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벌레 재선충 '솔숲 습격 사견'
  • 오윤현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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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소나무 100만 그루…방제 수단 마땅찮아
벌초와 성묘를 하기 위해 산으로 자주 가는 계절이다. 이맘때 숲에서는 다양한 변화가 일어난다. 남쪽에서는 가공할 병충해 때문에 숲이 병들고, 활엽수가 우거진 중부 지역에서는 도토리거위벌레가 참나무 가지를 잘라내 도토리가 땅바닥에서 썩고 있다는 소식이다. 또 서울 시내 숲에는 난데없이 흰불나방 애벌레가 나타나 시민들을 놀래키고 있다. 그 숲으로 들어가 보았다.

숲은 포성 없는 전쟁터이다. 나무와 나무, 곤충과 곤충, 나무와 곤충들의 치열한 싸움이 날마다 벌어진다. 대부분의 전투는 좀더 나은 화합과 공생을 위한 통과 의례다. 그러나 요즘 남부 지방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소나무재선충(재선충)은 다르다. 그들에게는 화해나 공생이 없다. ‘소나무 에이즈’라는 별명답게 오로지 죽음만 있을 뿐이다.

소나무를 거꾸러뜨리는 방식도 야비하다. 수만, 수십만 마리가 한꺼번에 수관을 막아 석 달 안에 고사시키는 것이다. 재선충 퇴치 연구에 골몰해온 남부임업시험장 이상길 병충해연구실장은 “피해 소나무만 놓고 보면 악명 높은 4대 해충(솔잎혹파리·솔나방·흰불나방·솔껍질깍지벌레)에 비길 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3년 8월 말 현재 재선충의 ‘몰살 작전’에 휘말린 소나무는 약 백만 그루.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재선충이 국내에 숨어 들어온 것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 원숭이 우리를 짓기 위해 일본에서 수입한 소나무 원목을 통해 밀입국했다. 전문가들은 금정산 일대 소나무가 말라 죽고 난 다음에야 재선충의 상륙을 눈치챘다. 그리고 경악했다. 몸길이가 0.1∼1mm에 불과하지만 재선충의 위력은 일본과 중국의 피해 사례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던 터이다. 치사율 100%, 무시무시한 증가율(20일 만에 한 쌍이 20만 마리 이상으로 불어난다) 등 재선충에 관한 소문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관련 기관이 재선충과의 전쟁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유입 경로와 이동에 관한 비밀이 밝혀졌다. 일본에서 들여온 원목 속에 있던 솔수염하늘소의 유충에 기생하다가, 유충이 우화해 소나무 햇잎을 먹는 사이에 국내 소나무로 잠입한 것이다. 재선충이 솔수염하늘소가 섭취한 식물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섬유소)를 잘 소화하도록 돕는다는 사실도 공개되었다. 곤충의 체내에 공생하는 여느 미생물(세균·효모·균류)과 같은 기능이었다. 재선충의 이런 역할은 박멸에 필요한 중요한 단서였다.

박멸은 쉬워 보였다. 죽은 소나무(피해목)를 재빨리 소각하고, 살충제를 뿌리면 될 것 같았다. 작업도 순조로워서 전문가들은 박멸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다음해 봄, 어이없게도 피해목이 다시 나타났다. 원인을 추적해 보니 피해목의 잔가지가 진원지였다(솔수염하늘소 유충은 나무 굵기가 2cm 정도만 되어도 생존한다). 피해는 더욱 확산되었다. 또다시 소각 작업이 이루어졌고, 항공 방제와 훈증 처리법(베어낸 소나무를 약물 처리한 뒤, 밀봉해서 유충을 질식사시키는 방법)까지 동원되었다.
그로부터 8년, 피해 면적이 늘지 않자 전문가들은 안심했다. 그런데 1997년 부산에서 수십km 떨어진 함안과 구례에서 재선충이 나타났다. 피해목을 땔감이나 펄프 재료로 쓰기 위해 누군가 외부로 빼돌린 것이 분명했다. 이후 재선충은 1998년 진주, 1999년 통영을 거쳐 울산·거제·밀양·목포로 진군했다.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이대로 솔수염하늘소와 재선충을 방치하면 전국토의 소나무가 궤멸하고 만다는 것이. 임업연구원은 다시 재선충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피해를 입은 소나무는 발견 즉시 베었다. 곳곳에 훈증 처리한 ‘소나무 무덤’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피해목을 제거하고 살충제를 뿌려도 피해가 줄지 않았다. 오히려 확산 속도가 빨라졌다. 처음 금정산에서 나타난 재선충이 12km 떨어진 부산 기장까지 가는 데 12년 걸렸는데, 기장-울산간 12km를 이동하는 데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8월 말, 짙은 녹음이 드리운 진주시 문산면 일대 숲도 재선충의 간헐적인 습격으로 침울해 보였다. 껑충하게 자란 소나무 몇 그루가 불에 덴 듯 벌겋게 말라가고 있었다. 숲 안으로 들어서자 잘려나간 소나무들이 초분(草墳)처럼 누워 있었다. 14년간 재선충을 연구한 문일성 박사(남부임업시험장)에 따르면, 소나무 무덤을 1년 정도 보호해야 유충을 완전 박멸할 수 있다. 현재 진주시 문산면 일대 숲은 재선충의 공격이 가장 극심하다. 문박사는 “올해 1∼4월에만 소나무 4만2천 그루를 베어냈다. 정말 끔찍하다”라고 말했다.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피해가 빈발하자, 요즘 일부 전문가들은 환경 단체의 반발로 중단한 항공 방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살충제를 50배 정도로 희석해 다른 동물에는 별 피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항공 방제를 반대해온 부산 녹색연합 최종석 대표의 말은 다르다. “솔수염하늘소를 죽이려고 뿌리는 약이 다른 곤충이나 생물에게 피해를 안 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부산 시민은 산간 샘물을 많이 길어다 먹는다. 그런데 그 산에 항공 방제를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그는 말했다.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솔수염하늘소는 원래 ‘자연의 청소부’이다. 솔수염하늘소를 비롯한 딱정벌레는 균류·세균과 함께 자연계의 3대 분해자로 꼽힌다. 그들은 지구 곳곳에서 동식물의 유해를 흙으로 만든다. 만약에 딱정벌레나 송장벌레·풍뎅이 들이 맡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지구는 금세 엄청난 오물로 뒤덮일 가능성이 높다. 환경운동가들은 단지 재선충을 박멸하기 위해 솔수염하늘소를 일방으로 죽이는 것은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고, 반생태적인 처사라고 비판한다.
돌이켜보면 솔수염하늘소만큼 강력하게 인간과 상대한 곤충은 많았다. 1830년부터 악명을 떨치고 있는 멕시코솜바구미가 대표적이다. 멕시코 목화밭에 처음 나타났던 이 바구미는 이후 미국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브라질 등지에 출몰해 목화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들을 가만 놓아둘 리 없었다. 1900년대 초 미국 텍사스 주 정부는 겨울을 난 바구미들을 유인해 죽이려고 이른 봄에 함정 목화밭을 만들었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다. 또 다른 주 정부는 과테말라에서 멕시코솜바구미 유충을 먹는 침개미와 아프리카의 기생벌을 도입해 확산시켰다. 그렇지만 이 방법 역시 실패로 끝났다. 화학적 용제, 불임제, 유인제, 기피제, 살충제가 든 미끼 등도 마찬가지였다.

화학적 방제는 처음에 더없이 편리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결과는 달랐다. 언제나 소수의 개체가 살아남았고, 유전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농약에 대한 면역력을 전해주었다. 잔류 농약은 해충이 아닌 다른 동식물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이런 시나리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점을 의식해 생물학적 퇴치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일본의 한 연구소는 소나무좀벌레를 이용해 솔수염하늘소 유충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후쿠오카의 한 회사는 ‘소나무 보호자’로 불리는 전기 기구를 이용해 재선충을 감전사시키는 장치를 개발해냈다(단점은 고압 전류가 나무를 죽인다는 점이다). 천적이나 포식자, 기생 동물을 이용해 해충을 제거하는 방법도 여러 나라에서 연구되고 있다. 이에 견주어 한국의 생물학적 퇴치 연구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상태이다.

재선충은 과연 어디까지 밀고 올라갈까. 아직 해답을 아는 전문가는 없다. 일본의 해충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100년 재선충 경험’을 토대로 인천-강릉 선까지 침투하리라 예상한다. 대책은? 아직 없다. 기존의 방제법을 좀더 철저히 활용하는 것뿐이다. 임업연구원 정영진 산림해충연구실장은 “기존의 병해충이 재래식 폭탄이라면 재선충은 핵폭탄인데, 핵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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