는 공포물인 데다 트랜스젠더 하리수씨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고 있다.


공포물에 관한 한 충무로는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공포물은 배우의 지명도나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이야기나 분위기를 이끄는 감독의 연출력이 중요하게 꼽힌다. 하지만 충무로에서 전통적인 공포 영화의 맥이 끊긴 지는 이미 오래다. 억울한 원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해원(解寃) 드라마는 브라운관에서만 지겹도록 되풀이될 뿐이었다. 충무로 공포 영화의 마지막 주자는, 2000년대 들어 화려하게 부활한 김기영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전통적인 원혼 코드에 갇히지 않고 근대화 과정에서 거세하고 억압한 욕망이 의식 아래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파괴적으로 튀어 나오는 과정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재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한번 끊긴 맥을 잇기는 지난했다. 공포 영화는 여름 극장가의 단골 손님이지만 주인공은 늘 외화였다. 어렵사리 제작해도 정작 뚜껑을 열고 보면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고집스럽게 공포 영화를 천착해온 김성홍 감독은 '단절'로 인한 고통을 특히 많이 겪었다. 일상 속의 갈등을 모티브로 삼은 심리 스릴러 〈손톱〉과 〈올가미〉는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멜로 영화가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떠오른 것은 그만큼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 반면 공포 영화는 절대 편수가 모자라 장르 영화로서 노하우를 축적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만들어지는 영화에는 과부하가 걸리기 일쑤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던 것이 3∼4년 전부터 변화할 조짐이 생겼다. 의외의 흥행몰이로 영화사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여고괴담〉(연출 박기형)과 코믹 잔혹극이라는 장르를 선보인 〈조용한 가족〉(연출 김지운)이 일등공신이다. 〈여고괴담〉은 터치가 다소 거칠지만 원혼들의 거처가 되다시피 한 학교를 소재로 교육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성을 가미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대중에게 익숙한 해원 코드와 억압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화장실 괴담의 코드를 적절히 융합한 것이 성공 요인. 〈여고괴담 2〉는, 전편만큼 폭발력을 갖지는 못했지만 훨씬 섬세하고 세련된 심리 묘사로 소수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조용한 가족〉은 독창성을 인정받아 일본에서 리메이크 영화가 제작될 정도. 김지운 감독이 열어젖뜨린 코믹 잔혹극의 흐름은 비록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인육 짜장면'이라는 중국집 괴담을 소재로 삼은 〈신장개업〉으로 이어졌다.


'돈 안된다'는 속설 뒤집은 〈텔미 섬딩〉


한국에서 스릴러는 돈이 안 된다는 충무로의 속설을 보기좋게 뒤집은 것은 한석규 심은하가 주연한 〈텔미 섬딩〉(연출 장윤현)이다. 〈여고괴담〉이 '어쩌다 터진' 효자 영화인 데 비해 〈텔미 섬딩〉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돈과 품을 많이 들여 블록버스터로 가닥을 잡고 시작했기에 성과가 더욱 돋보였다. 본격적인 하드 코어 스릴러를 표방한 〈텔미 섬딩〉의 코드는 할리우드의 사이코 추리물과 유사하지만 깔끔하고 긴장감 있는 연출로 한국 공포물의 경계를 넓혔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면서 친숙한 느낌의 일본 공포물이 쏟아져 들어온 것도 자극제가 되었다. 할리우드의 공포물이 피가 흥건하고 숨이 턱에 차는 액션 스릴러, 혹은 이상 심리를 파고드는 사이코 스릴러가 주류인 데 비해 일본은 '이유 있는 귀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스멀거리는 공포를 전해준다. 한·일 합작으로 리메이크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링〉 시리즈를 비롯해 〈소용돌이〉 〈하나코〉 〈여우령〉 〈사국〉은 연출자의 개성과 관객의 관심이 맞아떨어지면 얼마든지 '적은 돈으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난해에는 어렵사리 궤도에 오른 공포 영화에 암담한 일이 줄을 이었다. 〈여고괴담〉 신드롬을 일으켰던 박기형 감독은 의욕적으로 판타지 스릴러 〈비밀〉을 선보였지만 관객과 폭넓게 교감하는 데 실패했다. 게다가 한심하게도 공포 영화의 가능성에 고무된 기획자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고만고만한 영화를 내놓는 바람에 관객이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쏟아진 피범벅 영화 네 편(〈가위〉 〈하피〉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은 졸속 기획이라는 혹평 속에 흥행에서도 죽을 쑤었다. 물론 공포 영화가 '장사가 되는 장르 영화'로 자리 잡기까지 만들어진 영화들의 완성도는 들쭉날쭉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기획에서 의욕을 부리면, 몇가지 성과는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할리우드의 10대 공포물을 뒤쫓다가 줄줄이 패가망신한 것은 '의도도 결과도 사줄 것이 없는' 기획으로 비난을 받을 만했다.


따라서 8월에 선보일 〈소름〉과 〈세이 예스〉는 지난해의 악몽을 떨쳐내야 한다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충무로에는 촬영 중이거나 캐스팅에 나선 스릴러 영화가 다섯 편에 이른다. 그들의 행보는 〈소름〉과 〈세이 예스〉의 실적에 따라 빨라지거나 주춤해질 것이다.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명랑 소녀 이니드(도라 버치).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조차 5초 안에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바꿀 수 있는 심술의 소유자다.




깜찍한 외모와 달리 가시돋친 독설로 악명 높은 그녀는 친구 레베카(스칼렛 조핸슨)와 함께 끊임없이 말썽을 일삼는다. 주종목은 구애 광고 보고 장난전화 하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골탕먹이기, 음식점 직원 창피주기.


독립선언을 한 이니드는 레베카와 함께 아파트에 들어간다. 그러나 돈벌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렵다. 집세를 벌기 위해 취직한 직장에서 30분 만에 잘리는 등 수난이 계속된다. 돈을 벌기 위해 악전고투하던 이니드는 우연히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세상 모든 남자를 우습게만 보았던 명랑 소녀 이니드의 마음을 뒤흔든 남자는 시모어(스티브 부세미). 매력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마흔 살의 순진남이다. 남들이 버리는 오래된 잡동사니를 모으는 것이 취미이고, 허리에 항상 초강력 보안대를 차고 다니는 그가 이니드의 눈에는 브레드 피트보다 더 멋있게 보인다.


그러나 이니드의 마음이 시모어에게 가면 갈수록 단짝 친구 레베카의 마음은 멀어져만 간다. 레베카와의 찰떡 우정을 뒤흔든 이니드의 사랑이 이루어질까? 아니면 레베카와의 우정이 다시 빛을 발할까?(6월21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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