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민주당 의원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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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카드로 재기 노리지만…
이인제 의원이 장고 끝에 꺼내든 승부수는 중도개혁 신당 창당이다. 이른바 중부권 신당이니 IJP(이인제-김종필) 연대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던 제3 교섭단체 구성이 그것이다. 이의원은 10월 말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 박상천·정균환·이 협 의원 등 민주당 범동교동계 인사들과 수시로 접촉했다. 10월 말부터는 민주당 후단협 소속 의원들을 만나 탈당을 권유하기도 했다.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의 후보단일화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는 때에 이의원이 거사를 서두르는 이유가 뭘까. 두 후보가 직접 나서는 판에 그의 훈수가 끼여들 틈이 없다는 점도 현실적인 이유이기는 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이의원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선두로 한 ‘신당파’는 후보 단일화에 별 관심이 없다. 대선 자체에 큰 미련이 없다는 쪽이 맞는 말이다.


제1 야당 당권 장악이 1차 목표


단일화도 어렵고, 설사 단일화가 되어도 이회창 후보를 이기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의원의 판단이다. 따라서 대선 전에 신당을 출범시키더라도 본격적인 승부는 2004년 총선에서 보겠다는 것이 이의원의 계산이다.


이의원이 장기 포석을 놓는 의도는 명확하다. 대선 이후 ‘집권 한나라당’에 맞설 제1 야당의 당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이인제 의원과 김종필 총재, 민주당 범동교동계, 이한동 전 총리 등이 함께 신당을 창당하고, 대선 뒤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21과 민주당 호남 세력을 끌어들인다면, 노무현 후보와 개혁파 중심의 민주당은 소수 당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대선 이후 정국은 ‘보·보·혁’(보수 양당과 혁신 소수당) 형태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의원 측근의 말이다. 이의원이 11월7일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탈당 가능성을 비치면서 “새로운 정치 질서가 만들어져 나갈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새로운 정치 질서’라는 용어는 5개월 전부터 이의원이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당시 이의원의 목표는 박근혜·정몽준 의원과 함께 정치 개혁 선언을 하고, 자민련 등을 끌어들여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지율이 급상승한 정몽준 의원이 독자 출마 쪽으로 돌아서면서 그의 구상은 벽에 부딪혔다. 이한동·이인제·김중권·조부영 4자 회동이 민심의 역공을 받으면서 박근혜 의원마저 돌아섰다. 상심한 이의원은 급기야 몽골과 러시아를 떠도는 외유길에 올라야 했다.


침몰하는 듯하던 이의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10월 말. 이번에도 ‘4자 연대’라는 카드를 들고 나타났다. 그런데 5개월 전의 4자 연대가 ‘이인제·김종필·정몽준·박근혜 의원’ 사이의 연대를 지칭하는 것이었다면, 지금 거론되는 4자 연대 대상은 ‘이인제·김종필·이한동·민주당 범동교동계’이다. 대선 전에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21과 합칠 것인지, 정책 연합으로 거리를 둘 것인지는 아직 정하지 않은 상태다.


이의원은 재기에 성공할까. 문제는 역시 경선 불복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느냐이다. 이의원은 올 봄 민주당 경선을 포기하면서 “민주당에 남아 백의종군 자세로 헌신하겠다”라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대선 이후를 내다본 ‘거시적 담론’이 얼마나 설득력을 발휘할지도 미지수다. 벌써 그의 오른팔 격이던 원유철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자민련이 민주당 탈당파와의 공동 교섭단체 구성을 유보하는 등 그의 ‘도상 프로젝트’는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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