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져가는 ‘SK목장의 결투’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4.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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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지키기’ 백기사 참여 확산…한국 자본 대 외국 자본 싸움으로 번져
SK경영권을 둘러싼 싸움이 확산될 조짐이다. 애당초 이 싸움의 주체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SK의 대주주와 외국계 펀드인 소버린 자산운용이었다. 하지만 최근 SK의 경영권을 지켜주겠다는 ‘백기사’들이 나타나면서 싸움은 ‘한국 자본’대 ‘외국 자본’의 싸움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삼성전자·팬텍&큐리텔·한국포리올 등 국내 기업들은 최근 SK 주식을 잇달아 사들였다. 삼성전자는 2천5백억원 사모펀드를 통해 SK 주식 1.39%를 사들였고, 팬텍&큐리텔은 1.12%, 한국포리올은 0.36%를 취득했다. 이들 기업은 여유자금 운용의 일환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SK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지원 행위로 해석한다.

SK 연고 도시인 울산에서는 시민단체와 울산상공인연합회를 중심으로 ‘SK 주식 사주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울산상공인연합회는 직원과 법인 명의로 SK 주식 1천5백 주를 매입하고, 울산 지역 기업체의 본사와 전국 광역시 등에도 이 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울산 남구와 울산시 울주군, 울산의 여성단체 등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도 SK 지키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울주군은 SK 주식 현장 판매 행사를 열어 주식 1억9천여만원어치를 매입했고, 울산 남구청도 현장 판매 행사를 통해 주식 2억원어치 가량을 매입했다.

국내 최대 에너지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데다 SK(주)가 울산 시민들을 위한 공원을 짓는 등 지역 친화 사업을 벌여온 데 대한 답례 차원이기도 하다. SK는 1996년 울산 남구 1백10만평 부지에 천억원을 투자해 울산대공원을 조성해 주기로 하고, 2002년에 1차 시설을 완료해 개장했다.

백기사들의 활약 덕에 SK는 전체 주식 가운데 외국인 지분율이 연초 61.5%에서 최근 58% 가량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소버린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SK 관계자는 “백기사들이 늘어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지만,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호 세력들이 최근 매집한 주식을 모두 합해도 5%를 채 넘지 않는다. 이 정도로 내년 주총에서 이길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외국인 지분율이 50%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계 투자자들, 곱지 않은 시선

이런 가운데, 외국계 투자자들은 최근 국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SK 경영권 방어 운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삼성전자가 SK 지분을 매입한 것은 한국 재벌들이 외국인의 적대적 합병·매수에 맞서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친족 기업들이 자신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단적 조처를 취한다는 우려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SK 주식을 사들인 이후에 삼성전자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외국인 주주들이 사업 연관성이나 상승 효과가 나기 어려운 부문에 투자했다며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SK와 소버린의 싸움으로 인해 외국 자본이 도매금으로 비난받는 것을 꺼리는 눈치이다. 이헌재 부총리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주식 시장에 외국 자본이 범람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소수이며, 한국 정부의 주요 정책 및 태도는 외국인 투자에 우호적이다”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경제 전문가들도 소버린 펀드는 문제가 많지만, 이 일이 ‘외국 자본 대 한국 자본’의 싸움으로 확산되는 것은 국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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