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만 번뜩이는 ‘피범벅 공포’
  • 김봉석 (영화 평론가) ()
  • 승인 2003.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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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앤드루 스탠턴·리 언크리치, 주연 : 그레이엄 월터스·존 레스터
세상에 보아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데드 캠프>는 대체로 후자에 속한다. 참혹한 사지 절단, 이유 없는 분노와 학살이 전부인 <데드 캠프>는 대다수 관객을 불쾌하게 만든다. 면접을 보러 가던 의대 졸업생과 캠핑에 나선 대학생들이 산속에서 괴한들의 습격을 받는다는 내용이지만, 스토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무나 숲속에서 괴한들의 공격을 받기만 하면 된다. 눈앞에서 팔과 다리를 잘라내고,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등 고어(gore) 장면들을 연달아 전시하는 것이 <데드 캠프>의 유일한 목적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데드 캠프> 같은 영화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포 영화광들은 더 잔인한 장면들을 원한다. 그 잔인한 장면들을 직접 목격하고 싶어한다. 다리오 아르젠토나 루치오 풀치의 영화들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그들은 현실에서 금지된 것을 보고 싶어한다. 조금 의미를 붙이자면, 육체의 허망함을 간접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든, 그들의 목적은 스릴 넘치는 사지 절단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스릴 넘치는 사지 절단?

<데드 캠프>는 그런 관음 욕망을 훌륭하게 충족시킨다. 할리우드 최고의 ‘괴물 제작자’인 스탠 윈스턴이 제작에 참여한 <데드 캠프>의 원산지는 할리우드, 그것도 주류 할리우드다. 변방에 속했던 공포 영화가 <엑소시스트>와 <스크림>이 성공해 주류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공포 영화에서 잔인한 장면들은 적절하게 제한되었다. 잔인한 장면들은 우아하게 포장되거나, 뭔가 의미 부여를 하면서 직접적인 쾌감을 억제했다. 적어도 <데드 캠프>처럼 무지막지하게 고어 장면만을 나열하는 영화는 없었다.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10대 슬래셔 영화처럼 매끈하게 흘러가면서도 고어의 쾌감을 부각하는 <데드 캠프>가 신선한 것은 그런 이유다.

<데드 캠프>에서는 몇 가지 영화의 흔적을, 아니 혈연 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데드 캠프>와 가장 닮아 있는 영화는 토비 후퍼의 <텍사스 대학살>이다. <텍사스 대학살>은 시대의 광기가 개인의 이유 없는 적의와 살인으로 치환되는 공포를 유감 없이 그려낸 걸작이다. <데드 캠프>는 <텍사스 대학살>의 ‘살인마 가족’을 현대식으로 그려낸다. 이들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기형적인 괴물이고, 지나가던 사람들을 사냥해 먹어버린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데드 캠프>는 <텍사스 대학살>의 외관만을 그대로 빌려온 공포 영화에 불과하다. 존 덴버가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에서 노래한 마음의 고향 웨스트 버지니아가 사건의 무대이기는 하지만, 그런 함의는 별반 중요하지 않다. <데드 캠프>는 숨겨진 의미나 현실을 은유한 것을 읽어낼 틈을 주지 않는, 장르의 공식에 충실한 공포 영화다.

<데드 캠프>에는 시대나 사회를 은유한 것이없다. 그저 추격전과 살의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살해된 사람들의 피범벅이 된 자동차가 가득 널려 있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서늘함 같은 것들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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