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차라리 김 실을 국회로 보내?
  • 강석진(서울대 교수) ()
  • 승인 1996.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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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야구 시즌이 개막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타격 선두를 달리는 선수는 쌍방울의 김 실(5월13일 현재)이다. 지난해 삼성에서 방출된 뒤 연봉이 절반으로 깎이는 수모를 감수하면서 겨우 쌍방울에 입단한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활약이 아닐 수 없다. 쌍방울은 김 실의 맹활약을 발판으로 현대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김 실을 방출한 삼성으로서는 땅을 칠 노릇이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도 없다.

지금 LG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대화 선수 또한 처음 입단한 OB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해태로 이적한 이후 가공할 타력을 보여주어 해태가 여섯 번이나 한국 시리즈를 제패하는 데 크게 공헌했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여자 탁구 선수 헤지리는 일본 대표 선수로 활동하면서 자기를 내버린 중국 선수들을 만날 때마다 일본식으로 기합을 넣으며 투지를 불태운다. 세계 최강 중국도 자기가 키우다 버린 `새끼 호랑이가 ‘슈퍼 호랑이’로 자라서 덤벼드는 데야 당할 재간이 없다. 그리고 이런 인생 유전이 바로 스포츠 세계의 묘미이기도 하다.

지난 4월11일 우리나라는 ‘제15회 정치 올림픽’을 치렀다. 이 대회의 결과는 신한국당 1백39석, 국민회의 79석, 자민련 50석, 민주당 15석, 무소속 16석으로 나왔다. 항상 틀리면서도 무슨 도사인 척하는 정치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신한국당 선전, 국민회의 패배, 자민련 현상 유지, 민주당 몰락, 무소속 득세란다. 그런데 각 정당의 해석은 제멋대로다. 신한국당은 과반수에 미달하여 여소야대 구도가 되기는 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수도권에서 선전하여 제1당이 되었으니 승리한 것이라고 희희낙락이다.

마치 축구 경기에서 스코어는 4 대 3으로 졌어도 우리가 넣은 세 골은 한 선수가 모두 넣은 것이고 저쪽은 4 명이 한 골씩 같이 넣은 것이니 우리가 이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국민회의는 54석에서 출발하여 79석으로 늘었는데 패배가 웬말이냐고 항변한다. 지난번 경기는 1백47 대 54였는데 이번엔 1백39 대 79니까 이번 경기는 이긴 것이라는 얘기인가.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우선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인사들이 대거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21세기 통일 시대 대비’ 등 입당의 변은 화려하지만 그들 중 다수는 ‘썩은 정당엔 죽어도 안들어가겠다’거나 ‘나를 버린 정당엔 당선돼도 안들어간다’고 다짐했던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근 한 달 동안 눈만 뜨면 신한국당을 비난하는 것이 일이던 민주당의 대변인이 신한국당으로 옮겨갔다. 경기 전부터 상대방 구단주를 만났느니, 단장을 만났느니 하며 담합 의심을 받던 인사도 신한국당으로 갔다.

김 실 선수라면 삼성에서 다시 돌아오라고 유혹한다고 해서 그렇게 쪼르르 달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메달 획득 가능성이 없다고 버릴 때는 언제고 금메달을 땄다고 다시 손짓하는 신한국당이나, 오기와 자존심도 없는지 자기를 내버린 당으로 다시 들어가는 당선자나 치사하기는 매한가지다.

선수끼리 담합해 스코어 뒤집다니

진짜로 웃기는 것은 이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른 뒤에는 경기 결과마저 변한다는 것이다. 운동 선수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팀을 옮기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까 프로 정치 선수들이 당을 옮기는 것 또한 탓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김 실이 거액을 받고 다시 삼성으로 간다고 해도 그가 쌍방울에서 친 안타와 타점이 삼성으로 옮겨가지는 않는다. 아디다스컵 결승전에서 투지 넘치는 결승골을 기록한 유공의 윤정춘이 우승을 놓고 다투던 포항으로 이적한다고 해도 그가 넣은 골까지 따라가서 스코어가 뒤바뀌고 유공과 포항의 우승 기록이 맞바뀌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치판에서는 스코어까지 바뀌는 것이다.

운동 경기의 스코어는 과거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선거는 과거에 대한 평가일 뿐 아니라 미래를 선택한다는 의미도 있다. 유권자들이 투표를 할 때에는 후보자 개인의 역량과 함께 그가 속한 당의 정책까지를 포함하여 선택한다. 그런데 이렇게 국민이 내린 엄숙한 판정을 선수들끼리 담합하여 뒤집는다면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 제도가 존재하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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