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매질은 안된다
  • 고종석 (소설가·에세이스트) ()
  • 승인 1999.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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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권위를 세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권위는 매질로 서는 것이 아니다. 매질은 공포와 증오를 만들어낼 뿐이다. 아랫사람을 존중하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서울 송파구의 어느 여자 고등학교에서 학생에게 손찌검을 한 교사가 경찰서에 연행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 학교에서의 학생 체벌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분분하다.

텔레비전에도 여러 번 모습이 비친 그 교사의 참담한 심정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그 체벌 사건이 터지자마자 핸드폰을 통해 112에 신고했다는 학생의 맹랑함에 혀를 찬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말을 마음가짐의 지향으로 삼도록 교육받은 세대에게, 경찰을 불러 교사를 연행하게 하는 요즈음의 아이가 얼마나 낯설어 보일 것인가.

그러나 새 세대는 늘 기성 세대 눈에 못마땅한 법이다. ‘요즘 아이들이란 참’이라거나 ‘요새 젊은 것들 하는 꼴을 보면 참’ 하는 기성 세대의 탄식은 우리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줄곧 있어 왔던 세대 교체의 신호음일 뿐이다. 거기에는 자기 세대의 가치관과 이해 관계에 뒷 세대를 맞추려는 앞 세대의 좌절된 권력 의지가 배어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그 한 번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 뒤에도 체벌 교사를 학생들이 고발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신문은 전한다. 어느 면에서 그것은 씁쓸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버릇 없는 아이들’이 학생 체벌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송파구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해 우리가 비판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소곳이 체벌을 받아들이지 않은 학생들의 당돌함이 아니다. 우리가 비판할 수 있는 것은, 학생과 동료 교사 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체벌 교사를 연행한 경찰의 무분별일 따름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학생들을 그렇게 ‘철없게’ 만든 기성 세대의 철없음일 따름이다.

체벌과 관련해서 우리는 흔히 ‘사랑의 매’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이 사랑의 매라는 말만큼 위선에 가득찬 말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소설 <1984년>에서 다양한 역설적 신어(新語)들을 실험한 조지 오웰마저 혀를 내두를 악성 이데올로기 언어다.

영화 <여고괴담>이 묘사하는 교사들의 폭력이 요즘의 학교 현실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60~70년대에 학교를 다닌 내 기억에 비추어 보면, 그 영화가 묘사하는 교사들의 폭력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폭력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 폭력 문화의 창궐은 일제 시대 제국 군대의 군사 문화를 그대로 물려받아, 그것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킨 역대 군사 파쇼 정권에 커다란 책임이 있다.

물론 모든 교사가 폭력 교사는 아니다. 모든 교사가 촌지를 받거나 불법 과외 학원과 결탁해서 돈을 챙기지는 않듯이. 그러나 사람은 감정에 쉬이 휘둘리는 동물이다. 아이에게 매질을 하는 부모조차 아이들의 잘못을 적절히 헤아려 이성적으로 사랑의 매를 휘두르지는 못한다. 매질은 근본적으로 감정적인 것이다. 게다가 자기 아이들 가운데도 정이 더 가고 덜 가는 아이가 있듯,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가운데도 정이 더 가고 덜 가는 학생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교칙 위반한 학생, 교칙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

교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학교를 막 졸업한 예비 교사들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교사의 정년을 낮추겠다는 여당의 법안에 반대하는 교원 단체들이, 법률 서비스 공급을 확대하고 전문화하기 위해 사법 시험의 합격자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좌절시킨 법조인 단체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우리는 그것을 특별히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현실적으로 엄격한 이성적 판단력과 윤리적 균형 감각을 교사들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사회 일반의 규범을 학교라는 공간에 확대하는 것이다. 폭력이 나쁘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대개 동의한다. 그것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처벌을 받는다. 그런 일반적 규범이 학교에 적용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학교에는 교칙이 있고, 그 교칙을 위반한 학생은 교칙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이다.

교사의 권위를 세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권위가 매질로 세워지지는 않는다. 매질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권위가 아니라 공포와 증오일 뿐이다. 아랫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 사회처럼 권위주의에 깊이 침윤된 사회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그 아랫사람이 ‘일탈’의 혐의를 받고 있을 때는 더 그렇다. 그러나 그 쉽지 않은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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