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험한 '남자 완전 정복'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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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라는 질문에 치를 떨어본 적이 있는가? ‘난 이렇게 생각한다’라며 겨우겨우 답변했는데 그 다음 질문이 “와이?”로 이어질 때의 황당함 말이다.

영화 <영어완전정복>은 이런 황당함에서 출발해, 그 진풍경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사실 한국의 ‘기획 영화’들이 보통 사람들의 애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이래 이 소재만큼 대중적인 것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9급 공무원 영주(이나영)와 백화점 구두 매장 직원 문수(장 혁). 동사무소에 영어가 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동료 공무원들은 소주병으로 뺑뺑이를 돌려 영주를 대표 선수로 뽑는다. 중2 때 영어를 포기한 영주는 마뜩치 않은 터벅걸음으로 학원 문을 넘는다.

하지만 어느새 영주는 퇴근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학원으로 돌진하는 모범 학생이 되어 있었다. 영어 때문이 아니라 남자 때문이다. 그러나 동료 수강생인 상대는 그녀에게 전혀 ‘사심’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의 마음을 빼앗은 ‘귀여운 느끼남’ 문수가 영어를 배우는 사연은 다소 애절하다. 어린 시절 외국으로 입양되어 떠난 여동생과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려는 것이다. 문수는 자기가 배운 영어를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떠먹여 주는 어미 제비 노릇을 하고 있다.

영화는, 기를 쓰고 문수에게 사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영주와, 직업 때문에 어떤 여성에게나 친절할 수는 있지만 취향은 섹시녀에게 고정된 문수의 어정쩡한 사랑 만들기를 쫓아간다. 가는 길 갈피갈피에 영어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 이야기를 꽂아둔다.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코미디를 하기 위해 사랑 이야기를 가장했다 싶을 정도이다. 설득력 있는 연애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감각적인 재담이 돋보인다. 그 좌충우돌 ‘개그’에 넋을 잃다 보면 이야기의 매무새나 연결 고리, 현실성 등 ‘드라마’의 잣대를 들이댈 기회를 놓치고 만다.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는 두 배우의 매력과 호연 덕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커다란 뿔테 안경을 낀 공무원 영주의 캐릭터는, 광고나 드라마에서 쿨하고 황당한 느낌을 뿜어내던 이나영이 아니면 현실감을 갖기 어려웠을 듯하다. 좀체 정우성의 동생 같은 이미지를 떨치지 못하던 장 혁도, 사랑스러운 바람둥이 역을 너끈히 소화해냈다.

<영어완전정복>은 그동안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를 연출한 중견 김성수 감독의 연출작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만든 작품과 색깔이 확연히 다를 뿐 아니라 중견의 작품치고는 좀 가볍지 않느냐는 인색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젊은 관객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

스크린에 갑자기 만화에나 등장하는 말 풍선이 둥실 뜨고, 격투기 게임의 화면 속에 등장 인물을 내던지고,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는 등 ‘내맘대로 연출’이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수능 마케팅의 일환으로 11월5일에 개봉 날짜를 잡았다는데, 공교롭게 이 날은 <매트릭스 3>이 전세계에서 동시에 선을 보이는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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