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검사하느니 차라리 점을 쳐라?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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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 시대' 어린이 재능·적성·건강 상담 결과 못믿어

'소중한 당신의 자녀들! 단 한 번의 유전자 검사로, 그들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매혹적인 광고 문구다. 내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궁금하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하는 부모에게 이보다 더 '달콤한 유혹'은 없다. 게다가 신문과 방송이 아이의 적성을 찾아주는 새로운 검사 도구라고 소개하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부모가 얼마나 될까.

실제로 최근 유전자 검사를 이용해 자녀 교육과 건강을 상담하는 회사에는 젊은 부모의 발걸음이 잦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를 둔 가정주부 이성하씨(33·서울 동작구 사당동)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아이의 성격과 재능을 파악하면 더 정확하게 뒷바라지할 수 있을 것 같아 검사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유전자 4만개 중 9개 검사…신뢰성 의심받아


현재 유전자 검사를 상품화한 회사는 디엔에이앤테크와 디엔에이리서치이며, 이밖에 몇몇 회사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들은 호기심·지능·체력·치매·키·비만·요통·우울증·중독성과 관련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다. 이 아홉 가지 유전자의 염기서열 차이에 따른 유전적 다형성을 검색해 그 사람의 특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 유전자 검사 회사는 검사 대상자의 입 안에서 상피 세포를 채취하거나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검사한다(유전자 검사 과정은 오른쪽 사진 참조). 여기에 사상 체질 진단과 심리학계에서 오랫동안 이용해 온 인성·지능·적성 검사를 병행해 교육 및 건강 상담을 해준다. 이들 회사의 검사 프로그램을 이용한 부모들은 대체로 분석 결과와 상담에 만족하는 편이다. 디엔에이앤테크를 이용했던 이성하씨는 "검사 결과가 상세해서 믿음이 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전학 전문가들은 그 결과가 유전자 검사보다는 심리 적성 검사를 토대로 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과학자들이 예측하는 인간의 유전자 수는 2만5천∼4만 개이다. 이 가운데 디엔에이앤테크와 디엔에이리서치가 검사하는 유전자는 9개뿐이다. 검사 유전자 수의 많고 적음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유전자 기술이 지닌 한계이다. 그래서 병원에서조차 실험이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전자 다형성 검사를 하지 않는다. 송규영 교수(울산의대·생화학)는 "현 수준의 유전자 검사 기술로 개인의 성향이나 특질, 질병 발생 여부를 예측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고 일축했다. 보통 개인의 기질이나 질병은 하나의 특정한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여러 유전자의 유기적인 관계에서 발현하므로, 유전자 몇 개 검사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특성이나 건강 상태를 진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 지능과 관련 있다고 밝혀진 유전자 중 특허가 출원된 것만 수백 개에 이른다. 그 가운데 단 하나를 검사한 뒤, 그 사람의 지능이 높거나 낮다고 판정하는 것은 신뢰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치매 관련 유전자라고 알려진 ApoE의 경우에도, 어떤 사람은 E4 유전자 한 쌍(치매 유발 유전자 타입)을 지니고서도 평생 치매 증상 없이 살기도 한다. 반대로 E4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늙어서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수 있다. 알츠하이머 병과 특별한 연관성이 있는 유전자 한 쌍을 가지고 있다는 진단은 단지 남들보다 발병 가능성이 높다는 것뿐이지 알츠하이머 병을 예견하는 데 충분하거나 필요한 조건이 아닌 것이다. 쉽게 말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과 같다.

특정한 성향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라고 해도 동물과 인체에서의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가령, 현재 비만 관련 유전자라고 알려진 렙틴은 쥐 실험 때와 달리 사람의 비만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 유전자 타입을 판별해 비만 가능성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앞서 말한 유전자 9개 가운데에는 정상인이라면 검사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 많다. 이용성 교수(한양대·생화학)는 "이 정도 수준의 유전자 검사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된다면 그는 이미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주 특수한 환자에게서나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을 찾아내는 유전자 검사가 건강한 아이를 대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예컨대 키와 관련한 유전자로 알려진 포그(Phog)는 X 염색체 1개가 소실된 유전 질환 '터너증후군'에서 작은 키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로 알려진 정도이다. 정상인의 키를 조절하는 유전자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유전자의 이상 여부만을 가지고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무모하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과학자는 현재 시행되는 형태의 유전자 검사가 한 인간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며, 소경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검사를 시행하는 회사들도 유전자 검사의 불명확성에 대한 비판을 수긍한다. 디엔에이앤테크 연규홍 대표는 "물론 유전자 검사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아이의 신체 특징과 성향, 질병 발생 여부 등을 판단하지 않는다. 심리 검사와 사상 체질 검사를 병행하여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상 체질 검사 방법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엔에이리서치 임용빈 연구소장은 "체질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사상체질학회가 인정한 검사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상 체질을 연구하는 한의사들조차 '한 사람의 체질을 정확하게 알면 그 사람의 모든 질병이 보인다. 하지만 한두 번의 검사로 특정한 개인의 체질을 정확하게 판별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이처럼 유전자 검사와 사상 체질 검사가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없다면, 결국 이들 회사가 활용하는 검사 프로그램은 심리 검사를 통해서 도출하는 결과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셈이다.


'환상에 홀려' 검사비 수십만원 낭비


실상이 이러한데도, 이들 회사는 유전자 검사가 교육과 건강 상담에 상당한 비중을 가진 것처럼 선전함으로써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이 검사를 이용하는 부모들은 유전자 검사와 체질 검사가 일반적인 심리 검사만 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분석해 줄 것이라는 환상에 홀려 검사비 수십만원을 기꺼이 지불하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둔 가정주부 김경자씨(40·서울시 구로구 개봉동)는 "유전자 검사로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없다면 구태여 비싼 돈을 주고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고 더 싼 심리 검사를 받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진혜민 박사(뇌 유전자 분석 프로젝트팀장) 말대로 지금 기술 수준에서 개인의 특성이나 재능을 판단하려고 유전자를 검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진박사는 "미국에서는 사회가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수조차 없다. 유전자 검사에 쓸 돈이 있다면 차라리 자녀와 함께 음악회나 박물관을 찾는 것이 낫다"라고 충고했다.

유전자 지도가 완성된 뒤로 부풀려진 게놈에 대한 환상이 자녀 걱정이 유난스러운 부모들의 주머니를 축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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