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담배보다 해롭고 암보다 무서운 '역병'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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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랜드연구소가 밝혀…성인병 발병률, 정상인의 2배


"치료해야겠는데요." 일산백병원 비만 클리닉을 찾은 회사원 김은경씨(31·가명)는 의사의 진단에 충격을 받았다. 신장 163cm 체중 65kg인 그녀는 통통하기는 하지만 치료받을 정도로 뚱뚱하지는 않다고 생각해 왔다.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으면서 7kg이 늘었으나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고 믿었다. 그녀는 체지방률과 체력을 측정한 뒤 적당한 다이어트법을 추천받기 위해서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김씨는 비만도나 체질량지수를 측정해도 과체중 수준이었다(80쪽 상자 기사 참조).




비만 클리닉에서 그녀는 체력과 체지방 측정, 혈액 검사, 복부 지방 컴퓨터 단층 촬영 검사를 받았다. 김씨의 체력은 근지구력을 제외한 모든 항목이 바닥을 밑돌아 40세의 체력 수준이었다. 의사가 치료해야 한다고 진단한 것은 그녀의 체지방률 때문이다. 전기 저항을 이용해 체지방률을 측정했더니 31.8%가 나왔다. 체지방률은, 남성은 25%, 여성은 30%를 넘으면 비만으로 분류된다. 김씨는 특히 복부에 피하 지방보다 내장 지방이 많아 여러 가지 질병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았다.


피부 밑에 있는 피하 지방은 빼기 쉽고 건강에도 영향을 덜 미친다. 하지만, 내장에 낀 지방은 빼기 어려울 뿐 아니라 비만과 관련한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 주요 질병의 원인이 된다.


"한국도 비만과의 전쟁 벌여야 할 때"


비만 클리닉 진료팀은 검사 결과를 토대로 김씨에게 하루 열량 섭취량을 기초대사량 수준인 1400kcal로 줄이고, 매일 유산소 운동(40분 이상)과 근력 운동(20분 가량)을 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처방대로 하면 매주 0.5∼1kg씩 감량해, 두세 달 뒤 표준 체중을 유지하고 질병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비만이 '국민적 질병'으로 번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0년 기준으로 체질량지수(BMI) 25 이상(비만에 의한 사망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지점)이 남자 33.1%, 여자 32.2%이다. 1995년 11.7%(남자)와 18.0%(여자)였던 것에 비하면 2배 이상 껑충 뛰었다(표 참조). 특히 서양인에 비해 같은 체형에서 내장형 비만이 많아 건강에 대한 위협이 높다. 오상우 교수(인제의대 일산백병원·비만 클리닉)는 "한국도 이제 비만과의 전쟁에 돌입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비만이 위험한 까닭은 당뇨병·고혈압·뇌졸중·심장병 같은 심각한 성인병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퇴행성 관절염과 담석증·지방간이 발생할 확률도 높다. 비만도 22부터 고혈압과 당뇨병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표준 체중의 20%를 넘는 비만인은 정상인보다 고혈압 발생 빈도가 3배 이상 높다. 당뇨병은 비만인이 정상인보다 3.7배 발생 위험이 높다. 비만 환자의 약 90%는 간에 지방 병변을 일으킨다. 그 뿐 아니라 비만 남성은 대장암과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이 높고, 비만 여성은 자궁암·난소암·담낭암·유방암에 잘 걸리고, 난산할 위험도 크다.


의학계는 비만을 암보다 더 무서운 '역병'의 하나로 꼽는다. 최근 미국에서는 비만이 흡연이나 음주보다 훨씬 더 건강에 해롭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샌터모니카에 있는 랜드 연구소 롤랜드 스텀 박사 팀은 9만5천명을 조사한 결과, 뚱뚱한 사람은 보통 체중인 사람에 비해 암·당뇨·심장질환 등 만성적인 질병 발생률이 평균 두 배 가까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에서는 미국인 59%가 과체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상인데도 살을 빼려는 사람이 많은가 하면, 비만인 가운데에는 당장 불편하지 않다고 해서 살 뺄 생각을 하지 않는 '비만 불감증' 환자가 많다.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비만도 초기에 예방하고 치료해야 한다.


문제는 비만 치료가 담배 끊기보다 어렵다는 데 있다. 비만 치료를 받은 사람 10명 가운데 8, 9명은 5년 이내에 다시 살이 찐다. 비만은 몸 안으로 들어가는 열량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많을 때 생기는데, 식습관을 비롯한 생활 양식·신체 활동 유형·유전 등 원인이 다양하다. 따라서 그러한 요인을 고루 치료해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비만 환자들이 대부분 지름길을 선호하다 보니 치료 효과가 높지 않다. 운동하며 칼로리 섭취를 줄이기보다는 손쉬운 다이어트법을 선호한다. 굶거나,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는 약물에만 의존하는 경향도 있다.


"약물·식이·운동 요법 병행해야 효과적 치료"




운동하지 않고 굶으면 살이 더 찐다. 섭취 열량을 줄이면 당장은 체중이 준다. 하지만 대부분 체내의 수분과 근육이 빠져나가고 지방은 별로 감소하지 않는다(표 참조). 단식으로 살을 빼는 경우, 최소한 10일이 지나야 체지방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단식 뒤의 변화이다. 영양 결핍 상태에 빠진 몸은 기초대사율을 낮추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섭취하는 에너지를 모두 지방으로 저장하려고 한다. 즉 몸은 살아 남기 위해 근육 조직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중요한 에너지 저장고인 지방 조직을 최대한 늘리려고 하는 것이다. 예컨대 10일 동안 단식해 보았자 체지방은 줄지 않고 수분과 근육만 빠진다. 게다가 단식 뒤 음식을 조금만 섭취해도 대부분 지방 조직으로 전환되어 오히려 살이 더 찔 수밖에 없다.


이같은 원리는 다이어트 식품이나 한 가지 음식만 섭취하는 '원 푸드 다이어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으면 지방보다는 수분이나 근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포도 ·사과 따위를 이용한 과일 다이어트나 덴마크 다이어트처럼 제한된 음식을 이용한 원 푸드 다이어트를 하면 일시적으로 체중을 감량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그만둔 뒤 살이 더 찌는 요요현상이 심해진다. 한끼에 135∼150kcal, 1일 400∼450kcal의 초저열량식으로 살을 빼는 다이어트 제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원 푸드에 비해 영양 불균형이 올 가능성은 적지만 평생 그렇게 먹지 않는 한 요요현상을 차단할 수 없다.


비만 치료에 운동이 효과적인 것은, 운동 그 자체가 칼로리를 소모할 뿐 아니라 대사량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하면 몸에 축적되어 있던 체지방이 감소하고 근육이 늘어난다. 그러나 특정 부위 운동이 특정 부위 살을 빼주지는 않는다. 윗몸일으키기를 한다고 해서 뱃살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 지방이 빠짐으로써 뱃살도 줄어드는 것이다.


의사들은 약물·식이·운동 요법을 균형 있게 실시해야 비만 치료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비룡 교수(서울의대·가정의학)는 "굶거나 약물에만 의존하면 일시적인 체중 감량에는 성공하지만 다시 밥을 먹고 약을 끊는 순간 모든 고생이 헛수고가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결국 비만과의 전쟁은 장기전인 동시에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다. 게릴라식 전법으로는 악순환만 거듭한다.


비만과의 전쟁에 자신 없는 사람이라면 비만 클리닉 문을 두드려 보라. 비만 클리닉은 전문의·임상운동사·영양사가 한 조가 되어 상담과 처방을 통해 장기전에 필요한 '무기'를 지원한다. 그러나 비만 클리닉도 옥석을 가리지 않으면 낭패하기 십상이다. '이름만' 비만 클리닉인 곳을 찾았다가 돈은 돈대로, 몸은 몸대로 망가진 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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