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식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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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혁신 안하면 나라 망한다”
뜻밖이었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윤성식 위원장은 대한민국 공무원의 질을 꽤 괜찮은 수준으로 평했다. 민간 기업이 지향하는 것처럼 정부 시스템도 최고·초일류가 되기 위해 혁신을 주창한다는 것이다. 그는 21세기는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끊임없이 혁신하는 국가가 되지 않으면 최고는커녕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정부 역시 혁신을 계속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7월16일 정부혁신국제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VIP룸에서 그를 만났다.

정부 혁신을 왜 이렇게 강조하는가?

21세기 혁신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다. 기존 경직된 패러다임으로는 부유한 국가는커녕 생존하기조차 어렵다. 이런 변화무쌍한 시대에는 자신을 혁신하는 정부만이 경쟁력을 잃지 않는다. 혁신은 정책 수요나 국민의 요구, 국제 환경이 바뀔 때 잘 대응하게 하며, 모든 구성원이 자신이 가진 잠재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한다. 혁신은 같은 인원과 예산을 갖고도 훨씬 더 큰 역량을 발휘하게 한다.

이번 정부도 이전 정부처럼 혁신을 하다 말 것이라는 시각이 없지 않다.

혁신에 관한 한 참여정부는 과거 정부와 차별적이다. 우선 대통령부터 정부 혁신을 최우선 순위에 놓아 출범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으며 열정을 쏟고 있다. 추진 과정도 차별적이다. 거꾸로다. 예전 정부는 정권 초기에 야단법석을 떨다가 1년이 못가 시들해졌지만 참여정부는 조용하게 출발했다. 지난해 정부 혁신의 백년 대계라 할 만한 로드맵을 설계했다. 이전 정부에서 개혁이 중단될 시점에 우리는 본격 추진하는 것이다. 법과 제도는 물론 조직 문화까지도 혁신하려고 한다. 관행과 문화가 사고와 인식을 바꾸기 때문이다.

혁신의 적이라는 냉소주의와 거부감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이 혁신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로드맵과 추진 체계가 완성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알고 있다고 본다. 이제는 진짜 변화할 때인데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익을 가져오는 변화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혁신은 상식으로 실행할 수 없는, 전문가가 필요한 영역이라 각 부처가 당황하고 있다.

위원회가 출범한 지 1년3개월이 지났는데, 성과가 있는가?

혁신의 큰 틀인 로드맵을 완성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전임 위원장(김병준 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외부 전문가도 참여시켜 거의 1년에 걸쳐 만들었다. 1백57개 과제를 선정해 추진하고 있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렇게 많은, 하나같이 중요한, 누구나 공감하는 과제를 체계적으로 진행해본 적이 없다.

실제 추진되고 있는 일이라면?

총액예산배분제도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애석할 정도다. 지난해까지도 예산 배정 철만 되면 각 부처 공무원이 기획예산처에 와서 A사업·B사업에 예산을 배정해 달라고 읍소하며 진을 쳤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우선 기획예산처 주차장이 텅 비었다. ‘예산 로비’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는 사후 평가에 치중하고 부처별 총액만 정한다. 예산을 어떤 사업에 어떻게 쓸지는 각 부처가 자율로 결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교통정리하게 하니까 각 부처가 중요하지 않은 사업을 버리고 중요한 사업에 집중해 올해보다 내년 예산을 적게 신청한 부처도 생겼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변화다.

지방 정부 역량이 부족해 분권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걱정하는데.

대한민국의 잠재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분권과 아울러 책임성 확보도 병행해서 추진하고 있다. 실질적인 지방 자치를 미루어왔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나. 지방 정부의 역량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역량이 생길 때 하자고 하면 영원히 안된다.

외교통상·금융감독·중소기업 등 기능 및 조직 개편 작업에 관가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8월중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현재 여러 대안을 놓고 검토중이어서 뭐라 언급하기 이르다. (거듭 개편의 방향성만이라도 밝혀달라고 요청하자) 외교통상부의 경우 인사 시스템이 특히 문제다. 1급에 해당하는 공무원이 1백18명이다. 다른 부처처럼 신분 보장이 안되었는데, 전두환 대통령 때 납득하기도 어렵고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로 그렇게 되었다.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 인사가 폐쇄적이며 전문성이 부족하다. 다른 나라는 특정 분야 최고 전문가가 외교관에 임용되는데 우리는 전혀 외부에서 수혈되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 기능은 어떻게 개편되는가?

금융감독 기구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제역할을 하게 하려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같은 내용을 세 군데(금융감독위원회·재정경제부·금융감독원)서 하는 업무의 중복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 위원회 12개가 관료 조직을 들러리로 만든다는 비난이 있다.

대통령 위원회가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백악관에도 수많은 팀이 있다. 미국은 중요한 정책 결정과 조정을 백악관이 한다. 각 부처는 세부 결정과 집행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 박세일 의원도 대통령은 중요한 과제에 전념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 적이 있고, 언론에서 아무런 비판이 없었다. 대통령이 핵심 과제를 챙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반문하고 싶다.

취임한 지 막 한 달 지났는데 소회가 궁금하다.

어려운 자리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대안은 없다. 항상 대안이 여럿이고 누구나 자기 대안이 옳다고 얘기한다. 현안을 놓고 부처 의견이 크게 달라 갈등이 심하다. 대단히 공정해야 하는 자리다. 모든 구성원의 의견이 누락되거나 왜곡되지 않게 잘 반영해야 한다. 자신의 주관을 개입하지 않고 자기 절제를 잘해야 하며 외부 영향력 행사에도 초연해야 한다. 그런 것이 어렵다.

지난해 8월 노무현 대통령은 윤위원장을 감사원장에 임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후보 시절 정책 자문을 했을 뿐 그와 사담 한마디, 술 한잔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감사원장 후보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사람이다.” 그 역시 노후보가 세상을 변화시킬 과감한 개혁을 추진할 인물이라는 믿음 하나로 2002년 5월께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노캠프의 자문 의뢰를 수락했다. 인수위원으로 새 정부 출범에도 힘을 보탰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국회의 감사원장 인준은 부결되었다. 경제·경영·회계·행정 등 사회과학 전반에 폭넓은 지식을 갖추었으면서도 각 분야에서 모두 전문가 소리를 듣는 매우 드문 ‘크로스오버’ 학자이며, <감사의 효과>라는 박사 학위 논문(미국 버클리 대학)을 써서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터여서 파문이 일었다. 윤위원장은 이에 대해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는 이유로 철두철미하게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하지만 그는 국회 청문회 과정이나 정치 전반 등에 느낀 것도 배운 것도 많다며 책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가 2002년 펴낸 <정부 개혁과 비전>은 노대통령이 여러 번 관심을 표명하며 공무원에게 일독을 권한 책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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