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 형사’와 ‘정치 형사’
  • 안병찬 (<시사저널> 고문·경원대 초빙교수) ()
  • 승인 2003.07.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기도경찰청 하승균 강력계장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남몰래 보며 두 시간 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는 17년 전 화성연쇄살인 사건 때 형사반장이었다. 그가 운 것은 형사의 체질 때문이다. 형사는 사건에 미치고, 범인을 못 잡으면 꿈속에서도 범인을 쫓는다.

나는 집념 있는 형사를 취재한 일이 있다. 젊은 대학생 박종철군이 ‘고문 경찰’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정초 휴일을 틈내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산골 마을로 출장을 갔다. 차령산맥 옷자락에 들어 있는 산간 부락에 소담한 눈송이가 펑펑 쏟아지던 날이다. 명품인 대화고추 1년 농사분을 몽땅 사기당한 한 농부에게 사건 담당 형사에 관한 진술을 듣기 위함이었다. 기사 주인공은 자기 관할 사건도 아니었으나 이 가난한 농부를 깊이 동정하여 84일 동안 진력해서 수사한 끝에 범인을 잡아 고추를 되찾아준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였다. 나는 ‘농촌 출신’인 형사의 수사 동기가 순수한 것임을 주의 깊게 확인했다. 기사가 나간 날 서초경찰서에는 수사 형사에게 감사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아마 박종철군을 죽인 정치 경찰이 없었다면 그 수사 형사의 공은 더 빛이 났을 것이다.

수사 형사에게는 타락과 독직의 덫도 있다. 납치 범행에 가담한 형사 이야기는 범죄 조직과 유착해 악의 수렁에 빠지는 민완 형사의 말로를 보여준다(<시사저널> 7월3일자 ‘형사가 납치범 되기까지’). 지난 4월 두 번의 납치 사건에 가담한 한 마약반 소속 형사는 범인을 제압하는 기술이 뛰어난 ‘잘 나가던 형사’였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악의 수렁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유혹이 많은 강남 지역의 경찰서로 자리를 옮기고 난 뒤부터였다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증권 중개인 가운데 주가 조작과 같은 부도덕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일당이 많다는 사실을 이 형사가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형사는 수사를 하면서 ‘어차피 불법 행위로 번 돈인데 좀 가로채면 어때’라는 도덕적 균열에 빠져들었을 법하다는 관측이 뒤따랐다. 증권 중개인을 납치하는 데 가담한 이 민완 형사는 대도시 우범지대 타락한 형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타락 형사’를 압도하는 ‘정치 형사’의 불법 행위가 겹치니 경찰의 치욕은 끝이 없어 보인다. 이른바 ‘김영완씨 집 떼강도 사건’은 DJ 정권의 부패상을 축약해 놓은 듯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와대 파견 경위 한 사람이 어떻게 경찰청 수사국장 등 수뇌부를 움직여 사건 수사를 철저히 비밀에 부칠 수 있었겠는가. 이 ‘수상한’ 사건에 투입된 서대문경찰서 형사 강력반장은 정치 경찰의 도구가 된 것이다. 현재 박지원 전 실장이 현대로부터 받은 1백50억원과 김영완씨가 강탈당한 100억원의 연계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결국 이 비선 수사 의혹은 빼앗긴 돈의 정체와 비밀 수사의 배후 권력층을 밝혀내야 풀린다.

이런 오욕의 경찰상에 겹쳐서 대규모 파업이 줄을 대고 일어난다. 사회 분위기가 생각보다 훨씬 흉흉하다. 이즘에 ‘세계에서 가장 덜 부패한 국가’로 뽑힌 핀란드라는 나라의 두 가지 미덕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핀란드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종사자가 뇌물 수수와 관련해서 적발된 수는 지난 10년간(1990∼1999년) 모두 23건밖에 안된다. 그 가운데 심각한 수뢰 사건이라면 경찰이 연루된 한 건뿐이었다. 이 간결한 통계는 핀란드의 국가적 청렴성을 웅변하고 있다. 핀란드 투르크 대학 형사·사회법학과 아티 라이티넨 교수는 핀란드의 투명성이 핀란드 국민의 동질성과 단합이 확보됨으로써 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물론 핀란드도 이해가 다른 집단 사이의 정쟁이나 파업 사태를 경험했다. 파업으로 인한 폭동이 1949년과 1956년에 두 번 일어났는데, 1949년 사태에서 2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 가장 심각한 갈등이었다. 핀란드 정부가 전통적으로 탄탄한 노동시장 정책을 펴고 문화·과학·언론 정책을 중히 여긴 것이 파업 없는 사회를 만든 동력이라는 것이다. 현정부는 이런 핀란드 경험을 배우기 바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