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y yes 세이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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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1.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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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김성홍

주연/박중훈, 추상미, 김주혁

제작사/황기성사단


프랑스어 번역가 윤희(추상미)와 소설가 정현(김주혁)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신혼 부부. 출판 계약을 맺고 들어온 정현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여행을 제안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흥겨운 기분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눈빛이 음산한 남자를 만난 후 망가지기 시작한다. 일부러 두 사람의 차에 뛰어든 그 남자는 사고를 핑계로 자신을 정현의 차에 태워 달라고 요구한다. 썰렁한 농담을 하며 음산한 기운을 발산하는 그 남자가 바로 살인마 M(박중훈)이다.


정현과 윤희는 강릉에 도착한 뒤 서둘러 그와 헤어지지만 찜찜한 일이 계속된다. 한밤중에 난데없이 돌이 날아드는가 하면, 아슬아슬한 추월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하기도 한다. 이윽고 다시 두 사람 앞에 나타난 M은 정현의 화를 돋우어 폭력을 유도한다. 폭행 전과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여행에 자신을 끼워 달라는 것이다. 그 뒤 여행은 악몽으로 변한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두 사람은 이른 새벽 몰래 M을 따돌린다. 하지만 그것 역시 M이 예상했던 일. 그 뒤 M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정현에게 "너는 죽이지 않겠다. 대신 아내를 죽이라고 말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8월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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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이 본〈세이 예스〉
껍데기뿐인 폭력과 공포


〈세이 예스〉에 등장하는 인물은 계속 화를 낸다. 강원도로 여행을 간 결혼 1년차 부부인 정현과 윤희는 이유 없이 자기들을 해코지하려 드는 정체 모를 괴한 M의 존재에 화를 낸다. M도 화를 낸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정현과 윤희 부부가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여기까지다. 더 이상 그들의 심리에 대해서는 알아낼 도리가 없다.


평화로운 중산층 가정에 난데없이 침입하는 외부자로 인한 공포, 그 익숙한 스릴러의 공식을 〈세이 예스〉는 비트는 척하면서 아예 무시한다. 영화 말미에 가면 아무리 응징해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가오는 M의 존재 때문에 영화는 뻔한 공포 영화로 치닫는다. 〈손톱〉 〈올가미〉에 이어 다시 스릴러를 집어든 김성홍 감독의 연출은 대담하기까지 하다. '표면의 충돌을 보여주면 되지 등장 인물의 심리는 알아서 뭐해'라는 태도다.


섬뜩함 찾을 길 없는 '무시무시한 장면'


인간이 살의를 드러낼 때 가장 무섭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다. 이상하게도 〈세이 예스〉는 그것 자체가 대단한 발견인 체한다. 이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영화 속 등장 인물 누구에게도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 M이 왜 살인 행각을 일삼으며 자살에 가까운 최후로 돌진하는 것인지, 심지어 정현과 윤희가 과연 M의 질투를 살 만큼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사는지 여부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영화의 공간은 이들의 심리적 배경 막에 아무런 붓칠도 하지 않는다. 정현과 윤희가 행복을 나누는 집안 내부의 평온함, 강원도 해안이 주는 해방감 같은 것이 화면에 배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히치콕의 샤워 살해 장면을 변용한, 정현이 야외 온천에서 M에게 살해당할 뻔하는 장면도 가장 편안한 장소가 무시무시한 살인 무대로 바뀔 때의 섬뜩함을 전하지 못한다. 〈세이 예스〉는 오로지 가해자와 피해자의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것을 다 전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듯하다. 등장 인물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집단 무의식을 드러내 보려는 실험적인 장인 정신의 결정체라고 해야 할까.


소설가인 주인공 정현에게서는 세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성찰자의 면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터무니없는 상황에 벌컥 화를 냈다가 뒷수습을 하지 못해 쩔쩔 맨다. 관객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등장 인물 누구에게도 정이 가지 않는데 어떻게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세이 예스〉는 기존 것과 다른 스릴러 공포 영화를 만들겠다는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너무 멀리 나가 버렸다.


심영섭이 본〈세이 예스〉
지독히 상투적인 관념적 살인극


호감과 의혹은 종이 한 장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마치 일곱 달 된 아기가 엄마와 낯선 이를 구별해야 하는 생애 최초의 공포처럼. 〈세이 예스〉가 다루는, 가족 내에 침입한 낯선 자라는 설정은 아주 오래된 우리들의 본능적 두려움을 자극한다. 〈손톱〉과 〈올가미〉의 김성홍은 〈요람을 흔드는 손〉이나 〈배니싱〉 같은 가족 스릴러 목록에 또다시 자신의 인장을 찍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박중훈이 연기하는 살인마 M은(프리츠 랑의 영화 〈M〉에서 그 이름을 따온) 자신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살인하는, 피비린내 나는 광기에 넋을 내맡긴 복잡한 인간 본성의 어떤 면을 보여주지 못한다.


자기 검열적 스릴러의 한계 드러내


M은 여피 신혼 부부를 진저리 나게 뒤쫓아 다니며 삽날에 머리를 맞고도 다시 고개를 쳐드는데, 무한대의 완력을 과시하는 살인마는 차라리 터미네이터와 가까워 보인다. 대체 5t짜리 덤프 트럭과 티코의 대결이 뭐 그리 흥미로울 것이 있단 말인가? 인간적인 감정도 동기도 없이 무작정 자해와 위협, 협박, 납치, 누명 씌우기를 감행하는 M의 행동이 그대로 관객에게 공포를 일으킨다고 믿는다면, 공포가 폭력의 강도에 비례한다는 너무 순진한 계산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기특하게도 이 토끼 같은 부부는 끝까지 사랑을 믿고 공권력을 믿는다. 로만 폴란스키가 〈물속의 칼〉에서 보여주었던 오금이 저리도록 오싹한 도덕적 긴장감을 〈세이 예스〉는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대신 신랑의 순정과 동기 없는 M의 만행을 대비하면서 멜로와 공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나섰다. 신랑의 손가락을 하나씩 꺾으며 신부를 끝까지 사랑하는지 물어 보는 이 사이코 주례 선생의 가학극은 극단까지 밀고 나간 우리네의 신랑 발바닥 치기 풍습이었나?


그러고 보면 역시 김성홍 감독의 최고 스릴러는 〈올가미〉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살인 감정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치정 관계를 스릴러의 소재로 삼은 것만으로도 〈올가미〉는 대담했다. 그러나 〈세이 예스〉는 자기 검열적이고 관습적인 스릴러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것은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의 묘미를 거세하고 폭력의 강도만을 높인 관념적 살인극의 상투성이기도 하다.


프리츠 랑은 희대의 살인마 M을 〈살인자는 우리들 중에〉라는 독일어 Morder unter uns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살인마와 대면하기 위해, 스릴러라는 배반의 게임터에서 우뚝 서기 위해, 김성홍 감독은 더 이상 스릴러에 천착한다는 명분 뒤에 숨어 지내서만은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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