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만드는 청량 음료
  • 이영미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3.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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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탱’ 가루라는 것을 기억하는가? 오렌지 향이 나는 주황색 분말로, 물에 타서 음료로 마시던 것이다. 지금은 별별 청량음료가 다 있어 고르기가 힘들 정도이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청량음료를 돈 주고 사 먹기에는 우리네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만만한 것이 미숫가루였고, 서양식 식품들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음료 분말이 유행했다. 탱 가루(포장지에 크게 ‘TANG’라고 써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

그러고 보면 제품화한 청량음료도 별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인공 색소와 인공 향료, 설탕과 구연산 같은 것을 적절히 배합한 것이 태반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점점 이런 음료가 싫어진다. 그래서 나는 길거리에서 목이 말라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청량 음료는 거의 사 먹지 않는다. 대신 만들어 먹는다.

직장에서 내가 가장 애용하는 음료는 차갑게 식혀 놓은 차(흔히 녹차라고 부르는)이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고 일을 계속하는 공간이므로, 가장 일상적으로 상용하는 음료를 갖다 놓는다. 찻잎을 우려 빈 페트병에 넣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데,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뒷맛도 깨끗해서 좋다. 차도 자꾸 먹다보니, 입이 점점 예민해진다. 티백은 잘 안 먹게 되고, 캔이나 병에 담아 제품화한 차 음료는 다른 첨가물을 섞어 향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입에서 완연히 느껴진다. 그러니 내 손으로 우려 먹을 수밖에.

집에서는 마치 별식 먹듯이 다른 것들을 해 먹는다. 여름에 좋은 음료로는 오미자물이 있다. 오미자물의 장점은, 만들기가 아주 편하다는 것이다. 큰 시장이나 약재상에서 오미자를 사다가 그냥 찬물에 담가놓기만 하면 된다. 하루가 지나면 황홀하도록 빨간 물이 우러나오는데 시고 향이 강한 오미자 냄새가 난다. 여기에 꿀이나 설탕을 가미해서 먹으면 된다. 세상에, 끓여서 식히는 번거로움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신기한 것은, 오미자를 끓이면 옅은 분홍빛 정도밖에는 색깔이 우러나오지 않고, 그냥 물에 담가놓아야만 새빨간 물이 된다는 점이다.

요즘 우리 집에서 애용하는 음료는 생과일 즙이다. 말 그대로 과일을 녹즙기에 넣어 즙을 짜서 먹는 것이다. 대개 생과일 주스라고 하면 토마토나 딸기 같은 과일을 믹서로 갈아 넥타를 만들어 먹는 것이지만,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은 몇 가지 안된다. 게다가 넥타는 물을 첨가해야 하고 맛이 싱거워지므로 설탕 등을 더 넣어야 한다.

설탕이나 물을 첨가하지 않고 그대로 짜낸 생과일 즙은 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맛이 아주 진하고 신선하다. 또 수박이나 참외 등 넥타로 만들기 힘든 과일도 즙을 짜면 아주 맛있는 음료가 된다. 수박은 즙을 짜보면 이름 그대로 수분덩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에서 짠 참외 즙을 먹어보면, 값이 비싸도 물 많고 달다는 이유로 사 먹게 되는 멜론이 결코 부럽지 않다. 겨울이 되면 값싼 귤을 껍질 깐 알맹이로만 즙을 짜먹으면 슈퍼마켓에서 파는 오렌지 주스와는 비교가 안된다.

혹시 몸에 좋은 녹즙을 먹겠다고 사놓은 녹즙기가 부엌 한구석에서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냉장고에서 시들어 가는 과일을 꺼내어 즙을 내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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