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거부자를 위한 변명
  • 박상기 (연세대 교수·법학) ()
  • 승인 2002.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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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한국 남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국민개병제를 채택하고 징병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병역법은 한국 남성은 누구든지 19세가 되는 해에 의무적으로 징병 검사를 받아야 하고, 징병 검사 결과 현역 입영 대상자로 판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지방병무청장에 의해 징집 순서가 정해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역 입대를 피하기 위해 많은 한국인이 돈과 권력으로, 혹은 해외 출산을 통해 병역 의무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동안 잠복되어 있던 새로운 유형의 병역 기피가 사회 문제화하고 있다. 종교적 이유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가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여호와의 증인’교이다. 여호와의증인교는 전쟁에 종사하는 것을 거부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징집 대상자인 여호와의증인교 신자 수백 명이 자동적으로 병역법위반죄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법원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 유죄로 판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역 거부는 여호와의증인교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종교적 이유만으로 나타난 것도 아니다. 국민개병제를 채택한 것 자체에서 이미 병역 의무와 양심의 자유가 충돌할 소지가 잠복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이들의 공개적 병역 거부로 인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고, 대학가에서는 앞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는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은 통일 이전부터 헌법에서 이를 보장하고 있으며, 영국·프랑스·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이다. 그밖에 타이완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법제화하지는 않았지만 제한된 범위에서 사실상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인정하는 국가에서는 과연 진실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인지를 양심 심사를 통해 판단한다.


이와 같은 제도를 인정하는 근거는, 종교적·윤리적 확신에 따라 전쟁에 종사하는 것을 반대하는 자에게 병역을 강제한다면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는 선진국일수록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는 것이 일반화해 있다.


‘무전입대 유전면제’로 국민개병제 신뢰 잃어


우리나라의 경우 병역 거부 문제가 심각할 수 있는 것은 양심적 이유 이외에 병무 행정 부패에서 비롯된 병역 의무 공평성에 대한 이의 제기라는 측면이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즉 우리 사회의 상류층 자제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병역 면제율이 높아 국민개병제가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이 병역을 면제받은 것이 적법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국민들은 심정적으로 차별적인 병역 의무 부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규정이 허울 좋은 눈속임이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학맥·인맥·지역 차별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병역 의무마저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면 징집 대상인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요구할 정당성은 사라진다.


병역 거부는 인권과 관련된 문제이다. 인권은 사회 구성원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할 공동체적 의무감을 가졌을 때 비로소 지켜진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 침해나 정치적 망명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인이나 한국 정부의 인권 의식은 후진국 수준이다. 국민 역시 인권 침해가 개인적 관심사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눈을 뜨는 인권 무감각 증세가 심하다.

인권 의식의 후진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를 무조건 질타만 하는 것은 공정한 비판이 아니다. 선별적 모병제 실시와 병역 복무 기간 단축 및 대체 복무 인정, 그리고 이를 악용할 소지를 없애기 위하여 현역 복무 기간보다 대체 복무 기간을 상대적으로 연장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등 개방적이고 탄력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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