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자민련 총재 “정치인은 색깔 분명히 해야”
  • 徐明淑 정치부 차장대우 ()
  • 승인 1995.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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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을 털고 나온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두 번째 국회 대표 연설을 둘러싸고 정가의 반응이 크게 엇갈린다. 그 반응은 ‘역시 연설은 JP를 따를 사람이 없다. 경륜만큼은 대단하다’는 감탄에서부터, ‘한일회담 당사자로서 일본측의 망언을 앞장서서 규탄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병상 정치, 색깔론 시비 등으로 끊임없이 화제를 던져온 김총재를 만나 국회 연설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많은 사람이 궁금해 했던 열이틀 간의 병가에 대해 설명해 주시지요.

의사 네 사람이 종합 진단한 결과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로 한쪽 어깨의 근육과 신경이 뒤틀렸다고 해요. 별다른 방법이 없고 쉬면 낫는다고 해서 물리 치료와 마사지를 받으면서 그저 기다린 거요. 지금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그동안 김총재의 병명과 건강이 나빠진 경위를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보도진까지 피하는 바람에 의혹이 더 커진 것 아닙니까.

저도 다 듣고 있었어요. 기자들이 이야기합디다. 저 바위산 밑에 있는 사람들(청와대를 지칭하는 듯)이 암이다,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됐다, 별 이야기를 다 퍼뜨리고 있다고요. 어떤 높은 사람은 ‘그 사람 다 됐다’면서 축배까지 들었다는데… 남이 아프면 동정하고 쾌유를 비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사람이 아플 때는 옆에 스치는 바람도 고통스러운 겁니다. 털고 나오면 자연스레 다 증명되는 일인데, 뭘 미리 확인합니까.

〈시사저널〉 창간 6주년 기념 여론조사에서 김총재의 영향력은 지난해에 비해 매우 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보십니까?

꼴찌만 아니면 돼요(웃음). 저항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 근대사를 엮어 나가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겐 어딘가 힘 있는 곳을 공격하거나 저항하는 데 동조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여당에 몸 담고 있을 때는 어떻게 자기 집안을 탓하겠어요. 또 할 이야기도 모두 안에서 하니까 밖에서는 잘 모르지요. 지금은 공격과 비판이 바깥에 직접 전달되는 처지니까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그래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싶은데….

국회 대표 연설 서두에서 일본 지도층의 망언을 맹공격했습니다. 그 내용에는 공감하면서도, 65년 한일협정을 주도한 김총재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엄청난 혼동이 있어요. 지금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는 건 1910년의 한일합방이지 1965년의 한일협정이 아니요. 1965년에도 논쟁 끝에 기본적으로 을사조약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이 문제를 정리했어요. 군사력을 앞세운 1910년의 조약이 극히 정상적인 상태에서 맺어졌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점을 항의한 거에요. 또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일은, 저는 65년 회담에 전반적으로 간여하지는 않았어요. 딱 한 가지, 청구권 협상에만 간여했어요.

청구권 문제와 관련된 김·오히라 협상이 한·일 관계를 불완전하게 정리한 한 계기였다는 비판이 있지 않습니까.

5·16 혁명 직후에 경제 건설을 서둘러야 했는데 재원이 어디 있습니까. 부존 자원이 있습니까, 저축이 있습니까. 1951년 이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10년째 계속됐지만, 청구권 액수가 걸림돌이 돼서 한 발짝도 진전하지 못했어요. 62년 박대통령의 지령을 받고 동경으로 날아가 오히라 외무장관을 만났더니, 그쪽에서 8천만달러 선을 제시해요. 제가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 차관 1억달러 플러스 알파를 `‘움직일 수 없는 선’이라며 제시했더니 그쪽에선 펄쩍 뛰어요. 두 사람이 정치 생명을 걸고 이 액수 그대로 합의했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급히 메모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그것이 김·오히라 메모의 전부이고, 나중에 대표단에 넘겨서 추인받았습니다. 당시 일본의 외환 총 보유고가 14억달러였는데, 그걸 감안하면 대단한 액수였지요. 경제 발전의 전기를 그때 마련한 건데,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 욕을 먹고 있어요.

이번 연설에서 내각책임제 개헌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역설했는데, 과연 15대 대통령 선거 이전에 권력 구조 변경이 가능하리라고 보십니까?

거의, 거의 그렇게 되리라고 보진 않아요. 김대통령을 비롯해서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쉽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권력자에게 4천5백만이 매달리는 대통령중심제에는 이제 분명히 한계가 왔다고 봅니다. 얼마전 한 신문사가 발표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까, 아직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내각책임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국민 47%가 지지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요. 정치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랄까 수준이 상당히 높아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가까운 장래에 그런 제도로 바뀔 것으로 믿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우리 당이 꾸준히 노력하겠다는 겁니다.

내각제 연대 가능성이 거론되던 김대중 총재의 생각은 어떤 것 같습니까?

김대중씨도 중간에 상당히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결국은 대통령책임제로 바뀐 것 같아요. 언론이 자꾸 교감설이다 뭐다 하는데, 그런 문제에 대해 서로 논의한 바도 없고 교감을 확인한 일도 없어요.

다음 대통령 선거 이전에 권력 구조 변화가 불가능하다면, 김총재 본인이 15대 대선에 출마하실 생각입니까?

우리는 정당입니다. 정권을 획득해서 자기네들의 가치관에 입각한 정강 정책으로 나라를 이끌고 기여하는 것이 정당의 목적 아닙니까. 내후년에는 현행 헌법대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렇게 되면 정당 차원에서 대응해 나가는 거지요. 누가 후보로 나가느냐는 그때 가서 결정할 문제이고…. 성질 급한 어떤 사람은 지금부터 후계 어쩌고 하면서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는데,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단계가 아닙니다.

서울시장 선거 때처럼 다른 당과 연대하거나, 가능성 높은 다른 후보를 밀 생각은 없습니까?

그런 일은 상정할 수가 없지요. 그때 가면 정당들이 각기 후보를 내놓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할 겁니다. 그래야 마땅한 일이지요.

지난번에 이어 이번 국회 연설에서도 김대통령의 독단적인 정국 운영을 맹렬히 공격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이 그렇다는 말입니까?

예를 몇 가지만 들까요. 가령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북한과 교류하기 위해 2천억원 기금이 필요하기에, 저도 흔쾌히 동의했어요. 그러나 이 기금으로 북쪽에 쌀을 지원하는 문제는 대통령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국회에 한번쯤 의견을 물어봤어야 해요. 국회는 그렇게 영위돼야 하는 곳이지, 대통령이나 행정부의 편의 수단이나 액세서리가 아닙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더라면, 극빈 속에서 배고픔을 경험해본 우리 국민 중에 남은 쌀을 북한 동포에게 주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겝니다. 게다가 쌀이 모자라면 수입해서라도 주겠다니,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런 예가 한둘이 아니에요.
김대통령을 곁에서 보좌할 때는 그런 독단적인 측면을 느끼지 못했습니까?

왜 못 느낍니까. 제가 거기(민자당)를 떠난 것도 뭐 폐기물 취급을 당해서만은 아니에요. 더 이상은 같이할 수 없겠구나, 이게 한계다 판단하고 나온 거요. 이 나라는 대통령을 잘못 뽑아 놓으면 큰 불행을 재촉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라는 걸 깊이 절감했어요. 나가서 더 이상 잘못하지 않도록 대통령을 견제하고 내일을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지금은 제가 막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좀 조심하라고요. 역사 공부를 좀 하라고요. 제발 이 나라 역사를 토막 내지 말라고요.

안에서 비판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을 텐데, 왜 함께 계실 때는 그런 비판론을 개진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2년 남짓 민자당 대표를 했어요. 그동안 기자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김대통령과 대표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는 밖에 나와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아무도 모르지요. 예나 지금이나 당에서는 별로 이야기를 안하면서 기자들에게만 쏟아놓는 비정상적인 짓을 하는 정치인들이 있는데, 그거 잘하는 일이라고 보지 않아요. 그런 생활 철학 때문에 제가 아무 이야기도 안한 것으로 알지만, 대통령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왔어요. 그 가운데는 반대도, 찬성도,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홍곡의 대지를 연작이 어찌 알리요’라는 발언은 많은 사람이 받아들였듯이 대통령의 위광을 최대한 존중하는 의전적인 발언이 아니라, 혹 무소불위의 권력을 풍자한 비유적 표현이었습니까?

글쎄, 마음대로 해석하세요(웃음). 그러나 저는 지금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권위에 대해서는 존중합니다.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것과 나라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달라요. 그건 구분해야 합니다. 가령 대통령이 외국 방문에서 돌아와 이야기하자고 할 때, 저는 지체없이 들어갑니다.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설명을 들어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 도리를 차려야지요.

다시 국회 연설로 돌아가지요. 12·12와 5·18 문제를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12·12는 사실상 ‘성공한 쿠데타’인 5·16에서 역사적인 암시를 받은, 5·16의 사생아 아닙니까?

그런 인식도 있을 수 있겠지요. 어떤 해석을 하건 그건 자유라고 봅니다. 그러나 5·16은 이미 30년이 넘은 일입니다. 12· 12는 아직 시한이 남아 있다고 해서 문제 삼는 것 아닙니까. 근본적으로 역사는 권력이 마음대로 규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김대통령은 12·12를 ‘하극상적 쿠데타’로 규정하면서, 용서하자고 했어요. 5·18에 대해서도 같은 해석을 하면서 처벌은 말자고 했어요. 모순이 있지 않습니까. 잘못된 게 있으면 법대로 하는 게 법치 국가이므로 법대로 처리하라, 법대로 한다면 그 최종 심판은 사법부가 하는 게 옳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입장을 개진한 겁니다.

제가 여쭤본 것은 5·16이 하극상적 쿠데타라는 본질에서 12·12와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르지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거사한 목적은 12·12처럼 정권을 잡는 게 아니라, 나라 발전에 한 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었어요. 거기에서 아주 죽자고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그 계기를 만들어 놓고도 뒷수습이 안돼서 실패로 끝나는 혁명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기까지 불가피하게 그 기간을 연장했지만, 출발부터 12·12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거기에다 결부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번 보수의 원조임을 강조하셨는데, 김총재께선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만 파악하시는 것 같습니다.

원래 보수·진보라는 개념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분할되고 해석되고 논쟁되면서 많은 기복을 겪어온 이상 그런 측면이 없을 수 없지요. 다만 제가 새삼스럽게 문제 제기를 하는 이유는, 정당이 정직성과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당이나 정치인은 국민에게 있는 대로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위장 보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있지요. 보수라는 이야기를 절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입장일 텐데,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겁니다. 진보주의로 일관해온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난 보수주의자라고 하면 누가 그대로 받아들이고 신뢰하겠어요.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입니다. 제가 지적하기 전에 벌써 국민들이 다 알아요. 저도 그림을 좀 그립니다만, 정치인들이 갖는 색깔은 비교적 원색이 좋아요. 흰색이면 흰색이지, 거기에 다른 색을 타서 무슨 색인지 모르게 흐려놓으면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당황합니다.

대기업 지원을 중단하고 중소기업 육성책을 펴라는 주장을 하셨는데, 대기업에 정작 특혜를 준 정권은 김총재가 군림했던 3공화국 아니었습니까.

대단히 비틀린 질문만 하는데요(웃음). 누가 해놓았다, 안했다 문제를 떠나서 대기업이 오늘날 우리 경제를 이렇게 만드는 데 주도 역할을 한 사실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기업은 이제 놓아 두어도 국제 경쟁력이 있어요. 정부가 대기업에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신경을 쓰려면 중소기업에 쓰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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