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도 결국은 인간이어라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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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미국 만화의 명가 마블 코믹스를 통해 활동한 만화가 스탠 리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았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만화답게 그의 고민도, 해결하는 과제도 고전적이다. 할리우드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전편에서는 돌연변이 거미에게 물려 초능력을 갖게 된 피터 파커의 삶이 소개되었다.

<스파이더맨 2>에서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여전히 뉴욕에 사이렌이 울리면 출동하는 안전의 파수꾼인 동시에 고달픈 고학생이다. 월세가 밀려 자기 집을 도둑고양이처럼 드나들어야 하는 신세에다, 밤마다 ‘출동’하느라 항상 피곤에 절어 있다. 그를 총명하다며 귀여워했던 교수까지 싫은 소리를 할 지경이다.

영웅 스파이더맨을 둘러싼 상황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외로움’으로 요약될 수 있다. 가난한 고학생인 그는 자신을 키워준 가난한 숙모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 친구들도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오랫동안 그를 지켜보아 온 여자 친구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은 무심한 그를 견디지 못한다. 보통 사람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어 마음을 닫을 수밖에 없는 그의 근심을 알아챌 리 없다. 가장 친한 친구는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인 줄 모르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스파이더맨을 저주한다.

스파이더맨의 ‘무용’ 보는 재미 짭짤

그의 외로움은 급기야 사명을 잊고자 하는 방향으로 그를 몰아간다. 그러자 몸이 반응한다. 그는 곧잘 공중에서 추락하고, 위기 상황에서 거미줄이 쏘아지지 않아 힘없이 주저앉는다.

그에게 사명을 일깨우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졌으나 한순간 괴물이 되고 만 천재 물리학자 닥터 오크(앨프리드 몰리나)의 만행이다. 닥터 오크는, 바로 스파이더맨이 연구 대상으로 삼아 리포트를 쓰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천재 과학자. 스파이더맨은 어느 날 닥터 오크를 찾아간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에게 진지하게 과학자의 사명을 설파하던 학자는, 자기가 창조한 기계에 의해 조종되는 의외의 상황을 맞게 된다. 인체와 한 몸이 된 기계 손발은 가공할 파괴력으로 스파이더맨의 목을 겨눈다.

<스파이더맨 2>는 멜로를 발전시키고, 인간적인 갈등을 부각하면서 구조에 신경 쓴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제작진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진정한 매력이, 이야기가 아닌 그의 놀라운 능력에 있다는 점 또한 잊지 않고 있다. 만화 <스파이더맨>을 보고 자란 세대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그의 인간적인 사연이 아니라 손에서 거미줄이 쑥쑥 쏘아지고 어떤 곳이든 거미처럼 올라다닐 수 있는 그의 초능력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었다는 것을.

2000년대에 돌아온 스파이더맨의 무대는, 아찔한 뉴욕의 빌딩 숲이다. 영화 제작진은 쾌감을 극대화하는 스파이더맨의 속도와 그것을 잡아내는 각도를 놓고 퍽 고심한 듯 보인다. 그의 몸짓은 그대로 잘 짜인 무용이다. 그 무용이 시원한 눈맛을 선사하니 보는 쾌감 치고는 꽤 고차원의 재미인 셈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고뇌를 하건 안 하건 그는 영웅이다. 특히 남성 영웅의 진부함을 그도 비켜가지 못한다.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그의 곁에 남기로 한 여자 친구의 캐릭터는 해묵은 느낌을 더욱 강조한다. 영화의 결말은 <스파이더맨 3>을 예감케 한다. 원작에서는 아버지의 능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스파이더걸’의 활약이 이어진다고 한다. 여성 영웅의 활약상은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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