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2003 투란도트>는 찬사와 함께 비난도 많이 들어야 했습니다. 섬세한 감상을 요하는 오페라를 이벤트화 해서 감동을 반감시키고 오페라의 질적 저하를 초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다><카르멘> 등 <2003 투란도트>를 잇는 대형 야외오페라가 연이어 실패하면서 이런 운동장 오페라에 대한 성토론은 대세로 굳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서 공연되는 <2005 투란도트>(5월28일까지)는 큰 의미를 같습니다. 대형 야외오페라로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들었던 (주)투란도트 박현준 단장은 <2005 투란도트>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려 ‘결자해지’를 시도했습니다. 그는 <2003 투란도트>의 두 주역인 니꼴라 마르티누치와 죠반나 까졸라를 다시 불러 실내 무대에 그 때의 감동을 재현하려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페라 <투란도트>를 옹호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런 화려한 외피를 거둔 <2005 투란도트>의 속살은 거칠었습니다. 일단 웅장한 실외 무대를 실내에 재현하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상암동월드컵경기장 무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웅장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2005 투란도트>의 무대는 전체적인 완성도를 갖추지 못한 채, 불필요하게 실험적이서 관객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웅장한 스케일을 여러 개의 기둥을 세워 구현하려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천정에서 강림하는 황제의 옥좌나, 그 옥좌를 위태롭게 지탱하며 좌우로 열리는 문은 생뚱맞았습니다.
야외오페라의 웅장함이 재현되지 못한 것은 연출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2005 투란도트>는 역동성이 거세당한 작품이었습니다. 무대 위의 사람들은 너무도 정적이어서 마치 세트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볼거리 없는 무대와 활기 없는 연출은 작품을 지루하게 만들었습니다.
조명 역시 너무 밝고 단조로워서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렸습니다. 심지어 스포트라이트로 관객을 비추는 무례를 범하기도 했는데, 눈이 부셔서 무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전반적으로 무대와 조명, 연출은 고가의 관람료를 요구하는 ‘럭셔리 오페라’로서는 다소 부족해 보였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맡은 의상은 흥미로웠습니다. <투란도트>라는 작품은 있는 그대로의 동양이 아닌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을 반영하는 작품입니다. 앙드레 김은 베이징이라는 공간 안에 상상력을 가두지 않았습니다. 차도르를 두른 중동의 여인, 무장한 로마의 병사, 베트남의 농민, 티벳의 승려까지, 범지구적인 의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스타워즈>에서나 보았을 것 같은 스타일도 있었는데 정말 상상력이 다채로웠습니다.
세종문화회관과 글로리아오페라단 서울오페라단 (주)투란도트가 공동 주최한 <2005 투란도트>는 오페라 사상 유래 없이 15일
동안이나 공연됩니다. 티켓가격도 (VIP 티켓이 30만원, R석이 25만원)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나 비싼 관람료가 감동을 보증하지는
못했습니다. 의미 있는 작품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해 아쉬운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