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문제=돈 문제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4.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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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전날 야근하거나 과음한 직장인들에게 노약자 보호석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입니다. 기자는 3호선 종점에서 타는데, 피곤한 날 아침, 비어 있는 노약자 보호석 앞에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견디기 힘든 날은 안면에 철판을 깔고 앉아 내릴 때까지 잡니다. 자는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내 궁금했습니다. 일자리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많은 노인분들이 출근 시간에 ‘지옥철’을 탈까. 아무리 집안에서 눈치를 준다 해도 그 시각에 집을 나설 까닭이 없어 보였습니다. 얼마 전에야 그 이유 중 하나를 알았습니다. 출근 시간에 맞춰 나가야 탑골공원 같은 데서 점심 식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공중파 방송이 추석 특집 프로그램으로 내보낸 <돈>을 보고 또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인들이 교회를 돌아다니며 3백원에서 5백원씩 받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걸을 수 있는 노인은 하루에 3천5백원까지 챙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14%에 달해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5년이면 65세 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한 사회가 고령화한 적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고 합니다.

출근 시간에 ‘지옥철’을 타는 노인들이나, 교회에서 ‘용돈’을 받는 노인들에게서 보듯이, 노인 문제는 전적으로 ‘돈 문제’입니다. 노인 문제는 더 이상 가족이 떠안아야 할 짐이 아닙니다. 국가가 국가의 이름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입만 열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신봉한다는 국가에서, 이 땅의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이룩한 노인 세대에게 해준 것은 거의 없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위한 대책도 미미하기만 합니다.

최근 잇단 보수·우익 단체의 궐기 행렬 밑바닥에는 저 ‘노인들의 분노’가 깔려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을 ‘자기 표와 남의 표’ 단 둘로 구분하는 정치인들은 정신 차려야 합니다. 앞으로 정치권을 뒤흔드는 가장 큰 이익 단체가 바로 ‘노인당’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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