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 공생하는 ‘생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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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9.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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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건축 정책, 환경 친화에 초점
지금 세계 건축계의 화두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다. 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 회의’의 성과다. 즉 개발과 환경을 대립이 아닌 공생의 관계로 풀어보자는 개념이다.

아직 뚜렷한 대안이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건축계가 거둔 환경 친화적 걸음은 제법 날렵하다. 건축은 아무리 노력해도 환경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있다. 따라서 자연 훼손 최소화는 이제 건축의 기본 에티켓에 속한다. 경사는 더 이상 능선을 훼손할 핑계가 되지 못한다(아래 사진 참조).

자연에 깃들려는 노력은, 주택과 주위 환경을 조화시키는 차원을 넘어선다. 집을 환경의 일부로 삼아 생태 순환 고리에 참여하려는 시도가 그 하나다. 생활 오수를 자체 정화 시설로 여과한 뒤 정원수와 화장실 물로 재활용한다든지, 배설물과 음식 쓰레기를 미생물 처리하여 비료로 전환하는 것도 한 예다. 태양열 같은 무공해 에너지 연구도 활발하다. 나아가 건축 자재부터 완전 무공해성을 추구하는 시도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생태 건축’으로 불리는 첨단 개념의 맨 앞장은 독일이다. 전원 주택의 경우는 물론이고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서도 자체 정화 시설을 완비한 생태 건축이 부분적으로 생활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일본도 생태 건축에 대한 접근이 활발하다. 도쿄의 ‘환경 공생 집합 주거 단지’ 계획이라든가 오사카의 ‘넥스트 21’ 같은 프로젝트가 좋은 예다. 넥스트 21은 생태 정원과 자체 정화 시설을 갖춘 ‘실험적 시스템 집합 주택’에 해당한다. 쓰레기나 오수는 촉매를 사용해 자체 정화하고, 걸러낸 물은 생태 정원용 따위로 재활용한다. 연료 전지와 태양 에너지 기능을 융합해 단열 성능을 끌어올린 점도 탁월하다. 선진국들만 이같은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벌써부터 환경 친화적 주거 단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전통 마을의 정서를 주거 단지 배치에 반영한 안후이 성 ‘호박산장 남촌’ 프로그램과, 에너지 절감과 환경 친화를 함께 풀어보려는 칭다오 시의 ‘사방 주택 소구’, 천연 공법으로 생태 건축을 꿈꾸는 장쑤 성 상주(常州)시의 ‘홍해서촌’ 등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요는 의지가 문제인 것이다.

이들을 실용화하기에는 아직 경제성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이 ‘지속 가능한 개발’ 개념과 더불어, 우리가 시급히 배워야 할 또 하나가 바로 관리 테크닉이다. 역설 같지만, 건축 선진국일수록 규제가 심하다. 처음 건축 허가를 얻기까지가 어려운데, 관료·전문가·지역 주민까지 여러 차례 심의와 공청회를 지겹도록 갖는다.

마을 게시판에는 공청회 안내문이 늘 나붙는다. 주요 사안이면 그만큼 사람이 많이 몰리고, 그렇지 않으면 쉽게 통과될 수도 있다. 사안별 자정 능력을 지닌 셈이다. 이렇게 허가가 까다로운 까닭은, 건축의 속성이 한번 지으면 수십년 이상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건축 허가가 떨어지기만 하면 일사천리다. 그 이후로는 꾸물거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선진국이 특히 까다롭게 구는 부분이 바로 문화재 관련 조항이다. 국보 및 보물급 문화재의 경우는 보통 엄격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 보스턴의 백베이 지역은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주위 간판의 색깔과 크기까지 엄격히 관리한다. 보통은 건물 단위보다 지구 단위로 보존 구역을 획정한다. 반대로 옛것을 재활용할 때는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유인책도 여러 가지 마련되어 있다.

선진국 건축의 특징 또 한 가지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처리다. 공공 비용으로 처리하는 것이 유리한지, 개인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나은지에 따라 집행이 달라진다. 지나치게 건축과 개발을 민간에 내맡긴 우리 처지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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