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요리는 아무나 하나
  • 이영미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3.06.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제부턴가 중국집 주인이 한국인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중국인이 경영하는 중국집을 보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물가 인상에 영향을 준다고 짜장면값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게 하고, 정식 중·고등학교 인가를 내주지 않아 화교를 저학력으로 묶어두며 화교의 성장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눈썰미 좋은 한국인들이 요리를 배워 도처에 중국집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상(華商:화교가 하는 상점)을 찾아다닌다.

왜냐하면 중국인이 하는 중국집의 음식은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음식은 집에서 해먹을 염도 내지 않는다. 그 어마어마한 팬을 달궈 화끈하게 볶아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장을 장악한 한국인이 아직도 맛에서는 화교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음식 문화란 의외로 끈질긴 측면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서울의 종로나 광화문 통에 나가보면 화상은 금방 티가 난다. 건물이나 외양은 꼭 1960년대 중국집 그대로이다. 그런데 손님은 바글바글하다. 왜 그럴까 하고 간판을 다시 보면, 조그만 글씨로 ‘화상(華商)’이라고 써 있는 곳이 많다. 이런 곳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는 것은 좀 어리석은 일이다. 짜장면·짬뽕은 한국인의 입맛에 개발된 것이어서, 한국인이 하는 중국집이 더 잘 한다(심지어 어떤 화상은 아예 메뉴에서 짬뽕을 없애버린 소신파도 있다). 그러나 물만두와 볶음밥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한국인의 손맛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요리 계열로 들어서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내 일터가 있는 성북구 석관동에도 화상 중국집이 하나 있다. 신이문 삼거리와 석관사거리 중간에 있는 ‘춘방관(春芳館)’이라는 허름한 곳이다. 노인들이 경영하기 때문에 배달도 하지 않고 심지어 신용카드 결제도 안 되는 곳이다. 인터넷에 소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음식이 번개처럼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음식 맛은 기가 막히다. 볶음밥은 고슬고슬한 밥알에 달걀이 고루 묻혀져 있고, 물만두도 느끼하지 않은 게 고소하고 담백하다.

무엇보다 맛있는 것은 요리이다. 류산슬은 죽순·버섯·고기·해삼·새우 등 보통 중국집 재료에다, 소라·생선살·오징어(어떤 때에는 낙지) 등이 듬뿍 들어가 있고, 국물이 흥건하지 않게 생생하게 볶아낸다. 라조기도 연한 닭고기에 온갖 야채가 섞여 맛을 내고, 부추잡채는 재료가 있는 대로 가리비에 볶기도 하고 고기에 볶기도 한다. 깐풍기·라조기에서 고기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고춧가루를 뺀 맑은 국물의 부추짬뽕도 일품이다. 질과 양을 생각하면, 시내 유명 음식점의 절반 이하 가격이다.

최근 이곳에 하수도 공사를 시작해 노상 주차 공간이 없어지는 바람에, 노상 주차를 해놓고 이 맛을 즐기던 택시 기사 손님이 뚝 끊겼다. 점심 시간인데도 가게는 한산한데, 배달은 할 생각도 하지 않는 이 집 노인들을 보면 내가 가슴이 탄다. 나의 점심 시간을 즐겁게 해주는 이 집마저 문을 닫을까 봐서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