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국형 공포물에 관객 몰린다
  • 魯順同 기자 ()
  • 승인 1998.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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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조용한 가족> 흥행 성공… 신인 감독들 대약진
“우리 학교에도‘미친 개’가 있다. <여고괴담>은 바로 우리 얘기다.”“교사의 이미지를 왜곡했다. 상영 금지를 요청하겠다.” 토종 공포물 <여고괴담>에 대한 반응이다. 관객들이 ‘교육 현실을 제대로 꼬집었다’며 열광하는데,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은 ‘교사상을 왜곡되게 그렸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개봉 3주째인 <여고괴담>은 현재 서울 관객 20만명을 돌파해 종영 때까지 70만명을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종영을 앞둔 <조용한 가족>도 짭짤한 성공을 거두었다. 서울에서만 35만명을 동원했으며 전국 관객은 67만명에 이른다. 두 작품은 ‘우리 공포물은 안된다’는 충무로 속설을 단번에 뒤집었다.

공포 영화라는 점말고 두 영화의 공통점은 또 있다. 모두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의 성공은 충무로 관습에 순치되지 않은 참신한 감각 덕분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여고괴담>을 연출한 박기형 감독(30)은 공포물에 적극적인 현실 비판 메시지를 담았고, <조용한 가족>의 김지운 감독(34)은 유머와 서스펜스를 결합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충무로 물 덜 든 참신한 감각 돋보여

두 작품의 성공이 충무로 물을 적게 먹은 덕에 참신한 감각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진단은 두 감독의 이력에 비출 때 설득력이 있다. 박감독은 아주대 산업공학과 출신으로, 대학 시절 연극 무대에 잠깐 몸을 담았다가 뒤늦게 영화에 관심을 돌린 경우다. 그는 영화아카데미·영상원 등의 영상 전문 과정을 거치지도 않았다. 김지운 감독은 서울예전 연극과 출신으로 연극 연출, 시나리오 습작, 광고 제작을 바탕으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조용한 가족>은 영상 전문지 <씨네21>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된 자작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충무로에서 고작 1∼2편 연출부 경험을 했을 뿐이다. 10여 년씩 도제식 교육 과정을 거친 뒤 어렵사리 ‘입봉’하던 충무로 관행에 비추어 파격적인 데뷔인 셈이다.

중견 감독들의 활동이 주춤해지고, 그 공백을 신인들이 메운 것은 90년대 초반부터 생겨 난 현상이다. 대기업이 영상사업에 진출하면서부터 영화 제작이 급증했고, 그에 따라 제작사가 신인 감독에게 메가폰을 잡게 하는 예가 늘었던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경험이 부족한 신인에게 1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자하게 된 제작사가 흥행 부담 때문에 코미디·액션 같은 흥행 요소를 끼워 넣는 관행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펼쳐 보이지 못한 채‘1회용’으로 전락한 예도 많았다.‘두 작품만 찍으면 중견 감독’이라는 자조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자조는 자신의 미학을 견지하면서 성공을 거두는 작품들이 쏟아지면서 ‘30대 기수론’으로 바뀌었다. 소설가 출신인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로 시작된 한국 영화 붐이 <비트>(연출 김성수) <접속>(연출 장윤현)으로 이어졌고, 올해 들어서 <8월의 크리스마스>(연출 허진호) <강원도의 힘>(연출 홍상수) <조용한 가족> <여고괴담>의 성공을 낳았다. 이들 작품은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한국 영화의 미학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끌어낼 만큼 완성도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조용한 가족>과 <여고괴담>은 여러 가지 점에서 전범이 될 만하다. 우선 스타를 쓰지 않고, 참신한 기획으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영화에 인기 스타를 쓰는 것은 ‘표몰이 효과’를 염두에 두는 충무로 관행이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제작비를 낮춘 것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조용한 가족>의 제작비는 마케팅 비용까지 합쳐서 10억원, <여고괴담>은 6억원이다. 제작비 절감에는 감독이나 스태프의 작업료가 낮은 것도 한몫을 한다. 하지만 신인들을 쓰는 덕에 제작비가 낮아지는 것은 부수 효과다.

두 작품의 가장 큰 성과는 관객이 얼마나 새로운 영화에 목말라 했는지 확인해 준 것이다. 참신한 발상으로 성공하는 예가 늘어나면서, 충무로는 몇몇 스타가 아니라 충실한 기획이 영화의 성공을 보장하는 안전 장치임을 깨달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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