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공포의 무단 침입자 외래 병 · 해충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5.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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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농산물에 묻어 속속 국내 상륙, 작물·꽃 마구 해쳐…대부분 방제약 없어 속수무책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에서 꽃을 재배해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는 박찬우씨가 애써 가꾼 장미꽃밭 6백여 평을 갈아엎은 것은 지난 6월 초순이었다. 보도 듣도 못한 생물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3년째 장미와 백합을 해외에 수출해 짭짤한 재미를 보던 박씨는, 올해 꽃농사도 아무 탈 없으려니 생각하고 정성들여 가꾸었다. 그러다 지난 5월 하순 수확을 앞둔 장미꽃이 온통 훼손된 것을 발견했다. 육안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었고, 온갖 방제약을 써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우연히 꽃잎 속을 뒤져본 박씨는 그제서야 꽃농사를 망친 주범이 미세한 먼지처럼 달라붙어 있는 벌레임을 알았다. 국내 곤충도감을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없는 괴생물체였다.

박씨는 경기도 농촌진흥원에 신고했다. 현장을 방문한 지도사는 이 괴생물체가 수입 해충인 꽃노랑총채벌레라고 일러주었다. 국내에는 방제약이 아직 없다면서, 피해 상태가 심해 구제가 불가능하다고 판정했다. 결국 박씨는 그 날로 꽃밭을 갈아엎었다. 애쓴 보람도 없이 봄농사 예정 수입 1천5백만원이 날아갔다.

“외국에서 들어온 해충이기에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노지에 심은 백합에도 이 벌레들이 번져나가 피해가 늘고 있는데 국내에는 방제약조차 없다니 걱정이 태산이다.”
무서운 기세로 전국에 확산

박씨의 꽃밭을 망친 꽃노랑총채벌레는 전국 각지로 확산된 상태이다. 93년 제주도에 상륙한 지 2년 만에 이처럼 기세를 뻗친 이 해충은 북미 대륙이 원산지이다. 우리나라에는 93년 12월 일본에서 수입된 묘목에 묻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 시설 하우스를 중심으로 번지던 이 해충은 그동안 한국 기후에 적응해 노지 작물로도 급속히 번지고 있다. 피해 작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감귤·상추·오이·국화·장미·거베라 등 야채·과일·꽃 2백여 종을 닥치는 대로 해치우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속수무책이다. 국내 토착 해충이 각종 약재로 약해진 틈을 타 독불장군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데다 특별한 구제 약품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꽃노랑총채벌레와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상륙한 또 다른 해충 두 가지도 빠르게 확산되면서 식물 방역 당국과 농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대만·홍콩·필리핀 등 열대 지방에 주로 분포되어 있던 오이총채벌레와 북미·유럽에 뿌리를 둔 아메리카잎굴파리가 그것이다.

오이총채벌레는 93년 11월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수입 묘목에 묻어와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제주 감귤 농가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고 이제 육지마저 휩쓸려는 단계이다. 경남 진주 의령 고성 사천 마산 밀양 합천 창녕 김해를 거친 이 해충은 경북 달성과 경주 쪽으로 북상했다. 오이총채벌레는 오이 호박 수박 고추 가지 감자 감귤 등 농작물에 붙어 즙액을 빨아댐으로써 작물을 고사시키는 무서운 해충이다. 역시 방재약이 없어 속수무책이다. 오이총채벌레의 피해와 관련해 제주감귤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93년에 처음 발생할 때는 국지적으로 피해를 줬지만 올해는 전지역에 퍼져 도내 총 3백32㏊의 감귤밭 중 90% 이상이 해를 입고 있다. 과실이 기형이 되기 때문에 출하하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래 해충 아메리카잎굴파리는 미국이 주요 서식처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월 광주광역시 광산구 화훼단지에서 처음 확인됐다. 국립식물검역소측은 유럽에서 거베라 모종을 수입할 때 묻어 들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이 해충은 발생 1년여 만에 전남 화순 나주 장성 순천을 거쳐 최근에는 경남 거제와 제주도까지 확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화 토마토 쑥갓 당근 가지 배추 등 19종에 기생하는 아메리카잎굴파리는 애벌레가 잎에 굴을 뚫고 서식하므로 작물의 생육을 가로막고 심한 경우 고사시킨다. 전남 영암에서 시설 원예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다 아메리카잎굴파리에 피해를 당한 우종수씨(51)는 “살충제를 하루에 세 차례씩 살포하지만 금세 다시 번진다. 천평에 방울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는데 올해는 수확량이 훨씬 줄어들게 생겼다”며 울상을 짓는다.
남북회담 테이블까지 오른 벼물바구미

이들 세 해충은 가장 최근에 외국에서 유입된 것들로서 지금까지는 주로 시설 하우스 작물에 해를 입혔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한국 환경에 적응해 노지 재배 작물로 번져나감으로써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 우건석 교수는 “지난 겨울 제주도를 답사한 결과 외래 총채벌레들이 성충으로 노지 월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경제적 피해는 이제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한다.

이처럼 어느날 갑자기 한국에 상륙해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져나가는 외래 해충은 대비책 없이 진행된 농산물 수입 자유화의 산물이다. 일단 상륙에 성공한 외래 해충은 원산지에서는 천적에 잡아 먹혀 큰 문제가 안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그들을 억제하는 요인이 없어 피해가 막대하다. 이미 한국을 휩쓸고 북한 지역까지 진출한 벼물바구미가 대표적 사례이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가 원산지인 벼물바구미는 88년 경남 하동에서 처음 발견됐다. 식물 검역 당국은 목재 수입 과정에서 유충이 묻어 들어온 것으로 추정했다. 이 해충은 지금도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는데, 지난해까지 정부가 지출한 방제 비용만도 약 2백30억원에 달한다.
막대한 해를 입고 나서야 뒤늦게 방제 약재 개발을 서둘러 지금은 차츰 피해 규모가 줄어들고 있지만 정작 문제는 엉뚱한 곳으로 번졌다. 89년께 벼물바구미가 휴전선을 넘은 것이다. 이 해충은 순식간에 북한 전역으로 번졌다. 난데없이 출현한 괴해충에 당황한 북한 당국은 90년 남북고위급회담 때 서울을 방문한 연형묵 총리를 통해 우리측에 방제 지원을 요청했다. 만찬석상에서 연총리가 공식으로 이 문제를 끄집어낸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남북 간에 사인이 맞지 않았다. 당시 연형묵 총리는 “우리 농사가 물코끼리 때문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며 도와달라고 요청했는데 우리측은 그 뜻을 몰랐다. 우리가 ‘벼물바구미’라고 부르는 해충을 북한은 ‘물코끼리’라고 불렀던 것이다. 벼물바구미가 코끼리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농촌진흥청 이정운 곤충과장은 “우리는 물코끼리가 벼물바구미인 줄 나중에야 알았다. 현재 북한이 식량난을 겪는 한 원인도 바로 벼물바구미 피해인 것으로 안다. 경협이 활성화하면 우리측이 인도적 견지에서 방제약을 지원해줘야 하리라 본다”고 밝힌다.

국내에 침투해 피해를 주는 외래 해충이 농작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산림과 가로수도 외래 해충으로 인해 큰 몸살을 앓고 있다. 70년대 말부터 남부 지방에서 시작해 소나무숲을 사라지게 해온 솔잎혹파리는 현재 강원도 설악산을 거쳐 금강산 쪽으로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소나무숲 21만2천㏊에 발생한 솔잎혹파리 방제 비용은 올해에만 3백15억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소나무재선충이라는 신종 해충이 국내에 상륙해 산림 방제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소나무재선충은 일본 전역의 소나무를 사실상 멸종시키다시피 한 무서운 해충으로 국내에는 88년 부산 금정산에 상륙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나무재선충은 일단 소나무에 침입하면 100% 나무를 죽이는 무서운 해충이라 해서 ‘소나무 에이즈’로 불린다. 산림청은 솔잎혹파리 피해가 극심한 상황에 더 무서운 재선충마저 퍼지면 사실상 국내 소나무는 멸종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 해충이 부산 금정산을 벗어나지 않도록 초기 감염 단계의 소나무들을 잘라내 모두 태우고 있다.

최상의 대책은 검역체제 개선

나무를 못쓰게 만드는 외래 해충 가운데는 도시 가로수와 공원에 심어진 관상수에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종류도 있다. 58년 용산 미군부대 주변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미국흰불나방이 대표적인 예이다(53쪽 상자 기사 참조). 미국흰불나방은 주한미군 물자를 통해 들어온 뒤 산림을 제외한 전국의 도시 가로수에 퍼져 막대한 해를 입히고 있다.

최근 들어 도시 가로수에 나타난 새로운 특징은 유래를 알 수 없는 괴해충 피해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인천을 중심으로 서울 지역까지 은행나무 가로수에 주머니나방이 나타나 해를 입혔다. 당시 시민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이 이 벌레를 외래 해충으로 추정했으나 아직까지 정확하게 입증되지는 않고 있다.
이같은 특이한 해충은 올해에도 또 발생했다. 서울과 경기도내 도시 지역에 갑자기 나타나 가로수(플라타너스) 잎을 노랗게 만드는 괴해충이 그것이다. 산림청측은 이 해충을 방패벌레라고 이름지은 뒤 유입 경로를 추적중이라고 한다. 임업연구원 이범영 산림곤충과장은 “방패벌레는 국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어 외래 해충일 가능성이 높다. 요 몇년간 도시 가로수에 이런 돌발 해충이 급격히 늘어 그 원인 규명과 방제 대책 마련에 애를 먹고 있다”고 밝힌다.

검역의 중요성을 도외시한 채 진행된 무분별한 수입 바람은 익충을 죽이는 해충까지 들여왔다. 국내 토종벌과 양봉을 떼죽음으로 내몬 중국가시응애가 그런 예에 속한다. 중국가시응애는 꿀벌의 몸체와 애벌레에 기생해 양분을 빨아먹어 죽게 만드는 해충이다. 92년 중국산 벌을 수입할 때 묻어 들어온 이 해충으로 인해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국내 양봉의 약 50%가 폐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가시응애 유입 사실과 피해 실태를 맨 처음 조사 발표했던 서울대학교 우건석 교수는 “중국가시응애 피해가 심각해지자 일부 양봉업자들은 벌집을 태워버리는 일까지 생겼다. 또 방제약을 많이 쓰게 돼 결국 농약 성분이 꿀에까지 축적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우려한다.

이처럼 갈수록 외래 해충들이 해를 입히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이를 막아내야 할 검역 행정은 유입 해충을 뒤따라가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현재 외래 병·해충 침입 방지 임무를 맡고 있는 기관은 농림수산부 산하 국립식물검역소이다(54쪽 기사 참조). 최근에 들어온 해충들 가운데는 사실상 수입·통관 과정을 거친 식물(곡물·과일·야채·종자·묘목·목재)에 묻어 들어온 경우가 많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검역 전선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반증이다.

이런 허술한 검역 행정은 지난 3월30일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식품부조리실태와 방지대책’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보고서는 ‘93년 수입 식품류 검사 실적 9만8천건 중 30%만 검사 장비를 거쳐 통과하고 나머지는 서류 검사로 대체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수입 식품류 통관 합격률은 일본의 27배, 영국의 34배, 미국의 53배나 된다. 또 이 과정에서 1백20종의 외래 병·해충이 수입 식품에 묻어 들어와 국내 농가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외래 해충 피해 실태가 보여주듯이 한순간의 방심을 틈타 들어온 외래 해충은 일단 상륙하면 가공할 경제·환경 피해를 가져다 준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출범한 후에는 통관 간소화와 검역 규제 완화가 국가 간의 주된 이슈로 등장했다. 따라서 검역 행정이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한다면 한국은 갈수록 외래 해충의 좋은 표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래 해충과의 전쟁’ 선포는 지금도 때늦은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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