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대니 보일 감독<트레인 스포팅>
  • 전찬일 (영화 평론가) ()
  • 승인 1997.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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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연출·인상적인 음악으로 마약과 청춘 묘사
트레인 스포팅
감독:대니 보일
주연:이완 맥그리거·조니 리 밀러

지난해 세계 영화계를 강타한 화제작이자 독립 영화의 대표작. 직업과 가정을 선택하는 대신 마약을 벗삼아 절망적으로 살아가는 스코틀랜드 출신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쓰레기 같은’ 삶을 묘사해 만성 무기력, 대처리즘에 대한 불만, 실업 등으로 늘 골치를 썩고 있는 영국의 이면을 파헤쳤다고 볼 수도 있다. 그 표면과 이면 중 어디에 주목할 것인가.

감독은 <셸로우 그레이브>로 혜성 같은 데뷔전을 치른 신예 대니 보일. 연이은 대히트로 영국의 쿠엔틴 타란티노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무비 데이터 베이스의 ‘네티즌들이 뽑은 역대 영화 2백50선’에서 <스타 워즈>에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했고, 영국에서는 <네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 다음으로 흥행 사상 베스트 2위를 기록했다는 사실 등에서 그 폭발적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개봉에 이르기까지 이곳에서 그간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까닭은 ‘황홀하고도 적나라한’ 헤로인 투여 장면 등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과 성기 노출 장면 등 3분30초 가량이 여기저기 잘려나간 채 선보였다. 그 흔적이 워낙 역력해 작품이 노린 충격 효과가 상당히 희석되었다. 그럼에도 고지식한 관객은 고개를 저을 정도로 충격적이며 파격적이다.

스탠리 큐브릭 식 재미가 장점이자 단점

우리 관객에게는 다소 낯선 마약이 소재여서만은 아니다. 뜻밖에도 섬뜩한 소재를 펼쳐 보이는 속도감과, 재치가 넘치고 때로는 경쾌한 느낌마저 주는 연출 방식 때문이다. 역동적 편집, 화려한 색채, 자유롭고 좀처럼 쉬지 않는 카메라, 거리낌없이 뒤틀리는 앵글, 스코틀랜드 사투리와 욕설이 난무하는 대사, 다분히 과장되었으며 자유 분방한 연기, 그리고 이기 팝(<러스트 포 라이프> <나이트클러빙>), 프라이멀 스크림(<트레인 스포팅>), 브라이언 이노(<딥 블루 데이> ), 루 리드(<퍼펙트 데이>), 언더월드(<본 슬리피>) 등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감상 요소가 될 법한 인상적인 음악….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영화의 주된 톤인 사실성을 휘감싸는 초현실적 분위기다. 그것은 화자이자 주인공인 렌튼(이완 맥그리거)이 헤로인 대용품을 찾아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의 변기 속으로 잠수했다가 나오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문제는 그러한 분위기가 소재에서보다는 연출 스타일에서 연유했다는 것이다. 또 이 작품이 마약에 의한 환각 작용에 치중하는 사이키델릭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펄프 픽션>보다 마약의 일상성과 현재성을 치밀하게 묘사한 사실적 영화 아닌가. 그럼에도 사실성을 압도하는 초현실성으로 인해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현실을 향한 발언력은 물론 문제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은 큰 약점이다.

타란티노 흉내내기의 당연한 결과인가, 90년대식 스타일인가. 분명한 것은 감독이 사실적이고 리얼리즘적인 접근은 관객들, 특히 젊은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으리라는 것이다. 비록 마약과 같은 현실적 소재를 다루더라도 ‘재미’는 필수적이랄까. 그래서인지, 대니 보일은 폭발적 인기를 끈 어빈 웰시의 동명 원작을 켄 로치(<랜드 앤 프리덤>)나 마이크 리(<비밀과 거짓말>)처럼 사회적 리얼리즘이 아니라 스탠리 큐브릭 식의 스타일리즘으로 풀었다.

영화는 여러 모로 큐브릭에게 X등급을 안겨준 <클락워크 오렌지>(72년)를 연상시킨다. 볼케이노 나이트클럽 벽에 쓰여 있는 글이 <클락워크 오렌지>의 물로코 바의 그것과 똑같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외에 비틀스 등을 인용하고 지시하는 것은 영화적 재미를 확보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바로 이 재미가 <트레인 스포팅>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다. 전세계적 열광은 그 재미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그 때문에 토니 레인즈가 지적한 것처럼 ‘공허한 작품’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공허하지는 않더라도 영화의 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그 재미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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