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벨라미 유니세프 총재 겸 유엔 사무총장
  • 김진화 편집위원 ()
  • 승인 2001.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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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린이 위한 운동의 상징적 국가"

세계 1백40여 나라에서 일하는 직원 만여명을 이끄는 유엔 어린이 기금(유니세프·UNICEF) 총수 캐럴 벨라미는 결혼한 적도 아기를 낳은 적도 없는 사람이다.

"반드시 애를 낳은 사람들만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 사랑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고, 각종 폭력으로부터 보호되고, 따뜻하게 보살핌 받을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나의 임무는 내 가정을 뛰어넘어 전세계를 상대로 이같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녀가 미국의 한 잡지와 인터뷰하면서 털어놓은 어린이 사랑관이다. 구두수선공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대학 재학 중인 21세 때 미국 평화봉사단 단원으로 중남미 과테말라 벽촌에서 닭치는 일을 도왔다. 그로부터 40여 년 후 그녀는 봉사단원 출신 중 최초로 평화봉사단 총재가 되었고, 유니세프 55년 사상 최초로 여성 총재에 오른 입지전적 여걸이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오는 9월 '어린이를 위한 유엔 세계 정상 특별 회의' 개막 연설과 의장직 수락을 직접 요청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벨라미 총재를 만났다.

유엔 총회가 '어린이를 위한 특별 세계 정상 회담'을 개최하고, '어린이를 위한 지구촌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는데,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

10년 전 '어린이를 위한 정상회의'가 처음 열린 후 유엔은 어린이 보호와 생활 환경 향상을 위한 27개 항 행동 계획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이 계획이 어떻게 실천되었으며, 미흡한 점은 무엇인가를 솔직하고 투명하게 점검하고, 21세기를 위한 목표와 계획을 설정하게 됩니다. 지난번 어린이를 위한 정상회의에는 80여 나라에서 정상급 인사가 참석했습니다. 지난해 '20세기 밀레니엄 정상회의'를 제외하고 이토록 세계 정상들이 한자리에 많이 모인 적은 없었습니다. 어린이 문제가 심각한 세계 문제라는 증거입니다. 정상회의는 유니세프의 행사가 아니라, 유엔 총회의 행사입니다. 우리는 사무국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 대통령에게 정상회의 개막 연설과 의장 직을 요청했습니까?

한국은 어린이를 위한 범세계 운동에 앞장설 자격이 있는 상징적 국가입니다. 50년 전 유니세프의 최대 수혜국이던 한국이 이제는 원조국이 되었습니다. 경제 성장의 열매를 어린이에게 계속 투자하는 한국은 5세 미만 어린이 사망률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감소된 나라입니다. 저는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의 사례를 언급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어린이를 위한 21세기 지구촌 운동의 기수가 될 상징적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은 정상회의가 열리는 9월 유엔 총회의 의장국이 됩니다.

김대통령이 수락했습니까?

신중히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밖에 김대통령과 무엇을 논의했습니까?

유니세프 기부금에 대해 포괄적으로 건의했고, 북한 어린이에 대한 원조 문제도 건의했지요. 또, 내년에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에 어린이를 상징적 '주제'로 삼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지난번 시드니올림픽 때 오스트레일리아가 원주민 여성 육상 선수를 상징적 주제로 부각한 것처럼 말입니다. 올림픽이, 아니 월드컵이 한·일 두 나라에서 열리는 만큼 '어린이'라는 주제는 앞날을 이끌 두 나라 어린이들의 화합과 통합의 상징적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벨라미 총재는 미국인이어서인지 월드컵 축구 대회를 계속 올림픽이라고 불렀다). 또한 어린이 문제가 지구촌의 최우선 과제라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참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했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도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보십니까?

초청했지만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프랑스 미국 캐나다 스웨덴 남아프리카 공화국 핀란드 등 많은 국가의 정상들이 참석하겠다고 공식 통보해 왔습니다.

최근 유니세프 보고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 회원국 중 부상으로 인한 어린이 사망률이 제일 높다고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처방안이 없을까요?

부상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것은 법규가 미흡해서라기보다, 홍보와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교통 사고·익사·중독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사망률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교육과 홍보를 지속적으로 펼쳐야 합니다. 며칠 전부터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 대사들이 나서 '건널목 안전하게 건너기' 등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은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홍보 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유엔 기구의 첫 여성 총재가 되어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여성이라는 매력을 이용해 안되는 일을 되게 만들 때도 많습니다. 남자가 하는 일을 다 할 수 있고,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도 하게 되니 두 배로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취임 후 (전임자들이 안 한) 유니세프 기구를 전면 리스트럭처링한 것에 만족합니다.

2년 전 북한을 방문했고 북한 어린이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북한 어린이는 어떤 상태인가요?

북한의 어린이들은 심한 영양 실조와 발육 부진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어 유니세프는 보건과 영양 두 분야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사업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북한을 위해 기부금을 내려는 국가와 단체가 아주 적다는 사실입니다(서울에서의 발언이 북한을 자극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해서인지 벨라미 총재는 북한에 대해 더 말하지 않았다).

유엔에 대한 한국의 재정 기여도(10위)에 비해 한국인의 유엔 기구 진출이 미미하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자세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적정 수준보다 낮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대통령도 한국인 진출에 관해 관심을 많이 표명했으며, 저도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의 생각과 달리 한국의 기부금액은 다른 나라에 비해 뒤지는 편입니다. 유니세프의 경우, 한국 정부 기부금은 세계 20위입니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와 인구가 훨씬 적은 아일랜드는 매년 기부금을 크게 증액하고 있습니다.

한때 전화 설치공이기도 했던 아버지 밑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다는 그녀는 세련된 옷차림과 유려한 말씨를 구사하는 유엔 최고위직 인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소박한 '현장형' 차림에, 정열적이고 직선적이고 말투가 빠른 그녀는 국제 기구 진출을 원하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권할 말이 있다고 했다.

"유엔과 국제기구는 흥미있는 일을 광범위하게 경험할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유니세프는 지역 협동 사업, 교육, 보건 문제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을 필요로 합니다. 주니어 오피서(JPO)나 정식 직원으로 채용될 수도 있습니다. 유엔 기관에서 평생을 보내지 않더라도 4∼5년 경험을 쌓으면 다른 나라 다른 직장에 가서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몇 가지 외국어를 철저히 한다면 더욱 유리하며, 아주 부지런해야 합니다."

● 프로필 :
미국 뉴욕 대학 졸업.
변호사.
하버드 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 연구원.
뉴욕 주 상원의원(1973∼1977).
뉴욕시의회 의장(1978∼1985).
미국평화봉사단 단장(1992∼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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