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테나 높이 세우고 한국 정보 수집중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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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잡지 통해 기초 정보 수집, 안 기부와도 접촉… 대선 주자 초청해 ‘우호 증진’ 꾀하기도
“이회창·김대중 씨 등 여·야 대통령 후보가 모두 야마시타 신타로(山下新太郞) 주한 일본 대사의 초청을 받아 일본대사관저를 방문했다. 한국 정치인들은 일본 대사가 만나자는 요망에 왜 쉽게 응하는가. 말로만 극일을 외칠 뿐 속으로는 전부 사대주의자들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서울시 종로구 중학동)을 취재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 소식통이 전해준 이 말 때문이었다. 일본대사관에 취재 협조를 의뢰할 때만 해도 과연 응해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협조를 의뢰하고 근 한 달이 지나서야 취재에 응하겠다는 전갈이 왔다. 그러나 일본대사관의 고위 간부인 부장 4명은 대사관의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 의견을 밝힌다는 단서 조항을 붙였다.

적지 잖은 한국인들이 주한 미국대사관과 일본대사관이 한국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또 미국이나 일본 대사관이 밀어주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도 있다고 보기도 한다. 정보 수집·분석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 한국의 언론·정보 기관을 능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긍금증을 풀기 위해 일본대사관에 대한 탐사를 시작했다. 먼저 일본 대사는 왜 한국의 대권 후보들을 접촉하는지부터 물었다.

반일 시위대 성명서까지 외무성에 보고

일본대사관 시오지리 고지로(鹽屋孝二郞) 정치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대사는 대선 주자와 단둘이 만나지 않았다. 대선 주자와 가까운 분들(같은 캠프에 있는)의 부부를 초청해 만났다. 정보를 얻기 위한 밀회가 아니라 우호를 증진하기 위한 파티였다는 말이다. 대사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각계 각층의 한국인을 만나고 있다. 우리가 대선 주자를 만났다고 해서 한국의 차기 대권 구도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究 究 九 九 九

부장 4명을 만나고 있는 도중에 한·일 어업 분규와 일본의 직선 기선 문제가 뜨거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연일 시위가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시위를 벌이는데도 일본대사관은 비자를 받으려는 한국인들로 붐볐다.

일본 방문이 곧 친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일본을 방문해 보면 반감보다는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반일’과 ‘친일(또는 지일)’은 양극단을 달리는 감정이다. 이러한 양극단의 감정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곳이 주한 일본대사관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복잡한 감정에도 아랑곳없이, 주한 일본대사관은 일본의 국익을 위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업 분규를 비롯한 현안이 많기 때문에, 일본대사관은 정보를 많이 수집해야 한다. 여느 나라 대사관과 마찬가지로 일본대사관은 신문을 통해 ‘정보 사냥’을 시작한다. 스크랩한 기사는 복사해 외교 행낭편으로 일본 외무성에 보낸다. 잡지 기사 역시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즉각 번역해 외무성으로 보낸다. 이렇게 해서 외무성과 일본대사관에 쌓이는 기사는 한국의 정세 흐름을 판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여기에 대인 접촉을 통한 정보가 보태진다. 일본 직선 기선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국 외무부 당국자와 접촉하면 자연스레 한국의 입장을 알 수가 있다. 무관일 경우 국방부 관계자와 접촉하고, 일본 경시청이 파견한 사람은 한국 경찰청 관계자를 만나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다. 일본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북한 문제가 불거지면 안기부와도 접촉해, 공조할 것은 공조하는 쪽으로 대처한다고 밝혔다. 일본대사관을 찾아오는 시위대도 중요한 정보원이다. 이때 보고자는 성명서는 물론이고 시위대가 외친 구호와 시위대를 상대했을 때 자기가 느낀 감정까지 적어 보낸다.

세계 각국은 정보 요원을 외교관으로 신분을 바꾸어 파견한다. 내각조사실은 일본을 대표하는 정보기관이다. 일본은 내각조사실 요원을 한국에 파견해 상주시키고 있을까? 이에 대해 일본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내각조사실은 해외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낸 정보가 외무성을 통해 그곳으로 가기 때문에 내각조사실 관계자는 나와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일본대사관측은 영향력 있는 한국인들과 교분을 맺기 위해 인적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는 더욱더 좋은 관계를 맺어놓는다. 그 사람의 생각과 성향을 파악하고, 자기 나라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도록 유도한다. 야마시타 대사가 한국의 대권 주자를 만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뼈 있는 말을 던진다. “여야 대권 주자들이 일본 대사를 만난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만남을 통해 일본이 한국 지도층을 접촉할 길을 넓혀 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누구에게로 대권이 넘어가든 일본의 국익을 지킬 발판을 만들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유력 정치인들은 주일 한국 대사의 초청에 쉬 응하지 않는다. 만약 주한 일본대사관이 주일 한국대사관보다 정보 수집 및 판단이 뛰어나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 대사의 초청에 쉬 응하는 한국 정치인들 때문일 것이다.”
“박대통령 시해 사건, 당일에 감지”

공개 정보와 인적 접촉을 통해 수집한 정보는 한국 정세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진다. 일본대사관의 마치다 미쓰구(町田貢) 문화원장은 23년간 한국에 근무한 한국통이다. 한국 근무 초기에 그는 부인이 연탄가스에 중독되고, 집에 도둑이 드는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1노3김이 맞붙었던 13대 대선(87년 12월)을 1년여 앞두고, 김영삼·김대중 씨의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마치다 원장은 13대 대선 전에 김대중·김영삼 씨는 절대로 단일화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야당의 생리와 지역 감정까지도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79년 10·26을 전후해 한국 정세는 매우 긴박했다. 사이토 아쓰시(齋藤篤) 영사부장도 15년간 한국에 근무한 한국통이다. 10월26일 일본대사관 정치부에 근무하고 있던 그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밤 10시쯤 귀가했다. 얼마 후 한 일본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즉시 한국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켰으나 별다른 소식이 나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부장을 비롯한 동료들과 밤새 통화하며 엄청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다음 날 새벽 4시 김성진 문공부장관이 박대통령 유고를 발표함으로써 명확해졌다. 한·미 연합 방어 체제를 형성하고 있어 이 사건을 통보받은 주한 미국대사관을 제외하고, 주재국 대통령이 시해되는 엄청난 사건을 당일에 감지한 것은 일본대사관뿐이었을 것이다.

12·12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일본대사관은 민첩하게 움직였다. 당시 사이토씨는 남산의 외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그는 집에서 가까운 한남동 육군총장 공관 일대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사이토씨는 “북한과 전쟁이 일어났는 줄 알고 매우 두려웠다. 그날 심야에 대사관에 출근해 보니 탱크들이 중앙청 남쪽을 향해 도열해 있어 전쟁이 아니라내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내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일본대사관은 무관에게 성북동에 있는 대사관저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나가 보라고 했다. 무관은 차를 몰고 몇 개의 바리케이트를 통과해 청와대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12·12 사건은 국방부와 육군본부, 그리고 미 8군의 지하 벙커를 무대로 한 만큼 미국은 조기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대사관은 인적 정보망만으로 이 사건의 윤곽을 초기에 알아챘다.

80년 5월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격화했다. 5월17일 비상 계엄이 강화되고 다음 날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바빴던 것은 부산 주재 일본총영사관이었다. 총영사관 관계자들은 광주·전남 지역에 있는 일본인을 구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적지 잖은 정보가 수집되었다. 여기에 주한 일본 특파원들이 광주에서 취재한 내용을 더해 비교적 정확한 보고서를 본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DJP 단일화될지 안 될지 안다”

일본대사관측은 오는 연말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여야 후보가 확정된 이상 대선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김대중·김종필 씨 간의 후보 단일화일 것이다. 일본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DJP 단일화 문제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 밝힐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23일 유엔 환경특별총회에 참석하러 뉴욕을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은 하시모토 일본 총리와 20여 분간 정상회담을 했다. 다음날 국내 각 언론은 반기문 외교안보수석의 발언을 이용해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세계식량계획(WFP) 등을 통한 간접 지원 방식으로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타진해 왔다’며 일본의 식량 지원이 재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반기문 수석의 발언을 인용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오보가 되어 버렸다.

이 보도가 사실이려면 일본 신문에도 같은 내용이 보도되어야 하는데, 그런 보도가 없었다. 현재까지 일본이 북한에 대해 식량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같은 보도가 오보였음을 증명한다. 6월24일자 보도를 꼼꼼히 읽어본 독자라면 ‘일본은 한국 정부의 동의가 있으면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재개할 수도 있다’고 한 대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대사관측은 ‘대북 지원에 대해 한·미·일이 긴밀히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는 했어도 ‘한국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대북 식량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외교전 승리 위해 정보 수집 열중

다수의 일본 국민은 북한 화물선 지성2호의 마약 밀수출 사건, 북송 일본인 처 일본 방문 문제, 일본인 소녀 납치 문제 때문에,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감정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에 책임을 전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일본대사관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제 무대에서 북한은 한국의 반대로 일본이 식량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를 토대로 보면 반기문 수석의 뉴스 브리핑은 ‘한국은 반대한 적이 없으니 일본이 결정한 것은 일본이 책임지라’는 고도의 언론 이용하기였던 셈이다.

이처럼 미묘한 뉘앙스를 두고 아전인수로 해석해 가며 싸우는 것이 외교전이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와 판단이 필수이다. 확실히 주한 일본대사관은 뛰어난 정보 수집과 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반일 감정이 드높은 나라에서 일본대사관은 이처럼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인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의 친일을 비판하기에 앞서, 일반적인 한국인의 가슴 속에 자리잡은 일본에 대한 피해 의식과 열등감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소리치는 극일보다 냉정히 따지고 판단하는 극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일본대사관의 모습이 바로 그런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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