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성들이 말하는 '9 · 11 테러와 아프간 전쟁'
  • 이문재 편집위원 (moon@e-sisa.co.kr)
  • 승인 200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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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충돌 아닌 무지의 충돌이다"
"서방 세계가 오만에서 벗어나야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9·11 테러가 갖고 있는 놀라움과 현재성 때문에 지식인들이 주제를 선택할 자유마저 박탈당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2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서 2001 평화상을 수상하며 강연한 하버마스는 "우리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존 웨인을 흉내 내면서 누가 제일 먼저 허리춤에서 총을 뽑아드는지 내기하려고 나서야 한다는 유혹이 무척 크다"라고 말했다.




'지식인 존 웨인'은 미국인도 아니었고 남성도 아니었다. 가장 먼저 총을 뽑아든 지식인은 인도의 여성 작가 아룬다티 로이였다. 그녀는 빨리 뽑았을 뿐만 아니라 총성도 요란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대통령의 도플 갱어이다. 이런 종류의 쌍둥이 야수는 하나같이 자기가 아름답고 교양 있다고 주장한다." 〈작은 것들의 신〉으로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한 로이는 지난 9월29일 영국의 진보지 〈가디언〉에 '무한 정의의 대수학'이라는 제목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만들어낸'(미국인 일반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부도덕성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구인가? 그는 미국 집안의 비밀이다. 냉혹한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버려진 세계의 갈비뼈로 빚어진 것이 바로 빈 라덴이다." 아룬다티 로이


로이는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이 비행기 자살 테러를 당한 직후 미국 텔레비전 뉴스 진행자가 "지난 화요일(9월11일)만큼 선과 악의 진면목이 선명하게 증명된 일은 없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사람들을 학살했다"라고 발언한 것에 주목했다. 로이가 보기에 미국의 반테러 전쟁은 '미국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을 잘 알고 있었다. 로이는 아프가니스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적극 지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 사회가 로이의 '표현의 자유'를 너그럽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독일 제1방송 ARD의 앵커 울리히 비커트가 부시와 빈 라덴의 사고방식이 같다는 로이의 글을 뉴스에 인용했다가 대중의 분노를 산 것이다. 반미주의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은 비커트는 시청자들에게 '오해받을 소지가 있었다'며 세 차례나 사과해야 했다. 비커트를 옹호하고 나선 독일 지식인은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양철북〉 작가 귄터 그라스였다.


귄터 그라스 "미국 CIA도 테러 조직이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의 침묵의 폭력과 (미국의) 미사일 너머에서 두 세계를 소통시킬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발전시켜야 한다."
위르겐 하버마스


그라스는 지난 10월10일 〈슈피겔 온라인〉과 가진 두 차례 인터뷰에서 "미국을 비판한 것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다. 미국에 대한 나의 비판은 우정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라스는 군사 공격은 결코 문명적일 수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제한된 군사 공격이라고 해도 오사마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다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라스는 비행기 테러를 통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의를 겪은 미국 국민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정책은 계속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라스도 인도 작가 로이와 같은 시각이다. 그라스는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교육을 받고 돈도 받았다. 무자헤딘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전적으로 (소련에 반대하는) 미국의 정책 목표 때문이었다. 중앙정보국은 그 행태로 볼 때, 근본적으로 테러 조직이다"라고 말했다. 그라스는 미국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대체 왜 세계가 우리를 그토록 증오하는가'라는 질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며, 이 같은 질문은 뒤늦었지만 정당하다고 평가했다.


그라스는 세계화가 야기하는 '남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독일 총리 빌리 그란트가 촉구했듯이, 제3 세계 국가들을 동등하게 대우하고, 세계화 피해자들인 남쪽 국가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라스는, 남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테러리즘은 극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제 전지구적 동맹은 외부 안보가 아니라 내부 안보를 위해 필요해지고 있다. 세계 이익을 위한 코스모폴리탄적인 국가를 모색해야 한다." 울리히 벡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고 펜타곤이 화염에 휩싸였을 때, 세계 지식인들이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이었다.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이자 작가인 수전 손탁은 9월24일자 〈뉴요커〉에서 "이 사건은 문명·자유·인간성·자유 세계에 대한 비겁한 공격이 아니라, 세계 초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에 대한 공격이다. 미국과 특정 동맹국의 행동이 빚어낸 결과라는 인식은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미국이 강하다는 것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러나 미국이 지향해야 할 바는 그게 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헌팅턴은 이번 테러 사건이 문명 충돌이 아니라고 즉각 반박하고 나섰지만,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 문명(문학)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컬럼비아 대학 석좌교수)는 문명충돌론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세계적인 석학 반열에 오른 사이드는 〈더 네이션〉 10월22일자에서, '동기가 병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자살 공격과 대량 학살이 헌팅턴의 논제에 대한 증거가 되고 말았다'며,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신문 잡지가 우월성에 바탕을 둔 헌팅턴의 개념을 이용해 서방 세계의 분노에 불을 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이드는 문명 충돌이 아니라 '무지의 충돌'이라고 보았다. 사이드에 따르면, 서방 세계와 이슬람이라는 거대한 두 실체가 부주의하게 의인화하고 있으며, 엄청난 선동과 철저한 무지가 어떤 종교나 문명을 대변하는 과정에서 뻔뻔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냉전 공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서방 세계 대 나머지'라는 기본적 패러다임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사이드는, 이슬람은 서양의 바깥이 아니고 처음부터 서양 역사 안에 존재해 왔다고 지적했다. 사이드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논제는 세계의 전쟁과 같은 책략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당혹스러운 상호 의존성을 중요하게 이해하기보다는 방어적인 자기 기만을 강화하기에 적절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양의 몰이해는 신체를 노출시켰다는 이유로 여자 얼굴에 질산을 뿌리는 이슬람주의자들을 돕고 있다."
오르한 파묵


세계의 지성들은 세계사가 9·11 테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위험 사회〉 저자인 독일 사회학의 권위 울리히 벡은 사이드가 말한 '당혹스러운 상호 의존성'에 초점을 맞추어 코스모폴리탄적인 국가가 탄생하리라고 예고했다. 〈슈피겔〉 10월15일자에서 이번 테러리즘을 '내부 화성으로부터의 공격'이라고 규정한 벡은, 이번 사건이 한동안 분열되었던 진영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고 보았다.


벡에 따르면 '화성으로부터의 침공'이 미국과 서방 세계에 던진 메시지는 전지구적 동맹의 필요성이 다급하다는 것이었다. 이제 전지구적 동맹은 외부 안보가 아니라 한 국가의 내부 안보를 위해 절실해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 국가나 신자유주의 개념은 평가 절하하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벡은 강조한다. 외교 정책과 국내 정책, 국제 협력과 국내 안보가 서로 직접적으로 맞물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사는 9·11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뮌헨 시민인 벡은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나는 뮌헨 시민이다. 누가 뮌헨 시민을 대신하여 (막스 베버가 말한 국가의 본질적 권한인)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가? 뮌헨 시의회? 바이에른 주정부? 독일 연방 총리? 유럽의회? 나토? 미국 부시 대통령? 바로 이것이 불분명하게 되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국가의 결정은 더 이상 개별 국가의 자율적 사안이 아니다."(뮌헨을 서울로, 독일을 한국으로 바꾸어 읽어 보라. 9·11 테러 이후 국제 정치 지형이 어떤 흐름을 형성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벡은 비종교적인 국가가 종교의 다양성을 가능케 하듯이, 코스모폴리탄적인 국가는 헌법의 관용 원칙을 통해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정체성의 공존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테레리즘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그는 〈르 몽드〉 11월1일자에서 이번 테러는 모든 국가와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상상해 보았음직한 사건이라면서, 테러리즘이 바이러스처럼 만연해 있다고 보았다. 보드리야르는 제4차 세계대전을 상정한다. 1,2차 세계대전이 고전적 전쟁의 이미지에 부합했다면, 3차 세계대전은 냉전 체제 종식이었다.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4차 세계대전은 모든 세계적 질서와 모든 헤게모니적 지배에 저항하는 전혀 새로운 전쟁이다. 만일 이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면 테러리즘은 이슬람에 대항하리라는 것이다.




"서양과 비서양을 막론하고 학교는 아이들에게, 인간이 매우 다양하며, 이런 다양함이 내적 풍요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서양 계몽주의 철학은 순진하게도 선이 진보하면 점진적으로 악이 퇴행할 것이라고 믿은 나머지, 선과 악이 동시에 상승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보드리야르는 비관적이다. "테러리즘의 스펙터클은 스펙터클의 테러리즘을 강요한다. 이러한 비도덕적 매혹에 대항해 정치적 질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해결책은 없다. 그렇다고 전쟁이 그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9·11 테러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대한 세계 지식인과 작가 들의 '개입과 간섭'은 뚜렷한 공통 분모를 형성한다. 무엇보다도 미국 정부, 혹은 서방 세계가 무지와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철학자이자 세계적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와 하버마스도 같은 견해를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인도의 아룬다티 로이나 터키 출신 세계적 작가 오르한 파묵처럼 제3 세계 지식인들이 제3 세계 처지에 서서 더 공격적인 언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슈피겔 온라인〉 10월23일자에 실린 에세이에서 '열정과 이성'을 문제 삼았다. 에코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아랍인과 똑같이 차려입었지만,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다"라며, 자신이 성장한 문화의 뿌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매우 완강하다고 밝혔다. 에코가 보기에, 서양 문명은 다른 문명에 호기심을 가져 왔지만, 그것은 경멸하는 호기심이었다.


에코는 서양 문명의 미덕으로 인정받는 '차이의 인정'(그러나 이론일 뿐인)을 교실로 갖고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양과 비서양을 막론하고 아이들에게 '인간은 동등하다'는 거짓말을 가르치지 말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매우 다양하며,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내적 풍요에 이를 수 있다고 분명하게 일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코는 "이런 시대에는 다른 사람의 미신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미신에도 대항할 줄 알아야 한다. 분석과 비판이라는 무기를 가지고"라고 충고했다.


하버마스는 '무언의 틈새'라는 제목을 붙인 강연에서 9월11일 폭발한 것이 세속적 사회와 종교 사이의 긴장이라고 이해했다. 종교적 신념을 가진 테러리스트들이 세계화한 현대의 상징물을 악마 구현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근본주의를 지극히 현대적인 현상이라고 규정하는 하버마스는 '완고한 정통주의자들'이 중동뿐 아니라 서양과 동아시아에도 있다면서, 테러리스트들의 침묵의 폭력과 (미국의) 미사일 너머에서 두 세계를 소통시킬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계 경찰 국가 차원이 아니라 전세계적 수준에서 문명화를 진행시키는 창조적인 힘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기만 한 (과학 기술과 정치의) 세속화에 반대하면서, 종교와 거리를 두면서도 종교가 인간의 모듬살이에 기여하는 직관을 수용하는 태도가 아쉽다고 말했다(하버마스의 강연 전문은 계간 〈사회비평〉 겨울호에 실린다).




"엄청난 선동책과 철저한 무지가 어떤 종교나 문명을 대변하는 과정에 등장하고 있다. 서방 세계 대 나머지라는 냉전 공식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


9월11일, 이스탄불의 선착장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텔레비전을 지켜 보고 있던 오르한 파묵(〈하얀 성〉이라는 그의 출세작이 최근 국내에서 나왔다)은 9월28일 한 독일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평화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이슬람 국가를 깎아내리는 감정이라고 지적했다.


비행기를 폭탄으로 사용한 자살 테러에 대한 평범한 무슬림 노인의 반응("그거 정말 잘한 짓 아닌가!")을 전한 파묵은, 이슬람 세계에서 반미주의가 이슬람 지역의 독재 권력을 심화시키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테러리즘의 근본 원인을 소수 민족의 열등감이라고 분석하는 파묵은 이렇게 썼다.


'인류사에서 지금처럼 빈부의 격차가 심한 적도 없었다. 지금처럼 부자들의 생활이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눈앞에 펼쳐진 적도 없었다. 세상의 부자들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결코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더욱 나쁜 일이다." 파묵은 자기 만족적인 서양의 에고이즘이 동양과 서양 사이에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배배, 배, 배신, 배반이야.’ 관객들은 자신의 전매특허인 ‘노동집약형 액션’을 버리고 할리우드식 특수 효과에 의존해 영화를 찍은 청룽(成龍)을 외면했다.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수위에 올랐던 <턱시도>는 1주일 만에 1위 자리를 <몽정기>에게 내주고 2위로 밀려났다. 10대 소년들의 성적 판타지를 담은 <몽정기>는 성적 묘사만 난무하는 ‘발정기’라는 악평에도 불구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주말 개봉하는 영화 중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유명 배우들이 서로 카메오로 출연하겠다고 할 만큼 ‘각별한 사랑’을 받는 <오스틴 파워…> 시리즈는 이상하게도 한국에만 오면 ‘각별한 외면’을 받아왔다. 이번에는 과연 그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관심을 모으는 또 다른 작품은 <스위트 알라바마>이다. 이 영화에는 <금발이 너무해>로 제2의 멕 라이언이라는 평가를 받는 리즈 위더스푼이 출연한다. 본격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스타로 거듭나고 있는 위더스푼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 밖에 한국 영화 <하얀방>과 외화 <걸 파이트> <위험한 유혹> <이너프>가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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