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존의 공습’에 수도권 무방비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6.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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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기준 초과’ 7년새 천여 회…안전 대책 마련·정확한 오염 측정 시급
 
‘원자(原子)는 죄가 없다’.화학자들이 즐겨 쓰는 농담이다. 그런데 원자가 모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들의 이합집산은 때로 인체에 해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오존 분자(O₃)가 대표적인 예이다. 산소 원자(O) 3개가 결합해 만든 이 세모꼴 분자가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지난 8일과 9일 연이어 서울 강북 지역에 ‘오존 주의보’가 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에도 서울에 한 차례 오존 주의보가 내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틀 연속 주의보가 발령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언론은 대서 특필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인 6월에 오존 농도가 치솟은 것 또한 이상 징후라는 분석이 덧붙여졌다.

 
여기서 지나쳐 버린 중요한 사실이 있다. 서울의 오존 농도가 높아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89∼95년 7년간 서울 지역에서 오존 농도가 대기 환경 기준(1시간 평균치 0.1ppm 이하)을 초과한 횟수는 무려 8백73회에 이른다(<표1> 참조). 이는 장영기 교수(수원대·대기공학)가 서울 시내 20개 대기오염측정소에서 나온 데이터를 분석해 얻은 결과이다.

그런데 환경부가 ‘오존 경보제’를 도입한 것은 지난해 7월이다. 다시 말해 경보제가 도입되기 이전에도 경보를 내릴 만한 상황이 숱하게 발생했던 셈이다. 그나마 경보제 도입 원년인 지난해에는 환경 기준을 초과한 횟수가 21회에 머물렀다. 기준을 초과한 횟수가 2백65회에 달했던 94년에 비하면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치이다. 94년 당시 초과 횟수가 많았던 것은 유례없는 찜통 더위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 기준을 초과한 횟수만 넘어선 것이 아니다. 오존 경보제에 따르면 1시간당 오존 농도 평균치가 0.12ppm 이상이면 ‘주의보’, 0.3ppm 이상이면 ‘경보’, 0.5ppm 이상이면 ‘중대 경보’를 발령하게 되어 있다. 이번에 주의보를 내린 8일과 9일의 경우 시간당 오존 농도는 각각 0.121ppm과 0.126ppm을 나타냈다. 그런데 찜통 더위가 극에 달했던 94년 8월23일 오후 3시 광화문측정소의 측정치는 0.322ppm을 기록했다. 경보를 내릴 상황이었던 셈이다. 전날인 8월22일에도 오존 농도는 한때(오후 2시께) 0.243ppm까지 치솟았다.

 
 
오존층을 둘러싼 세 가지 오해


그렇다면 오존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왜 다른 오염 물질과 달리 오존 농도가 높아질 때는 경보를 내려야 하는가. 이같은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오존을 둘러싼 몇 가지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첫 번째 오해. 오존주의보가 내려진 다음날 한 일간지는 해설 기사에서 오존층이 파괴될 위험성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대기 속 오존 물질과 성층권의 오존층을 구분하지 못한 데서 나온 촌극이다. 오존은 존재 영역에 따라 성층권 오존과 대류권 오존으로 나뉜다. 땅 위 10∼50㎞ 성층권에 존재하는 오존을 흔히 ‘오존층’이라고 하며, 이는 우주나 태양에서 오는 강한 자외선이나 우주선을 걸러 주는 구실을 한다. 이 오존층이 파괴되는 것은 이미 전지구적인 환경 문제가 되어 있다. 이에 반해 대류권 오존은 땅위 10㎞ 이내에 존재하는 대기중 오존이다. 대기 속의 오존은 눈을 자극하고 기침·숨참 등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뿐 아니라 농작물에도 심각한 해를 입힌다. 각종 섬유를 퇴색시키며 특히 타이어 등 고무를 쉽게 노화시켜 재산상 해를 입히기도 한다(51쪽 상자 기사 참조). 다시 말해 있어야 할 성층권에서는 오존이 자꾸 파괴되고, 없어도 될 대류권에서는 오존이 자꾸 늘어나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태계에 미치는 오존의 영향을 공식으로 연구한 적이 없다. 국립환경연구원 고강석 박사는 깻잎이나 샐비어 잎이 오존 농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은 밝혀졌지만 현장 조사가 아닌 실험 결과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이경재 교수(서울시립대·조경학)는 우리나라 생태계에도 오존의 영향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94∼95년 진달래와 철쭉 잎을 관찰한 결과 해마다 7월 말부터 잎 전체에 하얀 반점이 나타나는 현상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존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서울 전역에서 고르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존 자체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다(52쪽 상자 기사 참조). 이것이 두 번째 오해이다. 홍윤철 박사(인하대 의과대학·환경의학)는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아닌 이상 일반인이 오존으로 인해 급성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한다. 물론 오존은 폐나 기관지를 자극하지만, 오존 때문에 런던 스모그처럼 단기간에 대규모 참사가 발생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광화학 스모그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가장 대표적인 오염 물질이 오존이라는 사실이다. 서울은 이미 연간 45일 이상을 스모그에 싸여 있는 상태이다. 오존은 광화학 산화물 가운데 90% 이상을 차지한다. 다시 말해 오존 농도가 높다는 것은 광화학 스모그가 그만큼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존을 대기 오염 경보제의 기준 물질로 삼는 이유도 이것이다. 이는 광화학 스모그가 진행되면서 오존 외에도 알데히드· PAN(Peroxylacetyl Nitrate)· 아크로레인(CH₂) 따위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함께 늘어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오존이 주목받게 된 것부터가 광화학 스모그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LA 스모그 때문이었다.

40년대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강력한 시민 운동이 펼쳐졌다. 공장들이 배출하는 오염 물질을 규제하라는 운동이었다. 시민들은 런던 스모그와 같은 사태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날까 봐 걱정했다. 운동은 성공했다. 공장의 매연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도심에는 아지랑이가 여전했고, 눈과 목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사람 또한 줄지 않았다. 시 당국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생화학자 에리 장 하겐스미트에게 그 원인을 밝혀 달라고 의뢰했다.

자동차가 오염 물질 77% 배출


하겐스미트는 우선 로스앤젤레스의 대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다량의 질소 산화물(NOX)과 탄화수소(HC)를 발견했다. 이는 대부분 자동차와 주유소에서 발생한 물질이었다. 그는 농작물 이파리를 이들 물질에 노출시켰다. 그러나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실험을 거듭하던 중 그에게 섬광처럼 깨달음이 스쳐갔다. 대기 중에 햇빛이 존재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는 농작물을 오염 기체 속에 넣고 자외선을 비췄다. 자외선은 햇빛 대용이었다. 반응은 불과 2~3 시간 만에 나타났다. 이파리 뒷면에 기름 같은 광택이 뚜렷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이는 로스앤젤레스의 농작물에 나타난 피해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만들어 낸 화학 반응의 최종 생성물을 곧 알아냈다. 그것이 바로 오존이었다. 질소 산화물 가운데 하나인 이산화질소(NO₂)는 햇빛을 받아 일산화질소와 산소 원자(NO+O)로 쪼개진다. 이 산소 원자가 다시 대기 속에 풍부하게 떠다니는 산소 분자(O₂)와 결합해 오존(O₃)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같은 화학 반응은 일사량이 많을수록, 바람이 약할수록, 기온이 높을수록 활발하게 일어난다. 한여름 낮 12시∼4시 사이에 오존 농도가 증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존을 둘러싼 세 번째 오해는, 자동차 배기 가스만이 오존을 발생시키는 ‘단독범’인 양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자동차는 오존 생성의 전구 물질인 질소 산화물이나 탄화수소를 발생시키는 가장 큰 배출원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경유를 사용하는 버스나 트럭은 자동차가 배출하는 전체 질소 산화물의 89.7%, 탄화수소의 58.3%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환경부는 지난 6월13일 자동차 배출 허용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고, 경유 자동차에 매연을 90% 이상 줄이는 매연 여과 장치 부착을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가 있기 전에도 환경부는 이미 오는 2000년까지 단계적으로 자동차 배출 질소 산화물 허용 기준을 강화해 나가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정 시설에 대한 규제 기준은 아직 뚜렷이 서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환경부 혼자 너무 ‘튄다’는 지적을 받는 터에 다른 부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규제를 강화해도 한계는 따른다. 우선은 도로율 문제이다. 교통 정체 때 자동차는 더 많은 오염 물질을 내뿜는다. 평균 차속과 연비는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시속이 30㎞에서 20㎞로 떨어지면 연료는 19%가 더 소모되며, 이것이 다시 10㎞대로 떨어지면 연료 소모는 42%나 증가한다. 그런데 98년 서울 시내의 평균 차속은 12.8km, 2000년에는 8.4㎞로 떨어지리라는 것이 서울시의 암울한 전망이다.

28개 오염 측정소에 관리인 네명뿐


물론 여기에는 자동차가 계속 증가하리라는 전망이 전제되어 있다. 환경부 양방철 대기보전국장은 64년 4만대 수준이던 자동차가 오는 6월 말 9백만대를 넘어설 예정이라며 “자동차가 이처럼 기하급수로 증가하는 한 배출 허용 기준을 아무리 강화해도 오염 물질 억제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미국·일본 등 환경 선진국이 아황산가스나 일산화탄소를 억제하는 데는 성공했으면서도 오존 문제에 대해서는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기·알콜·수소 사용 자동차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성과는 20세기 말에나 나타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오존 경보제 자체에 회의를 표시하는 이도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대기 오염으로 기준치 초과 일수 증가가 불을 보듯 뻔한 이상 잦은 경보가 오히려 타성을 기를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이다.

 
그러나 당장은 안전 대책을 세우는 일이 최선이다. 우선은 오염도 측정이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전국의 대기 자동 측정망은 93개소. 이 가운데 서울시가 관리하는 10개소를 뺀 나머지 83개소는 환경부 산하 각 지방 환경관리청이 관리한다. 한 예로 수도권 12개 도시의 28군데 측정소를 관리하는 한강 환경관리청의 담당 직원은 네 사람이다. 물론 자동 연결망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면 관리하기에 충분한 인원이다. 그러나 기상 또는 주변 지역의 전기 사용량에 따라 정전되는 일이 잦다는 것이 담당 직원의 증언이다. 개당 천만원 가량 더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정전 방지 시스템(UHS)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93개 측정소에서 측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비율, 즉 결측률은 15.3%에 달했다. 이렇게 될 경우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하는 것이 필수인 오염 농도치 기록에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보 체제에 혼란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도 오염 측정소 운영해야


 
다음으로는 대도시 중심의 경보 체제를 보완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올해 안에 인천, 내년부터는 부산·대구·대전·광주 4대 광역시에 오존경보제를 확대 운영할 게획이다. 그러나 장영기 교수는 수도권 지역만이라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시급히 오존 경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행정 구역에 따라 대기가 흐르지 않는 이상 서울과 수도권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표 1>에 따르면 대기오염측정소가 설치되어 있는 수도권 10개 도시 가운데 환경 기준을 초과하지 않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특히 부천시는 91년 기준치를 41회 초과한 이래 94년에도 58회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부천에는 측정소가 두 군데뿐이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자기 지역 실정에 맞게 측정소를 신설해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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