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성수 감독 · 조민환 PD 인터뷰/〈무사〉
  • 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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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전 치르듯 영화 만들었다"/
"코리안우드가 아시안우드 주역 될 것"

순제작비만 55억원(총제작비 70억원). 사용한 필름 35만 자(보통 영화 7만 자). 촬영해 온 컷수 4천(보통 영화 8백).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 3백명. 〈무사〉는 그 숫자만으로도 사람들을 압도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예스터데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제작비가 70억원대인 대형 영화가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사〉의 성패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가늠하게 해준다.


하지만 〈무사〉에 대한 평은 극단을 달리고 있다. 컵에 물이 반 잔 채워진 것을 놓고 ‘반 잔이나 찼다'‘반 잔밖에 채워지지 않았다'라고 다르게 해석하듯 〈무사〉가 이루어낸 성취에 대해서도 칭찬과 비난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 일군의 평론가들이 〈무사〉가 이루어낸 성취에 주목하자고 말하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작다고 힐난한다.


만km를 대장정한 끝에 〈무사〉를 만들어 낸 김성수 감독을 만나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성과와 한계를 알아보았다. 할말이 많은 듯 김감독은 영화의 러닝타임(2시간35분)을 훨씬 넘긴 3시간30분 동안 말들을 쏟아냈다. 이 자리에는 〈비트〉 〈태양은 없다〉에 이어 김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추어 환상의 콤비라고 불리는 조민환 프로듀서도 동석했다.




촬영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조민환 PD : 8월에 중웨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모랫바람을 맞으며 시작한 촬영이 12월에 싱청 해안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끝났다.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했다. 하지만 지나고 나니까 그것도 추억이 되는 것 같다. 농담인지 모르겠지만 스태프 중에서는 더 힘든 곳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김성수 감독 : 농담일 것이다.


100% 해외 로케이션이라는 것이 큰 부담이었을 것 같은데.


김 : 다행히 배우와 스태프가 근성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다. 촬영 기간에 모랫바람이 일었는데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때다 하고 뛰어들어 가는 것을 보고 중국 스태프들이 혀를 내둘렀다. 여솔 역을 맡은 정우성은 영하 20도인데도 웃통을 벗어젖히는 열의를 보었다. 나름으로 고려 영화인의 기개를 보여주고 왔다.


영화 제작에 거액이 투입됐는데 부담은 없었나?


조 : 블록버스터는 단지 돈이 얼마 더 드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공룡이다. 그 공룡을 다룰 수 있는 사람만이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 수 있다. 프로듀서는 감독이 정신적 여유를 가지고 영화에 임할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 주지 못했다.


김 : 그 상황에서 여유를 느끼면 이상한 것 아닌가?


조 : 감독에게 무리한 요구를 많이 했는데 김감독은 그걸 모두 감내했다. 현장 대응 능력과 현장 장악 능력이 탁월한 김감독은 블록버스터라는 공룡을 부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 감독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래서인가, 김감독이 극중의 최 정 장군처럼 스태프와 배우를 다그쳤다는데.


조 : 중국 배우의 계약 기간이 끝나서 난감했을 때 김감독에게 얘기했더니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럼 밤낮으로 찍으면 되겠네.' 김감독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김 : 나를 최 정에 비견해 준다면 영광이다(조프로듀서의 역할은 진 립에 비견할 만했다). 현장에서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많았다. 마치 게릴라전을 방불케 하는 촬영이 많아 ‘지랄숏'이라는 말이 생겼다.


〈무사〉는 기획이 돋보였다는 평이다. 비판론도 만만치 않지만 상황이나 캐릭터에 비교적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기획했나?


조 : 5년 정도 기획했다. 촬영 전에도 현지에서 10개월이나 머물면서 모든 과정을 준비했다. 좋은 전범이 되리라고 본다.


김 : 대형 프로젝트인 〈무사〉가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국 영화가 발전한 덕분이다. 한국 영화가 발전한 토대에서 이 영화는 완성될 수 있었다.


해외 마케팅에도 신경을 쓴 것 같은데. 적장인 람불화(위롱광)의 비중을 크게 한 것은 중국 관객을 의식한 것 아닌가?


김 : 캐스팅할 때나 음악을 사용할 때 나름으로 해외 시장에 신경을 썼다. 이 영화 이전에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던 장쯔이가 〈와호장룡〉으로 잘 알려져 해외 판매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에까지 마케팅을 감안하지는 않았다.


조 : 오히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뜯어고친다면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함께 작업한 중국 배우나 스태프는 어땠나?


조 :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시스템도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다. 중국 프로듀서 장샤는 〈패왕별희〉를 제작한 프로다. 칸 영화제에서 〈시황제 암살사건〉으로 최우수 미술공헌상을 받은 미술감독 훠팅샤오를 비롯해 〈황비홍〉 〈와호장룡〉의 의상을 담당한 황바우롱, 〈와호장룡〉의 청명검을 만들었던 도구 담당 리밍산 모두 아시아 최고 수준이었다.


김 : 중국 배우들이 까다롭다고 해서 사실 속으로 겁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직접 겪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장쯔이와 위롱광 모두 혼신의 연기를 해주었고, 현장에서도 좋은 매너를 보여주었다.


조 : 하지만 용호군으로 나온 중국인 배우 두 사람은 정말 말썽꾼이었다. 다들 ‘저 사람들 언제 사라지나'하는 심정이었는데, 심지어 중국 스태프가 ‘저 둘은 언제 죽냐?'고 물어올 정도였다. 죽는 장면이 나와서 쾌재를 불렀는데, 마지막까지 골치를 썩였다. 이리저리 기어다니더니 시체끼리 수다를 떨었다.


할리우드에 대적할 아시안우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무사〉도 그 예로 꼽히는데, 아시아 영화의 전망은?


김 : 토론토 영화제에 가서 외신과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물어보는 것이 모두 똑 같았다. ‘최근 아시아 영화가 득세하고 있다. 이전에는 영화제에서 그랬는데 지금은 시장에서도 통한다. 앞으로 어느 정도 발전할 것 같으냐?'라고 물어 왔다. 그래서 ‘이제 너희도 우리 영화 볼 때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대답했다. 아시아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국내 영화가 4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다. 우리가 아시안우드의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번 아시안우드의 드림팀을 꼽아 본다면? 무사도 좋은 모델이 될 것 같은데.


조/김 : 촬영지는 중국이 좋겠다. 과거·현재·미래를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 배우는 일본·한국·홍콩 배우를 쓰는 것이 낫겠다. 그렇게 하면 아시아에서 가장 큰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와 세계 시장을 모두 겨냥할 수 있다. 특수 효과는 홍콩이 맡고 음향은 일본이 맡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제작과 연출은 한국이 하면 잘할 것 같다.


〈무사〉 흥행은 어떻게 보는가?


김 :〈무사〉의 운명을 믿는다. 영화는 영화마다 관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유기체적 힘이 있다. 〈무사〉에 들인 수고, 〈무사〉가 차지하는 의미가 흥행이라는 생명력을 낳을 것으로 본다.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 주었으면 좋겠다. 지평을 넓힌 것에 만족한다.


조 : 고액 과외를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무사〉를 통해서 얻은 노하우가 많다. 파급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좀더 큰 틀에서 평가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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