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스트레스에 지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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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수사반장
경기도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수사팀 윤 아무개 강력반장(48)이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자살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윤반장 옆에는 빈 농약병과 자필로 쓴 유서 6장이 발견되었다. 유서에서 윤반장은 ‘하고 싶은 말도 하고 화날 때는 풀었어야 했다. 가족과 휴가 한번 제대로 갔다 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윤반장은 8개월째 미궁에 빠져 있는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수사로 격무와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여중생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소흘파출소 박춘배 경사는 “살인적 업무에 수사팀원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비번도 휴일도 없이 눈만 뜨면 살인사건에 매달렸다. 꼼꼼하고 성실한 성격 탓에 윤반장은 더욱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은 지난 2월8일 경기 포천시 소흘읍 한 배수로 안에서 발가벗겨진 엄 아무개양(15)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엄양이 실종된 지 96일 만이었다. 엄양의 손톱과 발톱에는 진분홍색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엄양이 직접 칠했거나 미용실 등지에서 서비스를 받았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조잡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지난해 8월 포천시 소흘읍 고모3리 고모리 저수지 앞에서 20대 여자 시신을 발견한 바 있다. 연쇄 사건의 개연성도 있었다.

이 사건은 지난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영화 <살인의 추억>과 흡사한 점이 많았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수사관들의 부담은 부쩍 커졌다. 범죄 심리 분석 등 과학 수사가 필수였지만 경찰에게는 생소한 분야인 데다 전문가조차 없었다. 경찰은 수사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고 여느 때처럼 투망식 마구잡이 수사에 매달렸다. 담당 경찰관들은 고된 업무를 강요받았다.

사건이 알려진 지 8개월여, 경찰은 아까운 경찰관 하나를 잃었다. 사망한 20대 여성의 신원조차 밝혀내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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