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엽 Y2k 정부종합상황실장“Y2k,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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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ㆍ3개월ㆍ1년 단위로 돌아가는 시스템은 아직 점검 대상입니다. 공과금 고지서가 발부되고 금융기관에서 이자 계산이 이루어지는 1월25~31일을 주시해야 합니다. 최대 고비는 윤달 문제입니다"

지구촌을 공포에 떨게 했던 ‘천년 손님’(Y2k)이 큰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듯하다. 천년이 가고 오는 것을 마른 침을 삼키며 지켜보았던 안병엽 Y2k 정부종합상황실장(정보통신부 차관)은 한국 전역이 Y2k 태풍권에서 일단 벗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실장은 완전히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며,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2000년 1월1일 0시에 어떤 심정이었습니까?

통신센터(서울 광화문) 15층 상황실에서 내려다보니 밖에서는 새 천년 맞이 행사로 인산인해였어요.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큰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일었죠. 마침내 초침이 천년으로 넘어갔는데, 우선 텔레비전이 꺼지지 않는 거에요. 전력 공급에 이상이 없다는 얘기죠. 통신 문제를 점검하려고 일부러 전남체신청장과 통화했더니 통신도 괜찮았어요. 수돗물도 콸콸 나왔어요. 일단 국민 생활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13개 중점 분야에서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때가 0시30분이었죠. 당시 약 30분 동안 상황실에는 그야말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어요.

이제 상황은 다 끝난 것 아닌가요?

올해 내내 두고보아야 합니다. 전력이나 통신처럼 매일 가동되는 시스템은 안심해도 되지만 1개월·3개월·6개월·1년 단위로 돌아가는 시스템의 이상 유무는 아직 점검 대상입니다. 전기나 통신 요금 같은 공과금 고지서가 발부되고 기업체가 월급을 지급하며, 금융기관에서 이자 계산이 이루어지는 1월25∼31일에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키는지 주시해야 합니다. 최대 고비는 윤달입니다. 컴퓨터가 올 2월29일을 인식하지 못해 2월28일에서 3월1일로 넘어갈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정보화 기기를 손보면서 일단 윤달 문제도 거의 해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 복병이 있습니다. 1996년 상반기 이전에 공급된 486 컴퓨터에 윤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연월일 표기가 처음으로 컴퓨터 기억 용량인 여덟 자리를 채우는 10월10일도 주시해야 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일단 윤달 문제가 해결되면 상황실을 해체하려고 합니다.

대재앙이 올 것이라는 당초 예측과 달리 큰 탈 없이 Y2k 문제를 해결하게 된 이유를 무엇으로 보십니까?

정부와 민간이 혼연일체가 되어 조직적으로 대응한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정부는 1997년 2월부터 Y2k 상황실을 발족해 대비해 왔고, 1999년 12월30일부터 6일간 비상 가동을 했습니다. 민간에서도 119 구조지원단 천여 명이 회사 소속을 떠나 ‘다국적군’비슷하게 1999년 12월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자원 봉사를 했어요. 이렇게 민과 관이‘극성맞게’ 대비한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국제기구 등과 국제적 공조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언론도 적극 협조해 전국민에게 Y2k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알려 차분히 대비하게 했다고 봅니다.

싱겁게 끝난 탓인지 공연히 호들갑을 떨게 했다는 ‘사기론’을 주장하는 네티즌도 많더군요.

정부가 그런 말을 듣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한푼 생기는 것도 없이 엄동에 Y2k 문제를 해결하러 뛰어다닌 119 구조 지원단 사람들에게는 그런 모독이 없을 겁니다. 창원의 한 알루미늄 공장과 아파트 한 동에서 일어난 작은 사고에도 생산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수백명이 추위에 떨었습니다. Y2k 문제가 전력이나 통신 같은 역점 분야에서 일어났다고 상상해 보세요. 엄청난 파괴력과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올 게 불 보듯 뻔한 일 아닙니까.

북한이나 러시아 같은 사회주의 국가와 제3 세계 나라들이 별 준비 없이도 잘 넘긴 사실을 과잉 대응을 했다는 근거로 드는 이도 있습니다만.

그 나라들은 정보화 기기 보급률이 낮습니다. 마이크로 칩을 쓰지 않는, 다시 말해 Y2k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순 기계 설비가 많지요. 그러나 이 나라들도 군수·원전·공항 같은 특수 시설은 손을 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엔을 주축으로 해 관련 국제기구들이 세계 평화를 위협할 만한 분야들을 점검한 것이지요. 북한도 무기 체계에서 Y2k 문제가 일어날 위험에 대비했다고 국방부가 알려주었습니다.

어쨌든 2조원이나 돈을 쓴 것은 과다 지출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민간 기업이 돈을 얼마나 썼는지 모르지만, 13개 중점 분야에서 1조1천억원을 썼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보화 관련 기기를 아예 교체한 업그레이드 비용도 꽤 들어 있습니다. 중점 분야에서 Y2k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자체가 치명적입니다. 한국의 국제 신인도에도 금이 가고요. 비용이 과다했는지 아닌지는 점검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Y2k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성과는 실로 크다고 봅니다.

성과가 무엇입니까?

이번 기회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정보화 관련 기기 수백만개를 모두 꺼내어 보았습니다. 대청소를 한 것이지요. 기술 인력들은 자신들의 정보화 기기에 이렇게 많은 프로그램이 들어 있는지 놀랐다고 그러더군요. 업계에서는 시스템을 점검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기술 향상의 계기를 제공해 관련 산업 발달에 기여할 것으로 봅니다. 전국민의 정보화 마인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문가들은 Y2k가 정보화 사회로 옮아가는 출발점에서 거행하는 ‘성인식’이라고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컴퓨터를 쓰든 안 쓰든 Y2k를 모르는 국민이 없다시피 한 것 아닙니까. 정보화 마인드를 높이기 위해 쏟아부어야 할 엄청난 홍보비를 절약한 셈이죠.

Y2k 문제 해결 과정에서 관련 업체의 횡포와 인증을 둘러싼 비리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과잉 진료’ 문제가 있었습니다. 컴퓨터에 내장된 배터리 저장용 시계(RTC)에 무료로 제공되는 보정 프로그램(패치 파일)을 깔기만 하면 되는 사안도 컴퓨터를 새로 사야 안심할 수 있다느니 하며 사람들을 현혹했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외국 업체를 등에 업은 PC 판매 업체들이 국내 업체는 Y2k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악선전을 해댔습니다. PC를 연간 2천만∼3천만 대나 수출하는 국내 업체들이 Y2k 문제를 자체 해결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판치기에 불러다가 혼을 내 주었습니다. 인증 문제는 애초 외국 업체들이 한국 기업을 못 믿겠다고 해서 인증 센터를 만들어 인증을 받게 한 것입니다. 일부 문제가 있어 인증 문제도 자체 진단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대통령의 신년사에서도 강조되었습니다만 교육 정보화 사업 집행이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교육 정보화 사업을 예정보다 앞당겨 올해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사업의 취지는 교사에게 컴퓨터를 지급해 인터넷에서 교육 컨텐츠를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바르게 활용하는 법을 가르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빈부 격차가 제일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지만, 머지 않아 정보를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사이의 정보 격차가 곧 빈부 격차로 이어질 겁니다. 국가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주려는 정책은 산업 사회의 빈부 격차가 정보화 사회에까지 이어지지 않게 하려는 배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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