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에게서 ‘테러 논리’ 배우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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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격’ 촉구한 알 카에다 2인자 알 자와히리
“우리는 한국인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알 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미국 동맹국들에 대한 공격을 촉구하는 육성 녹음 내용이다. 알 자와히리는 알 카에다 내부에서 오사마 빈라덴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9월9일에도 자신의 육성 테이프를 통해 미국에 경고 방송을 보낸 바 있다.

10월1일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된 성명서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미국의 동맹국 이름을 열거했다. 여기에 ‘한국인’과 ‘한국’이라는 단어가 각각 한 번씩 등장한다. 한 번은 미국인·영국인·프랑스인·유태인·헝가리인·폴란드인 다음 마지막 일곱 번째로, 그 다음 문장에서는 미국·영국·호주·프랑스·노르웨이·폴란드 다음 일곱 번째(일본 앞)로 등장했다.

알 자와히리가 위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알 카에다 공격 대상국 명단에서 늘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번 성명은 한국인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5월 호주가 새로 알 카에다 공격 대상에 포함된 후 9월9일 인도네시아 주재 호주대사관 테러 사건이 터졌다.

정부는 10월4일 16개 정부 부처 합동테러대책실무회의를 여는가 하면 4천여 명에 가까운 테러 용의자들을 입국 불허 명단에 올렸다. 미국대사관 앞에는 경찰 특공대가 장갑차를 몰고 출동했다. 한국의 경계 태세 강화는 외신을 타고 거꾸로 아랍권에 알려졌다. 미국의 야후뉴스나 알 자지라 사이트는 알 자와히리 성명을 보도하는 외신과 함께 ‘서울에 경계령이 내려졌다’는 뉴스를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은 아랍에 대한 도전

알 자와히리는 10월1일 공개된 성명에서 ‘우리가 분열되고 점령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 ‘공격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선제공격론을 내세웠는데, 사실 이 논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즐겨 쓰던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예방 전쟁’이라는 용어를 쓰며 이라크 전쟁을 옹호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들을 침공하면서 ‘적의 침공이 예상될 때 선제 공격을 펴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AFP는 ‘미국이 내세웠던 예방 공격(pre-emptive strike) 개념을 알 자와히리가 가로챘다’고 표현했다.

한국이 알 카에다의 공격 대상 명단에 오른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라크 파병 때문이다. 하지만 알 자와히리 성명 원문을 보면 이라크 전쟁은 체첸 분쟁·아프가니스탄 전쟁·팔레스타인 침공과 같은 일련의 사건 중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

정확하게는 팔레스타인 사태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성명서의 첫 문장이 ‘팔레스타인을 지키는 일은 무슬림의 의무’라고 시작하며, 이후 이스라엘이 야신과 란티시를 로켓 공격으로 살해한 일을 언급한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 단순한 이라크 문제를 넘어 아랍 전체를 대상으로 한 도전으로 이해된 셈이다.

알 카에다 2인자가 한국을 두 번씩 공격 대상 명단에 올린 것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두 번이나 동맹국 명단에서 누락한 일과 대비된다. 지난 9월2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부시는 이라크에 참전하고 있는 동맹국 8개국을 호명하며 한국 이름은 뺐다. 미국 정부는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지난 9월23일 부시 대통령은 알라위 이라크 과도정부 총리의 방문을 환영하며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전사자 발생 국가’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한국을 뺀 14개 이라크 참전국을 거론했다.

한국의 안전을 위해서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알 자와히리 리스트’뿐만 아니라 ‘부시 리스트’도 알려주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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