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잠수함 영화 <유령> 제작자 차승재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1999.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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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재씨(39·우노필름 대표)는 감독 지망생이 가장 선호하는 제작자로 꼽힌다. 눈이 밝고, 합리적이라는 평판 때문이다. <비트>(연출 김성수)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처녀들의 저녁 식사>(임상수) <태양은 없다>(김성수). 최근 3년간 그가 빚은 작품이다.

흥행 성적만 놓고 보면 홈런은 없다. 대신 그는 비평과 흥행에서 고르게 성공을 거둔 제작자라는 평을 얻었다.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장르 영화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관습을 조금씩 비틀면서 한국 영화의 지평을 넓혀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령>(연출 민병천)은 그렇게 신뢰도를 쌓아 온 그가 던지는 승부수이다. <유령>은 원안이 그에게서 비롯되었고, 그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작품이다. 잠수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여서 특수 효과 기술은 물론이고 고도의 이야기 기술이 필요했다. 일본과 교전한다는 설정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블록버스터 여기까지 왔다’는 상찬과 ‘극우 민족주의를 미화할 우려가 있다’는 비난 모두 그의 몫이다.

한국적 블록버스터로 기록된 <퇴마록> <쉬리>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등은 어찌 보면 <유령>의 전사(前史)이다. 이 작품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다. 한국의 지정학적 현실에 대한 발언이라는 점만 놓고 보면, <유령>의 설정은 의욕 과잉 혐의가 많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이 작품의 민족주의가 앙상한 ‘자주 국방론’이었음에 비해 <유령>은 민족주의의 현실적이고 정서적인 뿌리를 건드린다.

약소국의 문제 의식 드러낸 <유령>

<유령>은, 러시아가 빌려간 돈을 잠수함으로 상환했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유령’은 실체를 드러낼 수 없는 핵잠수함의 이름인 동시에 그곳에 탑승한, 현실의 적(籍)을 지워 버린 승무원을 지칭하기도 한다). 한국 해군은 잠수함과 함께 비밀리에 핵 미사일을 들여왔으나, 이를 감지한 주변 강대국의 압력으로 핵잠수함을 자폭시켜야 할 상황에 몰렸다. 우발적인 핵전쟁 위험을 경고하는 할리우드 영화 <크림슨 타이드>가 핵 보유국다운 발상이었다면, 핵과 국가의 자주권을 연결한 <유령>은 열강에 둘러싸인 약소국다운 문제 의식이다.

영화의 갈등은 현실적인 파시스트 202(최민수)와 상식적인 이상주의자 403(정우성)의 대립으로 드러난다. 출항 후 자폭 작전을 감지한 부함장 202는 함장을 살해한 뒤, 유령에 탑재된 핵 미사일로 일본을 공격하겠다고 나선다. 그와 대비되는 작전 장교 403은 상관 살해죄로 총살형을 받았다가 ‘유령’에 탑승해 202의 광기를 막으려고 몸을 던진다.부함장 202는, 민족주의가 왜 그렇게 쉽사리 국수주의와 극우 파시즘과 손을 잡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제작진은 명령에 불복하고 선제 공격하려는 그를 나름으로 역사 의식이 투철한 인물로 그렸다. 반대로 403은 조국 혹은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저항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명분보다 명분의 폭력성에 예민하게 감응하는 캐릭터이다. 그는 극우 민족주의와 핵이 핵융합을 일으키는 데 경악한다. 둘의 갈등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대결로 변주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차승재씨는, <유령>의 전체적인 얼개를 보면 국수주의로 비난받을 소지가 없지 않다고 스스로 말한다. 민족주의의 현실적 정황을 돌아보자는 제안이 이미 민족주의에 대한 긍정을 깔고 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 202역을 맡은 최민수가 감정적인 파장을 증폭시키는 바람에 그에게 무게가 쏠린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사족처럼 덧붙은 202의 ‘자주국방론’은 이런 혐의를 더욱 굳힌다. 하지만 그가 <유령>을 캐릭터 간의 대결로 몰아간 것은 뜻밖의 울림을 남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특수 효과 기술이다. <유령>이 이루어낸 핵잠수함 내부 상황과 심해 촬영은 한국 영화 사상 가장 정교하다. 공을 들였으면서도, 기술을 뽐내려는 현란한 과시욕도 없다(박스기사 참조).

‘심해를 유영하는 잠수함에서의 반란.’ 5년 전만 해도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기획이다. 차씨는 시각화 작업에 관심이 많은 기술 스태프와 접촉하면서 ‘우리도 못할 것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심해라는 단일한 톤의 배경이라면 우리 기술력으로 가능하리라는 계산이었다.

차씨는 3년 전 시나리오를 발주했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이미 머리 속에 최상의 스태프를 구성했다. 제작에 들어가자 예상대로 그들은 미친 듯이 일에 매달렸다. 그는 “<유령>의 순수 제작비가 블록버스터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저예산(19억3천만원)임을 감안하면, <유령>의 성과는 오로지 그들의 열정 덕분이다”라고 말한다.

차승재라는 이름이 영화계의 명 브랜드로 자리잡은 데는, 신뢰도를 지키려는 그의 노력이 주효했다. 좋은 시나리오와 재능 있는 인물이 고이는 저수지, 혹은 그런 영화가 흐르는 창구라는 이미지를 착실히 쌓아 온 것이다. “영화란 어차피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사업이다. 내 원칙은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물건에는 흠이 없다는 평가를 얻자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했어도 접점을 잘못 찾아 실패했다면 다음에 바로잡을 수 있지만, 돈을 벌어보겠다고 발가벗고 뛰었다가 망하면 후일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90년대를 ‘기획 영화의 시대’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명암이 있다. 프로듀서 시대가 열리면서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영화가 일반 상품처럼 마케팅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꼬집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영화산업에는 창의적인 작가뿐 아니라 깨인 사업가도 필요하다. 차씨는 프로듀서가 영화의 제작 공정을 관리하는 사업가이되, 그가 만드는 물건이 ‘요상한 상품’을 만들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의 전략은 ‘삐딱선 타기’이다. 삐딱선이란, 다르게 생각하기의 다른 말이다.

<유령>도 마찬가지다. 잠수함의 선내 반란이라고 해서 요란한 총격전이나 육박전을 떠올렸다면 의외의 전개에 당혹스러울 법하다. 그는 말한다.“상상력이 유의미한 성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유령>은 한국의 정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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