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 마른 뒤에야
  • 서명숙 (sms@sisapress.com)
  • 승인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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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이맘때. 청와대에 갓 입성한 젊은 비서관이 대학 동아리 모임에 얼굴을 내밀었다. 처음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좌중에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시종일관 화제를 독점하면서 다른 이들의 말을 번번이 잘라먹는 그. 겸손하고 조용했던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정치 권력이 타고난 심성마저 바꿔놓는구나 싶어, 입맛이 무척이나 썼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 무리의 새로운 젊은이들이 권부에 진입했다. 예전에 그랬듯 노(老) 대통령의 이미지를 보완하는 장식품이나 권력 사다리 맨 밑에 배치된 실무자로서가 아니다. 그들은 실세 중의 실세, 권력의 핵심으로 꼽힌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정했듯, 그들은 대통령과 비전을 함께 일구어온 정치적 동업자들이다. 노무현이라는, 미래가 담보되지 않은 기업에 10년 세월을 쏟은 벤처 투자자들이기도 하다. 노대통령과 누구보다도 코드가 잘 맞는 이들이다. 힘이 쏠리고 주변에 사람이 꼬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런 그들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이런저런 뒷공론이 끊이지 않는다. 개중에는 근거 없는 마타도어나 부풀려진 이야기도 있다. 여권 내의 신구 갈등도 한몫 거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집권 이후 대학 동창들이 사준 차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았다든지, 과거 정권에서 물의를 일으킨 인물과 어울려 다닌다든지 하는, 근거 있는 소문도 있다. 최근 한 동교동계 의원은 ‘이슬만 마르면 나팔꽃은 끝’이라고 일갈했다. 권력 무상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인 동시에 젊은 실세들을 향한 쓴소리인 셈이다. 실세들은 왜 이슬이 마른 뒤에야 권력 유한과 무상을 깨닫는 것일까. 권력의 맛을 보지 못한 민초들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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