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 전찬일 (영화 평론가) ()
  • 승인 1997.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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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잔치에도 ‘옥의 티’ 있다
<키친>(홍콩·임호 감독)이 부천 초이스의 대상 ‘베스트 오브 부천’을 차지하면서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8.29~9.5·부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2위에 해당하는 심사위원상은 <프리웨이> (미국·매튜 브라이트)에, 관객들의 현장 투표에 의한 시티즌 초이스는 <어글리>(뉴질랜드·스콧 레이널즈)에, PC통신 집계에 의한 네티즌 초이스는 <접속>(한국·장윤현)에 돌아갔다.

비판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제1회 부천영화제는 성공적이었다. 10만 명에 달하는 관객들의 성원과, 악조건에서도 성심성의로 임한 영화제 집행부와 자원봉사자들이 흘린 땀의 결실이다.

아쉬움도 있었다. 여기저기 분산된 상영관, 교통 불편, 2시간 반밖에 안되는 빡빡한 상영 시간 간격, 일부 상영관의 협소함 등등. 열혈 관객들은 밥도 걸러야 했을 것이고, 발길을 돌린 시민들도 있었을 것이다. ID카드를 가진 ‘영화제 특권층’ 들은 영화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 표를 받으라는 지시에 위축되어 영화 보기를 포기하거나, 간혹 푸대접과 수모(특히 영시네마에서)를 당했을 법하다. 예산을 확보하려고 ‘거인’이라는 개인 이벤트사(행사 진행 중 부도를 냈다)를 끌어들인 것은 결정적 실책이었다.
이러한 결점을 들어 부천영화제의 의미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장점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언뜻 돋보인 것은 깔끔한 자막 처리. 주최측이 개발한 컴퓨터 자막 프로그램 ‘부천영화제 베이직’ 덕에 가능했다. 번역의 질에는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화면과 거의 어긋나지 않으면서 선명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은, 비경쟁이면서 부분적으로 경쟁 부문을 도입한 부천 초이스 총 열두 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고른’ 작품 수준이다. 미국(<영웅 갈가메스> <레트로액티브>)과 한국을 비롯하여 영국(<다크랜드>), 캐나다(<카르미나>), 홍콩, 이탈리아(<세인트 클라라>에 이르기까지 지역 안배에 신경을 썼음이 명백한데도, 작품 수준이 고르다니 참으로 놀랍다.

가능하면 자본의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우려는 ‘저예산 정신’도 사랑스러웠다. 그것은 출품작 중 가장 많은 돈을 들인 작품이 3백만 달러(약 27억원)를 써서 만든 <레트로액티브>였다는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럼에도 완성도에서 제작비를 수십 배 쏟아부었건만 진부할 대로 진부한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손색이 없었고, 재미·수준 면에서는 오히려 능가했다. 돈타령 일쑤인 우리 영화인들이 참고해야 할 덕목이었다.

부천시 협조 인상적…관람 여건도 쾌적

일찍이 부산영화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관’의 협조 또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부천시는 삼정복지회관(2백82석)과 소사구청소향관(4백석)을 ‘한국 영화 회고전’과 ‘한국 애니메이션 재발견’을 위해, 시청 앞 부천영화제 광장을 <별나라 삼총사> <흥부와 놀부> 등 가족물을 위한 무료 상영관으로 활용함으로써 가족 단위 시민들을 영화제로 끌어들이는 소중한 성과를 올렸다.

유료 상영관으로는 시민회관(1천2백18석)을 부천 초이스를 상영하는 메인 극장으로, 8월에 갓 입주한 시 청사 대강당(7백4석)을 월드 판타스틱 부문 등을 위한 상영관으로 개방해 부산에 비해 쾌적한 관람 여건을 조성해 주었다.

이쯤 되면 부산에 이어 두 번째로 국제 영화제를 개최했다는 자부심을 넘어, 그저 영화인의, 영화인에 의한, 영화인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시민의 잔치였다고 뿌듯해 할 법하다. 그러나 기쁨에 도취하기에는 이르다. 장점들이 부천영화제에 굴레와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 우선 앞으로도 계속해서 올해처럼 수준이 고른 작품을, 게다가 프로그래머 한 사람의 힘으로 골라내고 초청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다.
이번 영화제가 성공한 것이 영화를 보는 안목과 실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화광 김홍준 감독이 프로그래머로 활약한 덕이 크다는 것은 자명하다.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것은 김홍준 감독이 언제까지 그 일을 맡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가 감독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면 과연 누가 그 역을 대신하며, 게다가 그만큼 탁월하게 수행할 수 있겠는가. 지금으로서는 난망하다. 따라서 당장 대두되는 중요한 일은, ‘한국 영화 세계화를 위한 국제적 인력 발굴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의 협조도 그렇게 단순해 보이지는 않는다. 상영관 등 여러 측면에서 부천영화제에는 앞으로도 관의 역할이 지대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영화제 집행부가 관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해야 한다는 것인데, 뜻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생각보다 문제가 커질 것이 틀림없다. 시장이 바뀌고 집행부가 새로 구성되더라도 영화제가 계속 순항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그래서이다.

검열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대 문제다. 부천영화제에서는 단편 걸작선에 들어 있던 <좀비1>(네덜란드·15분)이 공식으로 상영 불허되고, 국내 영화사가 수입해 이미 한글 자막까지 넣은 <떼시스>의 경우 러닝 타임이 1백30분인데도 실제로는 1백20분 가량만 상영되는 불상사가 있었다.

‘판타스틱’ 의미 명확해야 차별화 성공

가뜩이나 검열을 의식해 출품작을 선정했다는 의혹이 들던 차에 벌어진 이 사태와 관련해서는 공연윤리위원회와 수입업자는 물론, 영화제 집행부측이 비판받아 마땅하다. 특히 ‘제2의 <크래시> 사건’이라 할 수 있을 <떼시스>와 관련해서는, 그처럼 잘려나간 작품을 부천 초이스의 심사 대상에 넣어도 되는 것인가. 아울러 명색이 국제 영화제라면서 심사위원단 기자 회견에서 검열이 주요 이슈로 거론되었다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판타스틱’이라는 용어의 모호함을 말해야겠다. 애당초 부천영화제가 차별성을 띠게 된 것은 판타스틱이라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범위에 환상과 모험은 물론 사랑까지 집어넣음으로써 지극히 평범한 로맨스 영화까지 판타스틱 영화로 포괄했다. 좀더 폭넓게 대중을 끌어들이고 초청작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영화제의 특성 및 차별성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영화제 집행부측이 명목상으로만 판타스틱 영화제로 이끌어 나갈 것인지 명실상부한 판타스틱 영화제로 탈바꿈시킬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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