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 졸업생 수천명 음악회 관객 수백명”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5.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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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 문화예술위원장/“창작만큼 즐길 권리 중요”

 
서울 대학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옛 문예진흥원) 건물 2층에 있는 위원장실에는 문화계 인사들이 보낸 난이 가득했다. 김병익 초대 위원장(67)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각별하다는 뜻으로 읽혔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초대 위원 11명은 지난 8월11일 만창일치로 그를 위원장에 선출했다. 김위원장은 문학과지성사(문지) 대표로, 이른바 ‘문지 인맥’의 장형으로, 문학 평론가로, 국내 문단의 한 축을 맡아왔다. 문화계에는 그가 공직을 맡은 것을 이창동 전 문화부장관이나 현기영 전 문예진흥원장의 사례와는 또 달리 보는 시각도 있다. ‘대주주’가 나섰으니 힘이 실리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그는 “문지를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경기도 일산에서 4년 가까이 노후를 즐겼다. 뭔가 좀 해야 하지 않느냐고 권하는 분들의 청을 거절하기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지 이틀 만인 지난 8월31일 김병익 위원장을 만났다.

문화예술위원회는 과거 문예진흥원과 우선 어떻게 달라지나?

지난 32년간 존속했던 문예진흥원은 문화부 산하 기관이었다. 반면 문화예술위원회는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민간 법인체다. 문화예술 정책의 기본 방향은 여전히 국가가 정하겠지만, 문화예술 지원 정책과 세부 전략은 민간 스스로 현장 문화예술인들의 의견을 반영해 결정해 갈 것이다. 우선 현장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도록 장르별·기능별 소위원회 구성을 서두르고 있다.

진흥원 시절에 비해 권한과 위상이 강화된 만큼 위원장의 생각이 중요한데, 문예 지원 정책의 기조를 어디에 둘 것인가?

과거 진흥원은 창작자 지원을 주로 했다. 물론 창작 지원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앞으로 문화 향수층이나 문화 매개층 지원도 강화해 가겠다. 예술가가 활발히 창작 활동을 하더라도, 독자나 관람자가 없으면 예술의 환류가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 나라에 시인이 수천 명이 넘는데, 시의 독자층은 그 절반도 안된다. 해마다 음대에서 6천명씩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음악회에 과연 6백명씩이라도 오는가. 그래서 문화 소외 계층을 문화 향수층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 복지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창작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또 요즘 각 지자체의 문화회관 건립이 붐인데, 콘텐츠가 약한 것 같다. 문화 향수층을 늘릴 수 있도록 큐레이터나 문화 기획자를 양성하는 데에도 문화예술위원회가 지원할 계획이다.

진흥원 시절보다 활동 폭이 커지는 셈이다. 수혜 폭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느끼는 현장 창작자들의 불만이 클 텐데.  

해마다 수백억원씩 복권 기금이 들어오는데, 이 돈은 복지 사업에 쓰도록 되어 있다. 기초 예술을 지원하고, 지방의 문화 향수층을 지원하는 사업에 사용하겠다.

과거 문예진흥원의 소액다건식 지원 정책은 문화계에서 나눠먹기식 지원이라는 비판을 받곤 했는데, 개선책이 있는가?

앞으로 좀더 다양한 지원 방식이 모색될 것이다. 지원 건수를 줄이더라도 좀더 실질적인 지원이 되도록 하겠다. 과거에는 지원받은 작가는 반드시 그 해에 작품을 완성해야 해서 작품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직된 원칙도 바꾸겠다. 중요한 사안의 경우 여러 해 동안 계속 지원하도록 하겠다.

현기영 원장 시절 문예진흥기금의 원금 일부를 헐어 쓴 일이 있다. 저금리 시대가 되면서 기금 운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다.

현기영 원장 시절 대학로에 중형 극장이 없다는 여론에 따라, 문화 복합 공간을 짓느라 기금 원금 5천여억원 중에서 2백억~3백억 원 정도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문예진흥기금이 기획예산처의 18개 기금 운용 평가에서 경영 부문 꼴찌를 했다는 사실을 위원장이 된 뒤 알았지만, 문예진흥기금 운용은 투자 실적을 따지는 경제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위원회는 매년 천억원 이상의 예산을 집행한다. 내가 이렇게 예산을 많이 다루는 조직을 맡은 것은 처음이지만, 위원 11명과 직원들이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이른바 ‘코드 인사’ 시비가 이번에는 줄었지만, 없어지지는 않았다.

위원 11명 중에서 내가 나이가 가장 많고, 나보다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이도 있다(11명 중 40대가 4명이다). 40대 예술가들은 이미 우리 문화의 주역이기 때문에, 그들이 문화예술위원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50대 초반인 심재찬 위원(52)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한 것은, 그가 액티브한 사람이면서, 진보나 보수 양쪽 다 사심 없이 어울리는 분이기 때문이다(심재찬 신임 사무총장은 연극인 출신으로, 극단 ‘전망’ 대표와 한국연출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03년 10월에는 차범석 정진수 김철리 씨 등과 함께 문화부의 코드 인사를 비판하는 ‘연극인 100인 성명’을 발표한 적도 있다).

문학과지성사 창업자이자 문학 평론가이니 묻겠다. 최근 작가 김형경이 영화 <외출>의 시나리오를 받아 쓴 소설을 냈는데, 그 출판사가 이른바 문학 엄숙주의의 본산이라는 문지였다. 어떻게 보나?

내가 문지 대표로 있던 1990년대 후반부터 문턱을 낮추려고 노력했다. 에세이집을 출판했고, 만화와 번역 소설도 냈다. 이번 김형경씨의 소설도 그런 차원이라고 본다. 김형경 소설을 두고 순수 문학이냐 아니냐 논란이 많은데, 1990년대 초에도 이청준씨와 임권택 감독이 <축제>를 소설과 영화로 함께 기획하고 쓴 일이 있다. 작가가 작품을 쓸 때는 모티브를 어디서든 얻을 수 있다. 누가 이번 일을 ‘징후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는데, 그 말이 맞다고 본다. 인터넷·영상 시대에 문학이, 새로운 글쓰기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사건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영화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그에 맞춰서 소설이 제작되었다.

정직하게 말하면 영화를 안 보고도 어떻게 될지 짐작되듯, 김형경씨의 소설도 마찬가지여서 긴장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문학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괜찮고 반대는 안된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이번 일이 창조적 실험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변주는 가능하다고 본다.

문화예술계의 기대가 크다. 그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지원 사업이란 것은 수혜자한테는 인사를 받지만, 비수혜자에게는 불평과 비판을 듣게 마련이다. 문화예술위원회가 아무리 과거 문예진흥원 시절보다 나아지더라도 비판이나 불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문화 전반, 나아가 예술가들에게 시민들과 함께 문화 공동체를 만들자는 관점에서 협력하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예술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겠지만, 우리는 또한 예술가들에게서 정신적인 지원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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