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 이숙이 기자 ()
  • 승인 2003.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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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재평가 바람 불자 ‘장세동의 길’ 택하다
떠넘기기 작전을 펼 것이냐, 제2의 장세동이 될 것이냐. 박지원 전 비서실장(사진)이 특검 소환을 앞두고 어떤 입장을 택할지 매우 고심한 것으로 알려진다. ‘비서실장’이라는 위치로 볼 때, 실무 판단은 아랫사람들에게, 정책적 판단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미룰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압박할 ‘히든 카드’도 가지고 있었다는 후문까지 들려온다.

하지만 박씨는 결국 제2의 장세동을 택했다. 떨어지는 꽃잎이 어찌 바람을 탓하겠느냐며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고, 이기호 경제수석과 이근영 금감위원장을 감싸는 발언도 했다. 박씨가 총대를 메기로 한 데에는 무엇보다 6·15 3주년을 계기로 더욱 거세진 DJ 재평가 바람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검을 시작할 때와 달리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여론이 그리 나쁘게 돌아가지 않는 데다, 사법 처리를 당한다 해도 강도가 썩 세지는 않으리라는 계산이 선 것이다. 민주당 신주류가 특검 연장을 일제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나 노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것도 여론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박씨의 ‘장세동 따라 하기’는 1백50억원 비자금설이 돌출하면서 색이 바랠 조짐이다. 동교동이나 노무현 정권이나 모두 박씨가 구속되는 것과 함께 특검 정국이 마무리되기를 바랐으나, ‘박지원 전 실장에게 현대 비자금 1백50억원이 건너갔다’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폭탄 발언이 터져 나오면서, 박씨 수사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1백50억원 수수설 자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DJ 정권 고위 인사들도 ‘이익치씨가 돈을 건넸다는 시점에는 이미 이씨에 대한 여권 내부의 평가가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박 전 실장이 그런 사람을 통해 돈을 받았을 리가 없다’며 박씨를 두둔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제2의 특검법을 제출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1백50억원이 결국 정치권으로 흘러든 것 아니냐며 민주당 신·구 주류를 싸잡아 공격할 태세다.
‘비자금 수사’는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DJ 재평가 바람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물론 내년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씨가 끝까지 ‘장세동’을 고수할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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