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모의 뿌리를 뽑아라
  • 강철주 편집위원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4.07.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너선 스펜스 지음 <반역의 책>
 
중국 청나라의 5대 황제 옹정제는 치적에 명성이 못 미친다는 점에서 불우한 군주였다고 할 수 있다. 청나라의 기틀을 닦아 덕망 있는 유교 군주로 추앙받은 아버지 강희제나, 화려한 해외 정벌로 아시아에 ‘청조의 평화’를 구축했던 아들 건륭제에 비하면 그의 13년 치세는 ‘짧은 간주곡’ 정도로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 일반 대중에게 옹정제는 형제들과의 치열한 왕위 계승 전쟁에서 살아 남은 음모가의 이미지로 기억될 뿐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에 의하면 옹정제만큼 열성적이면서도 냉정하게 국사를 챙긴 군주는 달리 없다. 강력한 전제 권력으로 중국사의 해묵은 숙제(관료주의의 폐해, 세금 징수 체계 등)를 해결했고, 마키아벨리즘의 정수를 보는 듯한 ‘신묘막측’한 술수로 정국을 안정시켰다. 옹정제 전기를 쓴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그를 백성들에 대한 선의로 가득찬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독재자’라고 일컬었다.

<반역의 책>(조너선 스펜스 지음, 이준갑 옮김, 이산 펴냄)은 옹정제 치세에 벌어진 한 역모 사건의 전말을 다룬 책이다. <천안문> <강희제> 등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사 전문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소수 민족(만주족) 출신 군주로서 옹정제가 겪어야 했던 정치적 고뇌와, 결국은 실패로 끝난 사상 통제의 열망이 빚어낸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생하게 서술했다.
사건은 편지 한 장으로 시작되었다. 시골의 하급 지식인 쩡징이 제자 장시를 통해 웨중치에게 보낸 편지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쩡징은 이 편지에서 중국 남송 시대의 민족적 영웅이었던 웨페이(岳飛) 장군의 후손인 웨중치에게 모반을 부추기며 옹정제에 대해서는 제위 찬탈자, 형제들을 죽인 살인마, 황음을 일삼는 색광, 술고래라며 노골적인 비난을 퍼붓고 이적(夷狄)은 결코 중화를 다스릴 수 없다는 화이론을 펼쳤다. 그러나 웨중치는 편지를 가져온 장시를 투옥해 심문하고, 편지 내용을 옹정제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이제부터 일이 꼬인다. 보통의 역모 사건 같으면 주모자를 색출해 처형하면 그뿐일 텐데 옹정제는 달랐다. 역모에 직접 가담하지도 않은 관련자들은 가차없이 처벌하면서도 정작 주모자인 쩡징에게는 관용을 베풀어 사면했다. 옹정제는 역모 사건을 사상 통제의 기회로 삼아, 만주족의 지배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한족의 ‘잘못된 화이론’을 바로잡으려고 했다. 쩡징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대다수 한족을 설득과 훈육으로 교화해 반역의 뿌리를 뽑으려고 한 것이다.

 
결국 쩡징은 자기의 타도 대상이었던 황제에게 ‘진심으로’ 감복하여 충성을 맹세했다. 황제는 쩡징을 역모자에서 충성스런 백성으로 변화시킨 과정을 책으로 엮어냈는데, 그것이 바로 <대의각미록>이다. 옹정제와 쩡징이 서면으로 주고받은 질의 응답을 한데 모은 이 책을 통해 옹정제는 ‘역적의 으르릉거리고 짖어대는 소리’를 ‘세상을 일깨우고 백성을 각성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그는 청조의 관료들과 행정 조직을 총동원해 이 책을 전국에 배포하고 자신을 괴롭혀온 온갖 유언비어와 반청 사상을 불식하려고 했다.

하지만 옹정제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대의각미록> 속의 해명은 잊고 소문만을 기억했다. 옹정제에 대한 험담과 반청 사상은 쩡징을 모방한 범죄까지 불러왔다.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옹정제조차도 한족의 생각까지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의 아들 건륭제는 옹정제 사후에 <대의각미록>을 금서로 지정하고 모조리 회수해 파기했다.

<반역의 책>은 이 과정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군상과, 18세기 초반 중국 사회의 풍속화를 되살려 놓았다. 자신의 뜻대로 신하들을 능수능란하게 부리는 옹정제, 황제를 탄핵하기 위해 무모한 반역을 꾸민 고지식하고 나약한 지식인 쩡징, 옹정제의 눈치를 살피며 보신에 급급하지만 끝내 몰락하는 웨중치, 쩡징을 극형에 처하라며 충성심을 과시하지만 본질적으로 기회주의적인 관료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한바탕 소동은 소설에 버금 갈 만큼 흥미진진하다. 엄청난 양의 각주를 달고 있으면서도 역사와 문학을 절묘하게 넘나드는 저자의 솜씨는 이번에도 변함이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