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프린스호가 두 동강 날 뻔한 사연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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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부터 빼내 최악의 오염 막아… 예인 먼저 했으면 선체 두동강 나 ‘기름 바다’ 될 수도

그와 동시에 암초에 걸려 가라앉은 유조선을 띄워 끌고가 원유를 이적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국제적인 해상 구난 전문 회사인 일본의 니폰샐비지사가 이 일을 맡았다. 이 회사는 구난에 성공할 경우는 보수를 받고 실패할 경우는 받지 않는다는 국제적인 관례에 따라 호유해운과 계약을 맺고 각종 설비와 인원을 들여왔다. 좌초된 시프린스호의 기름 탱크에는 원유와 바닷물이 차 있었는데, 여기에 공기를 불어넣어 배를 띄운다는 구상이었다. 그 다음에 대기한 호유다이아몬드호로 예인해 원유를 옮겨 싣겠다는 계획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전문가에게까지 그랬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사람들의 관심사가 시프린스호 부양 계획보다는 이미 유출한 벙커C유에 주로 집중돼 있을 때, 이 부양 계획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 한국기계연구원 선박·해양공학연구센터 강창구 박사. 그는 이 연구소 선박성능부의 연구부장으로, 각종 선박 사고와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니폰샐비지사가 기술적인 검토를 충분히 하고서 원유를 실은 채 유조선을 부양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는지 의아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해상 오염 사고가 생기면 배에서 위험한 물질부터 제거하고 보는 선진국의 관례에 비춰 봐도 그 계획이 약간 이상해 보였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선체 부러졌다면 해양 오염 ‘신기록’

당시 이 배는 원유를 8만3천t 가량 싣고 있었다. 좌초 당시 유출된 천t 정도의 시프린스호 연료유(벙커C유)와는 비교도 안되는 양이었다. 만일 실수로 유조선이 잘못돼 원유가 흘러나온다면? 생각하기조차 끔찍하지만, 좌초 당시 유출된 양의 약 백배에 해당하는 원유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최근 최대의 유조선 사고로 기록된 알래스카의 엑손사 발데즈호 기록을 깨뜨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89년 이 유조선이 좌초했을 때 원유 4만2천t이 유출되었는데, 재산 피해도 한화로 조 단위로 추정됐다. 시프린스호의 경우 실수가 아니더라도 배를 띄우는 과정에서 파도 때문에 잘못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강박사는 호유해운에 좌초된 유조선과 관련된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관련 자료를 입수한 것은 사고 발생일로부터 1주일 뒤였다. 연구소의 팀원들과 함께 자료를 검토한 결과 그는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조선은 좌초된 상태에서조차 선체 중앙 부분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만일 유조선을 해상으로 인양할 경우 배가 부러질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그림 참조). 설령 유조선이 부러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양할 때 공기압을 잘못 조절하면 파손된 부위나 갑판으로 원유가 터져나올 가능성이 컸다. 어떤 상황에서도 유조선은 침몰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도 원유를 그대로 둔 채 배를 띄워 끌고 가겠다는 일본 회사의 계획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박사와 연구팀은 호유해운측에 방법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먼저 시프린스호에서 원유를 뺀 후에 이 배를 띄우자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이 팀은 무턱대고 원유를 이적할 것이 아니라 주도면밀하게 계산해서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호유해운측에 알렸다.
연구팀이 아무런 반대 급부 없이 받아들인 두 번째 도전은, 어떤 방법으로 원유를 빼낼 것인가였다. 결론은, 가능하면 좌초된 선체에 충격을 주지 않는 상태에서 원유 이적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유 일부를 빼내게 되면 배의 일부가 대책 없이 뜨게 되고, 이 때 파도로 인해 더 큰 손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러질 염려가 있는 선체 중앙 부분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선미 부분의 원유를 가장 먼저 이적하되, 원유를 빼낸 만큼 바닷물을 집어넣어 충격을 덜자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손상이 심한 부분부터 원유를 빼내는 것도 그들이 만든 제안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었다. 호유해운은 니폰샐비지사·보험회사·선급사 등과 논란을 벌인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1유일호, 섣불리 끌고 가다 침몰

현재 시프린스호 원유 이적 작업은 끝난 상태다. 소규모 선박 수십 척이 시프린스호 주변에서 2주간 작업한 결과였다. 시프린스호 구난 작업을 총지휘한 니폰샐비지사는 계약 기간이 끝난 데다가 태풍이 올라올 우려가 있어 이 배를 띄우기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이미 완전 철수하고 말았다. 이로써 사상 유례 없는 기름 오염사고를 맞을 뻔한 고비는 넘겼다.

그러나 여전히 2차 오염 사고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시프린스호를 해체하기 위해 예인하는 과정에서 손상을 입거나 침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프린스호에 있던 원유는 대부분 이적됐지만, 아직도 원유 일부가 탱크에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그 양을 유조선 좌초 당시 유출된 양의 절반 정도인 5백t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좌초된 시프린스호를 인양할 경우에도 충분한 기술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이 유조선을 소리도 앞바다 현지에서 해체할 경우는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으나 관련 회사들은 이를 꺼리고 있다. 잠수부를 비롯한 전문가들을 동원해야 하는 까닭에 해체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시프린스호 해체 작업에는 국내외에서 8개 회사가 입찰한 상태이고, 아직 해체 작업을 진행할 회사는 결정되지 않았다. 국내 회사로는 러시아 잠수함 해체 작업으로 유명해진 영유통이 입찰에 참여했다.
시프린스호 좌초 사고 뒤처리 과정에서 일어날 뻔했던 일은 정확히 두달 후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9월21일 부산 사하구 다대동 남형제도 앞바다에서 벙커C유 3천t을 싣고 가던 제1유일호가 침몰했다. 이 배는 침몰 사고가 발생하기 6시간 전 암초에 부딪쳐 좌초했다. 좌초 사고가 나자마자 이 유조선을 암초에서 끌어내려 예인해 가다가 기관실을 통해 물이 들어와 침몰한 것이다. 이 배가 침몰한 지역은 수심이 깊어 방제작업에 곤란을 겪고 있어 대규모 기름 오염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선박·해양공학연구센터 강박사는 “시프린스호 사고 수습 과정을 참고해, 좌초한 유일호를 끌고가기 전에 먼저 이 배에 있는 벙커C유를 제거했더라면 해상 오염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시프린스호 사고가 뒤처리를 잘해 2차 대형 사고를 막은 사례라면, 유일호 사고는 뒤처리를 잘못해 작은 사고를 대형 재해로 만든 예라는 것이다. 그는 유일호 좌초 사고 직후 해상 오염 방제 노하우를 갖고 있는 기관에 기술적인 자문을 요청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모든 해상 오염 방제기술과 장비가 동원돼 즉각 활용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현실을 개탄한다(64쪽 기사 참조).

1년에 2백여 건에 달하는 선박 기름 유출사고. 유조선 사고는 이 가운데 9%에 불과하나, 이들 선박은 석유 전용선이기 때문에 일단 사고가 났다 하면 대규모 기름 오염 사고로 비화한다. 더욱이 현재와 같은 부실한 연안 관리 체제에서 유조선 사고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까지 있다. 잇달아 일어난 유조선 사고 두 건은 주먹구구식 뒤처리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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