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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

[시론]

삼(영산대 교수· 정치학) ㅣ | 승인 2005.07.22(Fri)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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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병삼  
내 친구 아들의 장래 희망이 또 바뀌었다. 여름방학이 되면서 아침마다 제 아버지와 배드민턴을 쳤는데 제법 손에 익자, 이젠 배드민턴 선수가 되겠단다. 그동안 전해 들은 그 녀석의 꿈만 해도 열 가지가 넘는다. 월드컵 때는 축구선수, 박세리가 날릴 때는 골프선수 등등.

커서 대통령이 되겠다, 마라톤 선수가 되겠다는 어린아이들의 꿈은 귀엽기나 하다. 그러나 꿈꿀 나이가 지난 사람으로부터 장래 포부를 들으면 우스꽝스러워진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 사람이 어떻게 성장할지 몰라 후배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동시에 ‘나이 사십이 넘어 남으로부터 손가락질 받으면 더 볼 것이 없다’ 했으니, 중년을 넘어서면 인생의 끝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새 일을 시작하기에는 늦다는 뜻이겠고, 또 노탐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새길 수도 있겠다.

민주 투사였던 한 인사는 중학생 때 책상머리에 ‘장래의 대통령’이라는 표어를 붙여놓고 미래를 설계했노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군사 독재로 억압이 심했던 터라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의 말이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그의 꿈대로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했었다. 오랫동안 꿈꾼 자리이니 뭔가 다른 준비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꼭 무엇이 되어야겠다고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치고 제대로 그 일을 해내는 경우는 또 드물었던 것 같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갈수록 죽을 쑤더니 후반기에는 경제대란이 뒤따랐고, 이제는 그의 말을 가지고 우스갯거리로 삼는 사람조차 사라졌다.

지난번 중앙일보사를 경영하던 홍석현씨가 주미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그의 꿈이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든 첫 느낌은 유치함이었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또 이 나라 대표적 재벌과 인척 간인 사람이, 게다가 유수한 언론을 소유한 사람이 또 특정 직위를 꿈꾼다는 소식 앞에 입이 비쭉 옆으로 몰렸다. 한손에 큼지막한 떡을 쥐고서 또 한손에마저 떡을 쥐려는 탐욕 같은 것을 느꼈던 때문이리라.

그런데 최근 본인 입에서 또 그런 소리가 나오고 청와대에서는 정작 부인한다는 말을 접하면서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면 국사를 넘어서 ‘천하사’를 다루는 직책이다. 유교식 논법을 빌리자면 수신· 제가 이후에 치국· 평천하이니 어지간한 포부가 아니고서는 품을 수 없는 꿈이다. 어디 작은 나라라고 해서 국제 기구의 살림꾼을 내지 못하라는 법이야 있겠는가. 다만 주변에서 권하지도 않는데 제 손 들고, 제가 나서서, 그 일을 자기가 맡겠다며 꿈을 처리하는 방식이 낯을 뜨겁게 만드는 것이다. <논어>에 이런 대화가 있다.

공자왈, 평천하할 힘은 사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했으니…

공자가 어느 날 제자들에게 물었다. “평소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는다!’고들 투덜대던데, 만약 너희를 알아주는 임금이 있다면 어떤 일을 급선무로 삼을 테냐?” 자로가 나서서 말하기를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나를 기용한다면 3년이 되지 않아 군사 강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공자는 씩~ 웃었다. 뒤에 한 제자가 자로의 답변에 왜 웃었냐고 묻자, 공자는 “사양하는 맛이 없어서”라고 답한다.

공자는 평천하를 실현하는 힘의 근원이 사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보았던 것이다. 도원결의한 관우와 장비를 제쳐두고 제갈량이 삼군을 통솔할 지위를 얻은 비결도 다름아닌 두 번 세 번 사양한 데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삼고초려란 그래서 생긴 고사다. 공직이란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여서 하늘이 목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장관자리조차 그렇거늘 천하의 지위라면 또 말해서 무엇하리. 그래서 노자도 “천하를 취하는 길은 언제나 억지로 해서는 되지 않는다. 억지로 도모해서는 천하를 취할 수 없으리라”(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고 조언했던 터다.

사나이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천하를 평화롭게 하려는 꿈을 꾸지 못하란 법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또 그것이 어찌 유엔 사무총장이 되어야만 할 일인가. 도리어 남아프리카의 정치범감옥소에서(만델라), 인도 캘커타의 뒷골목에서(테레사 수녀) 피어난 사랑과 용서가 세계를 감동시키지 않았던가. 그럴 제 천하가 평화를 이루는 것이지 정치술이나 금력으로 얻는 자리로서는 도리어 천하를 시끄럽게 하는 길일 수 있는 것이다. 김운용씨가 바로 앞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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