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피겔-정가 비리 캐는‘추적 보도’의 명문
  • 프랑크푸르트·허 광 통신원 ()
  • 승인 1999.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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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탐사 기사로 정권·권력자 감시
매주 월요일이 되면 독일의 정가는 잔뜩 긴장한다. 이 날은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이 가판대에 나오기 때문이다. 47년에 창간된 <슈피겔>은 독일 정가의 숨은 비리를 들추어내는 ‘탐사 보도’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슈피겔>의 폭로 기사 때문에 목이 떨어진 권력의 핵심 인물도 적지 않고, 그 여파로 정권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 중 한 가지 사례는 전후 독일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던 ‘<슈피겔> 사건’이다.

<슈피겔>은 62년 10월, 나토의 군사 훈련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에서 독일 국방부가 몰래 추진하고 있던 핵무장 계획을 폭로했다. <슈피겔>의 보도를 ‘국가 반역 행위’라고 몰아붙인 아데나워 정부는 편집진을 체포하고 <슈피겔> 사옥을 폐쇄했다. 그러나 독일의 핵무장과 언론 탄압에 반대하는 국내외 여론이 들끓자, 당시 국방장관 슈트라우스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여파로 아데나워 연정도 내부 불화에 휩싸여 무너졌다.

<슈피겔>은 90년대에 이르기까지도 독일 정가를 뒤흔드는 추적 보도를 멈추지 않았다. 기업이 정치가들에게 불법으로 정치 자금을 제공한 ‘플릭 콘체른 사건’, 노조 대표들이 사복을 채우는 수단으로 노조를 악용해온 ‘새 고향 사건’, 국제 밀수 조직이 러시아의 핵물질을 독일로 밀수하고 거기에 독일 정보부가 개입되어 있다는 ‘플루토늄 사건’ 등은 모두 <슈피겔>이 처음 폭로했다.

<슈피겔>이 탐사 보도에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을 풀려면 먼저 <슈피겔> 내부의 독특한 작업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한 가지 주제에 서너 부서가 공동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사실과 증거물을 각 부서의 공동 작업을 거쳐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다.

이같은 공동 작업에는 <슈피겔>의 12개 부서가 참여한다. 그리고 이 12개 부서에 소속된 기자 2백70명이 국내 11개, 해외 22개 지국에서 사건 추적과 기사 작성, 교정을 분담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원고는 매호 평균 1백31쪽이다. <슈피겔>은 여기에 광고 1백7쪽을 포함해서 매주 2백38쪽을 선보인다.
정보 전문가 55명이 ‘기사 검증’

이때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최종 기사가 나오기 전에 <슈피겔> 내부의 철저한 검증 과정이 따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자들이 쓴 원고에 논리적인 모순이 없는지, 또 인용된 수치나 인명에 오류가 없는지 하나하나를 조사하는 것인데, 이같은 검증 작업에만 정보 전문가 55명이 투입된다. 물론 이들은 <슈피겔> 자료와 인터넷, 그리고 전세계의 데이터 뱅크를 이용해 원고 검증뿐만 아니라 기자의 조사 작업도 돕고 있다.

기사 검증 과정에는 <슈피겔>이 자랑하는 방대한 데이터 뱅크가 이용되는데, <슈피겔> 자료실은 문서 정보 약 2천5백만 개와 사진 정보 4백만 개를 갖고 있다. 그리고 세계 유수 통신사 정보는 물론 15개 언어로 출간되는 3백여 정기간행물을 수집해 분류한다. 정기간행물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슈피겔> 편집장 슈테핀 아우스트는 ‘철저한 조사’와 ‘오락성 기사보다는 사회·정치적인 사건의 배후를 캐는 탐사 보도의 전통’을 유지한다고 말하는데, 그러면 이같은 편집 기조는 과연 어느 정도 호응을 얻고 있을까?

<슈피겔>의 발행 부수는 매주 약 백만 부. 경쟁지 <슈테른>에는 약간 못 미치고, 93년에 창간되어 <슈피겔>을 바짝 따라붙고 있는 <포쿠스>보다는 약 30만 부가 많다. 이 중 90%는 독일에서 소화된다. 외국에서 팔리는 10만 부 중 대부분은 역시 독어권인 오스트리아·스위스로 들어가지만, 그밖에 1백60여 나라에도 독자가 있다. 독일 정기간행물 중에서는 가장 큰 국제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판매 부수와 관련해서 주목할 부분은 독자층 구성과 그 성격이다. <슈피겔>은 30만 3천명이 평균 9.2년 동안 정기 구독을 하고 있다. 발행 부수의 30%를 정기 구독자가 소화하는 셈인데, 독자와 <슈피겔>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통계 조사에 따르면, <슈피겔> 독자는 단순한 ‘정보 흡수’가 아니라 그 정보의 배후, 즉 ‘탐사 보도의 질’에 의미를 둔다고 한다.

또 하나 통계에 따르면, <슈피겔>의 실제 독자층은 5백80만 명(외국 60만 명), 다시 말해 전체 성인 중 9%가 <슈피겔>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 30% 이상이 독일의 고학력자, 중상 이상의 소득층에 속해 <슈피겔>은 광고업주들로부터도 매력 있는 매체가 되고 있다. 실제 광고 수주에서 <슈피겔>은 독일의 인쇄물 중 최고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7백23개 광고주, 3백33개 광고 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어 광고 5천8백60쪽에 총 수주액 3천억원을 거두어들였다.

<슈피겔>의 수입에 또 한몫을 차지하는 분야로 4년 전부터 시작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빼놓을 수 없다. <슈피겔>의 홈페이지 전담 부서는 매일 수백 개의 일반 정보를 업데이트해 독자의 자료 검색을 도울 뿐만 아니라, 매주 토요일이면 다음주 월요일자 <슈피겔>의 핵심 기사를 미리 띄울 정도로 신속성을 과시하고 있다. 그 결과 독일어 전자 매체 중에서는 가장 고급이라는 평가와 아울러 검색 인원도 98년 한 달 동안에만 약 2백만명에 이를 정도로 주목되고 있다.

<슈피겔>이 언론 기업으로 뿌리를 내린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창간 이후 50년이 넘도록 발행인으로 있는 아욱슈타인의 경영 전략이 꼽힌다. 그는 74년 <슈피겔> 자산의 절반을 직원들에게 기증했다. 이때부터 <슈피겔>은 전직원이 공동으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며, 기업 이익의 절반은 직원들의 자산이라는 경영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

“<슈피겔>을 대신해 권력을 비판할 매체가 없는 한 우리는 중단하지 않는다.” 2년 전 창간 50주년 특별호에서 아욱슈타인은 이런 포부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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