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하다가 어느 나라 말입니까?”
  • 성우제 (wootje@e-sisa.co.kr)
  • 승인 2000.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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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말 쓰기 전도사’ 방송인 정재환씨/단행본 2권 펴내고 시민운동도 펼쳐
개그맨이자 방송 진행자인 정재환씨(39)는 늘 책가방을 들고 다닌다. 늦깎이 대학생(성균관대 인문사회계열 1학년)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의 오래된 버릇이다.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들고 다닌 그의 가방에는 언제나 책 한 권과 영어 사전이 들어 있었다.

1992년께부터 영어 사전은 국어 사전으로 바뀌었다. 정씨가 우리 말글을 바르게 사용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국어 사전을 펼칠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별명이 하나 붙었다. ‘우리말 지킴이’.

정씨는 방송인·학생이라는 직함 외에도 ‘우리말을 더욱 곱게, 아름답게 만들고 가꾸자’고 호소하는 것을 자기 의무라고 여기는 실천가·운동가이기도 하다. 지난해 <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이라는 단행본에 이어 얼마 전에는 <우리말은 우리의 밥이다>(현재)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 말글에 관심을 기울여 오면서, 특히 방송 활동을 하면서 접한 오염된 언어 환경을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신랄하게 꼬집은 책이다.

정씨는 지난 2월부터 김영명 교수(한림대·정치외교학) 등과 함께 한글문화연대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그 단체의 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한글문화연대에 소속된 회원은 3백여 명. 대표인 김영명 교수가 김웅진(한국외국어대·정치외교학)·박광희(한림대·영문학) 교수 같은 학자들을 불러모았고, 정씨는 배철수(DJ) 임성민(아나운서) 이동우 김수용 김용만(개그맨) 차승원 김원희(탤런트) 씨를 정회원으로 끌어들였다.

한글문화연대는 각자의 영역에서 우리말 가꾸기를 실천하고, 인터넷에 누리집(홈페이지·www.urimal.org)을 만들어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을 펼쳐 가고 있다. 국어학자가 아닌 사회학·정치학·생물학자 들이 유명한 방송·연예인과 함께 학술·시민 운동을 동시에 펼치는 보기 드문 시민단체인 셈이다.

정씨가 우리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이다. 그가 진행하는 어느 프로그램에 ‘표 아무개’라는 여고생이 출연했다. 방송이 끝난 뒤 그 학생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내가 ‘표’라고 하지 않고 ‘펴’라고 발음한 데 대한 항의였다. 발음도 방송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그때 처음 알았다”라고 정씨는 말했다.

발음에 대한 관심은 말뜻을 정확하게 가려 쓰는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국어 사전을 펼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었고, 국어와 관련된 책들도 쉬운 것부터 읽기 시작했다. 관심을 가진 정씨에게 우리 말글은 점점 찌그러지고 왜소해지고 초라해지는 모습으로 비쳤다.
정씨는 그의 책 두 권에서 자기가 몸 담은 방송의 우리말 오염 실태를 주로 다루었다. 라디오·텔레비전에서 사용되는 우리말이나 요즘 맹위를 떨치는 텔레비전 자막에도 문제점이 많지만, 그는 ‘재미’로 쓰는 얼치기 외국어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는다. ‘오바하다’ ‘비지하다’ ‘슬림하다’ ‘클린하다’ 등 수많은 영어가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지키고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일은 재미나 장난으로라도 외국말을 마구 쓰지 않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대학생인 정씨는 대학에서 ‘대학 생활 말로 즐기기’ 같은 제목으로 특강을 하는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요청해 오면 임성민·이동우 씨와 더불어 ‘우리말 교실’을 열 계획도 가지고 있다. 10월8일 성균관대에서는 554돌 한글날을 기리는 <으뜸한글 온누리에>라는 행사가 열린다. 학술회의와 음악회로 이루어진 이 행사에서 정씨는 한글학회가 주는 ‘10월 우리말 지킴이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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