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향기 허브, 웰빙 바람 타고 ‘솔솔’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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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즐기는 허브 체험…‘만병통치약’ 과신 말아야
오홍근 교수(포천중문의대)는 요즘 격세지감을 느낀다. 20년 가까이 연구해온 아로마 테라피(향기 치료 요법) 때문이다. 1990년대 초, 그가 아로마 테라피를 국내에 전파할 때 의사들은 ‘사기’라며 비웃었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체의학을 배우는 의료인이 늘고 있고, 허브를 이용해 질병을 예방·치료하려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했다. 심지어 나를 비웃던 사람 중에서 대체의학 전문가인 양 행세하는 의사도 있다”라고 오교수는 말했다.

변화한 것은 의사들뿐만이 아니다. 허브 관련 농장이나 판매장에서도 엄청난 변화가 감지된다. 허브 관련 상품을 도매하는 허브다섯메의 전훈건 연구원은 “웰빙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난 가을부터 매출이 30~40% 늘었다”라고 말했다. 허브를 이용하는 업체도 훨씬 다양해졌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고깃집에서 냄새 제거용으로 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제과점·호텔·한정식집·화장품 회사 등에서 고루 이용한다. 최근 서울 신사동에는 아예 ‘아로마 오감 체험장’까지 등장했다.

다채로운 변화의 중심에 허브가 있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허브는 잎이나 줄기가 약용·향미(香味)에 이용되는 식물을 뜻한다. 지난 10여 년간 허브는 우리 일상 속으로 소리 없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오감(嗅·視·味·觸·聽)을 매료해 이제는 사람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허브를 좀더 다채롭게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사람의 피부는 진피와 표피로 이루어져 있다. 표피란 사람 몸을 보호하는 바깥 살갗을 말하는데, 이 표피의 세포가 죽으면 각질이 된다. 각질은 보통 1년에 4kg 정도 생겨나는데, 건조한 겨울철이면 특히 심하다. 그러나 허브가 있다면 걱정을 덜 수 있다. 피부를 윤기 있게 보호하는 데다 질병까지 치료하기 때문이다.

허브를 이용해 피부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욕과 마사지이다. 전문가들은 수욕(手浴)과 족욕(足浴), 좌욕(坐浴)과 반신욕을 즐기라고 권한다. 수욕은 로만 캐모마일 오일과 일랑일랑 오일을 각각 한 방울씩 떨어트리거나 몸의 증세에 따라 필요한 아로마 오일(아래 ‘증세 별로 쓰이는 아로마 오일’ 종류 참조)을 넣은 뒤 팔목 위 5cm 정도까지 10~15분간 담그면 된다. 손목을 많이 움직이는 주부나 직장인에게 특히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족욕도 효과가 크다. 38℃ 물에 소금 4g을 넣고 몸의 증세에 맞는 오일을 한두 방울 섞는다. 그런 다음 발목을 10~15분간 담그고 있으면 된다. 좌욕은 방광염·치질·부인병으로 인해 혈액이 잘 순환되지 않을 때 이용한다. 5~10분간 엉덩이를 담그고 있으면 된다. 요즘 유행하는 반신욕은 말 그대로 배꼽 아래 반신을 물속에 담그는 목욕법이다. 20~30분 하면 혈액 순환이 잘 되고 피부도 매끄러워진다.

증세 별로 쓰이는 아로마 오일 종류는 다음과 같다. 저혈압·냉증 개선/로즈마리, 심신 긴장 완화/일랑일랑·제라늄·클라리세이지·로즈워터, 상쾌·명쾌한 기분/베르가못·스위트오렌지·클라리세이지·그레이프푸르트, 목욕 뒤 숙면/로만 캐모마일·네롤리·라벤더·레몬버베나, 목욕 뒤 작업/로즈마리·페퍼민트·레몬·레몬 그라스, 꽃가루병·기침/유칼립투스+로만 캐모마일, 피로 회복·숙취/로즈마리+주니퍼 손발의 땀/사이프러스+레몬.

그 외에도 허브 비누·허브 샴푸·허브 화장품 등을 이용해 몸과 피부를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꿀 수 있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JR 주얼리 카페는 여느 카페와 조금 다르다. 우선 한쪽에 주인 신수진씨가 만든 목걸이와 반지, 액세서리가 전시되어 있다(물론 판매용이다). 또 하나 이색적인 점은 차림표이다. 열다섯 가지 허브 차 이름 뒤에 효능이 적혀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로즈마리-집중력 강화, 두통 해소. 페퍼민트-감기 예방, 소화 촉진….’ 신씨는 “2년 전 문을 열었는데 단골이 참 많다. 이제는 손님들 스스로 자기 기분에 맞추어 차를 주문한다”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와 경기도 인근에는 JR 주얼리 카페처럼 허브차를 파는 카페가 많다. 그만큼 사람의 입맛이 허브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허브 차를 마시러 굳이 카페에 갈 필요는 없다. 허브 차를 사서 가정에서 우려 먹어도 되고, 허브의 생잎이나 생가지를 잘라 우려 마실 수도 있다.
신선한 레몬타임 잎이나 로즈마리 잎, 페퍼민트 잎을 이용해 차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집에서 키우는 허브의 이파리를 따서 뜨거운 물에 넣기만 하면 된다. 물은 끓인 뒤 1,2분쯤 식힌 물(80℃)이 좋으며, 허브 이파리를 넣은 다음에 뚜껑을 닫고 3,4분 기다리는 것이 맛난 차를 만드는 비결이다.

인터넷 허브 쇼핑몰 허브가양에 따르면, 봄에 어울리는 허브 차는 민트+레몬밤+오렌지필+마리골드를 섞은 차이다. 독특한 술을 즐기는 ‘주당’이라면 허브 술을 만들어 마셔도 좋다. 과일주 담그는 법과 비슷하다. 싱싱한 로즈마리를 잘 씻어 유리병에 넣고 술을 부은 다음, 한 달쯤 지난 뒤에 마시면 된다.

고기 음식에도 각종 허브를 이용할 수 있다. 허브 전문가 조태동 박사는 “요리 재료에 따라 쓰이는 허브 종류가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쇠고기 요리에는 세이지·파슬리·민트·로즈마리·타임이 어울리고, 돼지고기 요리에는 세이지·타임·바질·로즈마리를 첨가하면 더 맛있게 조리할 수 있다. 닭고기 요리에도 비슷한 허브가 들어간다. 반면 생선 요리에는 셀러리·타임·딜·파슬리·레몬타임이 제격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 이미 허브를 사용했다. 신침(神枕)이라는 약초 베개가 그것인데, 목침에 천궁·모란·인삼·당귀·계피 등 30여 가지 약초를 넣어 질병을 예방하고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최근 국내 몇몇 기업이 생산 판매하고 있는데, 업체에 따르면 중풍이나 뇌졸중 예방에 특히 효과가 크다. 초록한의원 이철완 원장은 “후각을 통해 들어간 약재의 냄새가 정신을 자극해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허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감각은 후각이다. 향기를 빼놓고는 허브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이다. 허브가 뿜어내는 향기는 다양하다. 페퍼민트에서는 알싸한 박하향이 나고, 파인애플세이지에서는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파인애플 향이 뿜어 나온다. 반면 헬리오트롭에서는 특이하게도 초콜릿 향이 나온다.
효과도 만점이다. 깨끗한 헝겊 주머니에 말린 포푸리를 담아 철 지난 옷이 들어 있는 옷장에 넣어두면 퀴퀴한 냄새가 말끔히 가신다. 또 신침처럼 베개 안에 라벤더나 장미 포푸리를 넣어두면 숙면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아침에 가뿐하게 잠을 깨고 싶다면 감귤 향기나 자스민 향기를 맡으면 도움이 된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을 때에는 소나무나 노송의 향기를 들이마시면 효과적이다(87쪽 ‘허브의 효능’ 표 참조).

허브 향을 24시간 이용하려면 베개 속이나, 화장실·구석진 자리에 화분이나 포푸리를 놓아두면 된다. 발 냄새 나는 사람은 신발 안에 말린 로즈마리나 타임의 가루를 뿌려두면 신기할 만큼 효과를 볼 수 있다.
녹색은 자연의 색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긴장이 완화되고 혈압이 떨어진다. 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녹색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이 복잡한 색깔이나 탁한 색깔 옆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복통이 적고, 통증도 약하게 느낀다. 실제 녹색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같은 병원균에 대해 살균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색채의 원리> 김진한 지음). 문제는 아무리 좋더라도 봄이 오는 길목에서는 자연적인 녹색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허브는 바로 이맘때 필요한 식물이다. 거의 모든 허브가 파릇파릇한 녹색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관리를 잘해주면 허브는 사시사철 싱싱하다. 허브의 종류는 라벤더·레몬밤·센티드제라늄 등 3천5백여 가지. 그 가운데 국내에 소개된 품종은 5백여 종에 달한다. 허브를 이용해 시각을 편안히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 화분에 심어놓은 허브를 완상한다.

허브를 말려서 감상하는 것도 좋다. 정원이나 화분에서 잘 키운 허브를 건조시켜서 벽이나 천장에 걸어두면 집안 분위기가 일순간 변화한다. 말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통풍이 잘 되는 벽면이나 천장에 매달아 놓기만 하면 된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리스를 만들어도 좋다. 리스란 허브를 둥글게 말아서 말린 공예품. 리스를 만든 뒤 색 리본으로 장식해서 문이나 벽에 걸어두면 역시 집안 분위기가 달라진다. 리스용으로 알맞은 허브는 보리지·라벤다·로즈메리·세이지·장미 등이다.
그 외에도 허브는 이로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허브를 매개로 해서 진행되는 아로마 테라피·동종용법·약용요법은 이미 치료 범위를 확대해 가고 있다. 오홍근 교수는 “몇몇 병원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고,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장 효과가 높은 질환은 호흡기 질환. 특히 감기·독감에 잘 듣는다. 아토피성·여드름성·화농성 피부 질환에도 효과가 썩 잘 나타난다. 우울증·불안증·불면증 같은 신경정신과 질환 치료에도 자주 아로마가 이용된다. 그 외 산부인과 질환과 비뇨기과 질환·통증 클리닉에서도 아로마 테라피를 이용한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모든 사람에게 아로마나 허브의 효과가 똑같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 관련 제품이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지만 사실과 다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효과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아로마 오일은 수백 수천의 천연 화합물이 섞여 있어서 과용하면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가장 안전한 이용 방법은 전문가들이 권하는 대로 희석률 1∼3%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사용법을 숙지한 다음에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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