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대란’ 활화산 부글부글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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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카드, 2조원 수혈로 부도 겨우 면해…“당국의 감독 실패가 위기 불러”
LG카드는‘23일 밤의 대타협’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까. 11월23일 오후 10시 이틀간 버티기로 일관하던 LG그룹측과 채권단과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LG카드는 일단 부도 위기를 넘겼다. 2조원이 긴급 수혈되어 유동성 위기에서는 벗어난 것이다.

11월17일부터 본격화한 LG카드 사태는 은행권이 협조융자를 하고 투자신탁·보험 등 제2금융권이 채권 만기 연장에 속속 가세함으로써 일단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LG카드가 쓰러질 경우 자기네도 안전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든 정부가 팔을 비튼 것이든, 구본무 회장이 연대 보증(개인 지급 보증)을 끝내 거부했는데도 채권단이 지원 결정을 내린 것이다. 채권 시장이 얼어붙고 주가가 떨어지고 환율이 치솟는 등 여진은 계속되겠지만, 지난 3∼4월처럼 카드채 대란이 다시 일어날 공산은 작아진 것이다.

하지만, LG카드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우선 LG카드는 공신력이 생명인 금융기관으로서 신뢰가 땅에 떨어졌고 영업력은 복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24일 오후 4시부터 일부 현금 서비스를 재개했지만, 현금 서비스 중단과 부도 위기는 앞으로 우량 고객 이탈을 불러들일 것이고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이 높아져 경영을 압박할 것이다.
2조원 역시 당장 연명하는 데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LG카드는 올 들어 9월 말까지 누적 순손실이 1조원을 넘어섰다. 카드 회사는 고객으로부터 저축(수신)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카드채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런데 신규 발행이 전면 중단된 것은 물론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만큼을 차환 발행하는 데에도 안간힘을 써야 할 지경에 내몰려 있다. 자금을 순조롭게 조달할 수 없으니 자산이 쪼그라들고 영업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의 덫에 걸린 것이다. LG카드는 조기 정상화를 위해 5백여명을 명예퇴직시키고, 영업망을 대폭 축소하는 등 구조 조정에 착수했다.

9월 말 현재 LG카드의 총채무는 21조4천억원으로, 총자산(26조5백40억원)의 82.1%에 달한다. 2조원을 긴급 수혈받았으면서도 1조∼2조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또 있다. 구본무 회장이 개인 보증을 거절하자 채권단은 대신 LG카드의 매출 채권(현금 서비스·카드론 등)을 볼모로 잡았다. 고객이 대출금을 상환해도 전액을 은행에 담보조로 예치해야 하는 것이다(월 1천억원 수준). 당장 회사를 굴리는 최소 운전 자금을 확보하는 데도 허덕거려야 할 판이다.
LG카드의 경영 정상화가 다른 카드사보다 어려운 이유는 더 있다. 올 3월 LG그룹은 지주 회사로 전환했다. LG카드와 같은 금융 회사는 지주 회사에 편입될 수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LG카드의 대주주들인 구본무 회장 등 특수 관계인이나 LG투자증권이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채권단이 구본무 회장이 여차하면 지주 회사 LG의 경영권을 송두리째 잃게 되는 보유 지분을 내놓았는데도 연대 보증에 그렇게 목을 매었고 LG투자증권에 대해 연말까지 3천억원 증자와 내년 3월 말까지 7천억원의 자본 확충을 할 때 인수자가 없을 경우 이를 전액 떠안으라고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엇비슷하게 경영 사정이 안 좋지만, 삼성카드에게는 대주주인 삼성전자(지분율 56.1%)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국민카드와 외환카드 같은 은행계 카드사는 최악의 경우 모은행에 흡수 합병되는 방법이 있다. 이미 국민카드는 국민은행과 합병해 KB카드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외환카드는 내년 3월께 합병될 예정이다. 카드사 경영 사정이 나쁘지만, 증권사 신용카드 담당 애널리스트들이 대체로 LG카드의 유동성 문제가 다른 카드사로 확산되어 금융 시장이 요동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LG카드는 결국 해외 매각이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메릴린치 증권은 연체율이 계속 높아져 대환 대출과 1개월 이상 연체 자산 등 총 부실 자산(9월 말 기준 9조3천2백80억원)의 손실률이 35%를 넘을 경우 충당금(2조8백80억원)과 자본금(1조1천3백10억원)이 전액 잠식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증권 이승주 애널리스트는 내년 상반기 외자 유치와 함께 해외 매각이 추진될 것으로 내다본다. LG카드가 매분기 1조5천억원에 달하는 순운전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석달도 못가 1조~2조 원을 또다시 지원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재연되고 있는 카드사 위기는 한마디로 당국의 초동 감독 실패가 초래한 것”이라며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재정경제부 관료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는 지난 3월17일 카드사 종합 대책을 내놓았는데 금융 불안이 진정되지 않자 4월3일 또다시 대책을 내놓았다. 은행 팔을 비틀어 5조원의 브리지론을 조성해 카드채를 사들이게 했고 카드사 대주주에게는 4조6천억원을 증자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정부는 감독 부실에 대한 어떠한 책임 추궁도 하지 않았고 카드사에 경영진을 문책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부실 카드사 파산이 초래할 파장을 극도로 두려워해 드러난 문제를 틀어막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그 결과 카드사 임직원과 감독 당국, 그리고 카드 이용자에까지 극도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왔다. 감독 당국으로서 권리이자 의무인 ‘적기 시정 조처’를 하지 않음으로써 적당히 버텨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안일함을 갖게 만든 것이다. 더구나 카드사 관련 정보를 제때 시장에 내놓지 않아 카드사 모두를 부실 기업으로 여기게 만드는 역기능도 가져왔다. 극도로 부실한 카드사 한두 곳을 도려내면 시장 참여자들이 카드사에 대해 갖는 막연한 불안감을 제거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감독 당국이 가장 잘못한 것은 투자자(혹은 저축자·이용자)를 보호하는 데 애쓰지 않고 금융 회사를 살리는 데 급급했다는 사실이다.
신용카드 업계 1위인 LG카드가 어쩌다가 이 지경으로까지 내몰린 것일까. 우선 LG측 주장대로 정부의 실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1999년부터 과도한 신용카드 장려 정책을 펴면서 경기를 띄웠다. 그러나 같은 정책 아래에서 다른 카드사보다 사정이 훨씬 심각하다는 점에서 LG카드의 패착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LG는 1988년 신용카드 업계에 출사표를 냈지만 본격적으로 상승세를 탄 것은 2000년부터였다. LG카드 이용액은 1999년 17조7천억원에 그쳤으나 2000년에 51조6천억원, 2001년 1백12조원으로 매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외형 위주의 과도한 팽창 전략은 경기가 좋을 때는 문제를 드러내지 않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자신을 찌르는 비수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해외 매각 추진될 것”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해준 대가는 혹독했다. 2002년 1백60조원에 달했던 이용금액은 지난 9월 말 79조원으로 격감했다. 실질 연체율(현금 서비스나 카드론의 장기 연체금을 일반 대출로 전환해 주는 대환 대출을 포함한 것)이 지난해 말 16.1%에서 올 9월 말 33%로 폭증한 것이다. 3백50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의 63%는 신용카드사가 양산했다. 카드사가 부실해진 것은 인과응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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