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쉬 감독의 <데드맨>
  • 魯順同 기자 ()
  • 승인 1998.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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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 감독의 <데드맨>/미국의 빈곤한 시대 정신 그려
감독의 이름이 상표가 되는 영화는 선택하기 쉽다. 2년 전 <천국보다 낯선>(84년)으로 한국에 첫선을 보인 짐 자무쉬 감독은 최소한의 조형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다섯 번째 장편인 <데드맨>은 96년 권위 있는 외국의 영화 잡지 <카이에 드 시네마>와 <프리미어>가 그 해 ‘세계의 10대 영화’로 꼽은 작품. 펑크적 감성으로 미국의 시대 정신을 그려 온 자무쉬의 특질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취직 통지서를 받고 서부로 온 청년 윌리엄 블레이크(조니 뎁)는 취직은커녕 돌아갈 차비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다가 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한밤중에 여자의 옛 애인이 들이닥치자 얼떨결에 남자를 사살한 블레이크는 졸지에 현상금이 걸린 도망자 신세가 된다.

숲속에서 기절한 그를 발견한 인물은 인디언 노바디(게리 파머)이다. 노바디는 그를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환생한 것으로 여긴다. 블레이크는 산업 사회를 비판하며 자연과의 순수한 교감을 노래했던 18세기 영국의 시인. 노바디는 그의 <지옥에서의 잠언>을 읊조리며 부상한 블레이크를 정성껏 보살핀다. 블레이크는 처음에는 어리숙한 청년이었으나 만나는 추격자들을 보는 족족 처치하는 바람에 희대의 살인마가 된다. 노바디는 죽어 가는 그를 그들의 방식대로 카누에 실어 보냄으로써 편안한 영의 세계로 인도한다.

서부 영화의 껍데기를 빌린 <데드맨>은 서부 영화치고는 없는 것 투성이이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색채도 없으며, 총격은 시시하다. 짐 자무쉬는 현란함을 지워낸 그 자리에 시를 써내려 간다. 주제는 죽음이다. 촬영·음악·연기는 영상시에 걸맞는 압축미를 보여준다. 우선 촬영을 맡은 로비 뮐러는 ‘흑백 촬영의 귀재’라는 평판을 얻은 인물로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 <이 세상 끝까지>의 황량한 화면이 그의 솜씨다. 포크로커 닐 영의 음악은 영화의 간결한 시각 이미지에 울림을 더해 준다. 그 공간을 거니는 조니 뎁의 표정은 단조롭지만 풍부하다. <가위손> <돈주앙> <에드우드>에서 비주류의 우수를 그려냈던 조니 뎁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인마가 되어 죽음의 세계로 밀려나는 자의 당혹스러움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데드맨>은 인디언에 대한 서양인의 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서양인에게 인디언은 야만인이거나 현자이다. 자무쉬 감독은 현자인 노바디를 통해 미국 정신의 빈곤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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