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용 민주노총 2대 위원장 “실업자 동맹 곧 출범시킨다”
  • 李政勤 기자 ()
  • 승인 1998.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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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파탄의 주범인 재벌과 정치권을 개혁해야만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것입니다. 재벌을 해체하고, 정치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면 우리 노동자는 얼마든지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월31일 당선된 이갑용 민주노총 2대 위원장이 4월9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 철폐 △무기 구입 중단 등을 통해 실업대책기금 20조원 확보 △노동자 경영 참가 보장 △국제통화기금과의 재협상 등을 요구하며, 이런 사항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5월1일을 기점으로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 투쟁을 5~6월 중에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지금의 경제 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만나 보았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 철패 등을 전제 조건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참뜻은 무엇입니까?

노사정위에 불참하겠다는 것입니다.

제1기 민주노총의 배석범 위원장 대리는 정리해고제 등의 법제화에 합의했는데, 왜 이를 번복하는가요?

민주노총은 자주성과 민주성이 강한 곳으로, 개인의 민주노총이 아닙니다. 노사정위에서 합의한 정리 해고 법제화 등은 잠정안입니다. 당시 배석범 위원장 대리도 대의원대회의 추인을 받아 최종 동의 여부를 밝히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잠정안은 대의원대회에서 추인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언론은 직권 조인이란 표현으로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 법제화에 동의했다는 쪽으로 몰고 갔습니다.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제 법제화 등을 받아들인 사실이 없습니다.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노사정위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경제 파탄을 일으킨 주범은 재벌과 정치권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그냥두고 노동자의 허리띠만 졸라매라고 하니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벌과 정치권을 함께 개혁해야 참여할 수 있어요. 정리해고제 등의 법제화만을 목적으로 하는 노시정위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정리해고제 등은 국민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법제화한 것인데, 이를 부정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어기는 것 아닙니까?

불법 행동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합법적인 시위를 비롯해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이 모르고 있는 것을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정부와 정면 충돌은 피한다는 뜻입니까?

피해 가는 것이 아니고 합법적으로 투쟁하겠다는 것입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이 자살하는 등 사회 불안 심리가 확대되고 있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고용 창출인데, 정부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용 창출을 위해 정부가 실업기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이 돈은 노동자에게서 걷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정부 부처는 서로 이 돈의 사용권을 갖겠다며 다투고만 있으니 답답합니다. 이래서는 고용 창출이고 뭐고 되는 게 없습니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 고용을 창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외국 자본은 한국 진출 조건으로 노동 조건 완화 등을 내걸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덥석 받아들이고 있어 문제입니다. 이래서는 노조와 정부 간의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통화기금 체제에서 들어오는 외국 자본은 결국 자기 이익을 챙겨서 나가겠다는 것 아닙니까. 여기에 대항할 최소한의 저항 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외국 자본은 한국 노동운동이 가열차다는 것을 내세워 잘 들어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얼마전 거평그룹 대한중석의 초경합금 사업 부문을 인수하려던 이스라엘의 이스카 사는, 대한중석 노조가 매각 위로금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계약을 취소하지 않았습니까.

구체적인 문제에 답변할 만큼 저는 경제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벌을 해체하고 정치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재벌을 해체하고 정치 투명성만 확보한다면 우리 노동자는 얼마든지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현대자동차가 생산직 노동자 9천2백여 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5~6월 총력 투쟁은 울산에서부터 시작되는가요

현대자동차 노조는 노동 시간을 단축해 다같이 살자며 고용 안전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9천여 명을 살리기 위해 1인당 노동 시간을 월 47시간씩 줄이자며 노동자와 그 가족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있는데 자꾸 노동자만 누르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주영 현대 회장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사재 3조원을 털어서라도 국가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습니다. 꼭 대통령에 당선돼야만 사재를 내놓습니까? 나라 꼴이 이 지경이 됐으면 당장 내놓아야지요.

위원장 선거에서 어렵게 이겼지요? 그런 배경으로는 강력한 투쟁을 펼치기가 어려울 텐데요.

정갑득 후보와 저는 똑같이 현장 출신입니다. 선거운동 중에 언론은 정후보를 합리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만, 지금은 정후보측이 더 싸워야 한다는 쪽으로 전환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단결은 시작되었습니다.

강력한 투쟁을 하는 데 집행부 임기 1년은 짧지 않습니까?

집행부 임기 문제는 이번 선거에서 핵심 관건이었습니다. 직권 조인 문제 등을 바로잡으려면 당선자가 임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고 해서 1년으로 잡았습니다.

실업자 동맹 문제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검찰 공안부가 긴장하고 있던데요.

실업자를 방기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 민생 범죄가 늘어납니다. 민생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실업자를 조직 속에 끌어넣어 재취업 교육을 해야 합니다. 이들이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민주노총을 향해 떠들게 하자는 것이 우리 생각입니다. 5월1일 메이데이 전에 조직을 출범할 계획으로 현재 부산 · 서울 · 울산 등지에서 실업자를 모으고 있습니다. 공안 당국은 민주노총이 민생 치안 해결에 나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무기 도입비를 줄여서 사회보장비로 쓰자고 주장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북한 등 주변국의 위협이 감소했다고 보는가요?

이 주장은 1기 민주노총 지도부도 했던 것인데, 이런 주장을 하면 반드시 역공이 들어오더군요. 율곡 비리 등 무기 도입 비리로 낭비되는 국방비를 줄여 사회 구조 개선비로 돌리면 엄청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주장을 펴면 사상 시비에 말려들 수도 있을 텐데요.

사상 시비요? 저는 김포에서 해병대로 만기 제대했습니다. 그 문제는 전혀 걱정할 것 없습니다.

불황기 때는 노동운동도 퇴조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지금 노동운동은 회복 불능에 가까울 만큼 퇴조했습니다. 잘못하다간 민주노총이 세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까지 들 정도입니다. 국제통화기금 체제에 끌려가기만 할 수 없어 그 돌파구로 투쟁을 결의한 것입니다. 정치권과 재계에 우리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면 노동운동이 활성화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위원장을 강성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노동운동으로 세 번 투옥된 전력 때문에 강성으로 비치는 모양입니다만 저는 대의원 대회 결정 사항을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강성이라기보다는 의지력이 강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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