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 학원에 열린 옛날 서당
  • 전주·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0.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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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완산구 서서학동에서 월정서예학원을 운영하는 신문수씨(56)가 동네를 지날 때면 가까운 이웃들이 옷매무시를 다시 하고 예를 표한다.

신문수씨는 초등학생이 대부분인 수강생들에게 <사자소학>이나 <동몽선습>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 따라 외도록 한다. 손에는 어김없이 회초리가 들려 있다.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들을라치면 영락없는 한문 서당이다. 단순히 글씨만 가르치는 서예 학원이 아닌, 사람됨을 일깨우는 서당의 훈장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원생들에게는 수강료를 한푼도 받지 않는다.

대신 신문수씨가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것은 효(孝) 사상이다. 지난해 부친을 여읜 그는 지금도 상복을 입고 수강생을 가르친다.

정읍 고부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7세 때 소학을 뗀 뒤 주경 야독하며 당대의 유명한 한학자와 서예가에게 한문과 글씨를 배웠다. 서도에 정진할 때면 지금도 5㎏이 넘는 쇳덩어리를 오른손 팔목에 단다.

그가 묵향(墨香)을 벗삼아 붓을 잡은 지 벌써 반 백년, 어느 날 글씨에 정진하며 먹을 갈다 갑자기 벼루의 바닥이 뻥 뚫려 버렸다. 그렇게 구멍 뚫린 벼루 2개를 간직하고 있는 그는 대학에 서예학과가 생길 정도로 서예 인구는 늘어났지만 진정으로 인품 있는 서도인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구양순체를 즐겨 쓰는 신씨는 서예 공모전 등 지금까지 수상 경력이 80여회. 전국에서 글씨를 배우려는 이들이 신씨의 허름한 학원을 찾아온다.

“설날 연휴만이라도 조상과 부모를 생각하고 전통의 가치를 되새겨 보자.” 신씨가 새 천년 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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